인구 절벽과 지방소멸은 더 이상 예측의 영역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자리 잡았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비수도권 지자체 10곳 중 7곳 이상이 소멸 위험을 ‘높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특히 제조업 기반이 약한 농산촌 지역일수록 위기의 속도는 빠르다. 일자리 감소는 인구 유출로 이어지고, 인구 감소는 다시 지역 활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지역에 뿌리를 둔 핵심 산업과 기업의 역할이 지방소멸 대응의 핵심 열쇠라고 지적한다. 일본 아이치현이 도요타를 중심으로 산업·주거·문화가 결합된 ‘도요타시’를 구축해 지속 가능한 지역 모델을 만든 것처럼,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과 영풍 석포제련소가 그 주인공이다.
1970년대 문을 연 영풍 석포제련소는 국내 최초의 현대식 아연 제련소로, 반세기 넘게 경북 북부권 지역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봉화군과 인접한 태백시 일대에서 유일한 대규모 사업장으로 자리 잡으며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을 제공해 왔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경제적 버팀목으로 기능하고 있다. 봉화군 전체 인구는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석포제련소를 중심으로 한 석포면 일대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감소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제 수치에서도 그 영향력이 드러난다. 봉화군의 소멸위험지수는 0.12로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에 해당하지만, 석포제련소 임직원 수는 2012년 499명에서 2023년 576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직원 증가와 함께 동반 가족 수도 빠르게 늘어 2000년 504명에 불과했던 가족 수는 2023년 2316명으로 4배 이상 확대됐다. 이는 봉화군이 추진 중인 ‘봉화사랑 주소갖기’ 캠페인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며 실제 인구 유입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경제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환경 분야에서도 석포제련소의 변화는 뚜렷하다. 세계 4위 규모의 아연 생산능력을 갖춘 이 제련소는 과거 환경 논란을 딛고 ‘환경과 산업의 공존’을 핵심 과제로 삼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왔다. 2019년 수립한 환경개선 혁신계획에 따라 매년 약 1000억원의 환경 예산을 집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누적 투자액은 54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단일 사업장 기준으로도 이례적인 수준이다.
이러한 투자의 상징적 결과물이 2021년 도입된 폐수 무방류 시스템이다.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외부로 단 한 방울도 배출하지 않고 전량 재처리해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세계 제련소 가운데 최초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를 통해 연간 약 88만㎥의 공업용수를 절감하고 있으며, 해당 기술은 강원 영월군 등 다른 지자체와 산업시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환경 개선 효과는 생태계 변화로도 확인된다. 2022년 이후 제련소 인근 하천에서 멸종위기종인 수달이 반복적으로 관찰되면서 낙동강 최상류 수질 개선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의 역할은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체육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약 20억원을 투입해 인조잔디 축구장을 중심으로 한 종합 스포츠 콤플렉스를 조성했다. 기존 테니스장과 풋살장 등과 연계된 이 공간은 지역 주민들의 여가와 건강을 책임지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문화 분야에서도 석포마을 공모전을 4년째 이어오며 주민 참여형 문화 콘텐츠를 육성하고 있고, 석포중학교 학생들의 단편 영화 제작을 지원해 국제청소년영상공모제 수상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는 농산촌 지역 학생들에게 문화적 자부심과 도전 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교육 환경 역시 석포면이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1935년 개교한 석포초등학교는 봉화군 내 면 단위 학교 가운데 드물게 전교생 수가 10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으며, 병설유치원 역시 봉화군에서 유일하게 3개 학급을 운영 중인 공립 유치원이다. 학생 수 증가에 따라 교실 4칸을 추가로 증축하기도 했다. 석포중학교 역시 전교생 약 40명 규모를 유지하며 폐교 위기를 비켜가고 있다.
이 같은 교육 안정성은 다자녀 가구 비중과도 맞닿아 있다. 석포제련소 직원 가운데 네 자녀를 둔 가정이 2가구, 세 자녀 이상 가구가 11가구에 달한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환경, 교육 지원이 결합되면서 젊은 가구의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외부 학교 학생들이 친환경 설비를 견학하기 위해 석포제련소를 방문하는 사례도 늘며, 이곳은 산업 현장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과 환경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풍 관계자는 “석포제련소와 봉화군 석포면의 사례는 기업이 단순한 생산 주체를 넘어 지역의 인구를 지키고 환경을 개선하며 문화를 꽃피우는 공동체 선순환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지방소멸의 파고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업과 지역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상생 모델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경제 황수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