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통나무로 집을 짓는다. 아래에서 위로 쌓거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줄지어 세운다. 아무리 잘 다듬어도 통나무는 반듯하지 않다. 당연히 여기저기 틈이 생긴다. 좁거나 혹은 넓거나. 빗물은 보금자리를 적시고, 살을 에는 겨울바람은 고통스럽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각종 곤충은 덤이다. 모두 막아야 한다.
그럴 때 진흙도 진흙이지만 이끼가 단단히 한몫한다. 스스로 자라기까지 하며 틈새를 완벽히 메운다. 때로는 비바람에 흙이 살살 무너지는 것도 막아준다.
이끼에서 찾아낸 ‘자연스러운 삶’
서양화 화가 양종용(42)은 보통 ‘이끼 작가’로 통한다. 이끼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그 스스로 이끼 같은 삶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끼가 유독 눈에 들어왔을까. 무작정 찾아 헤매다 마침내 발견한 이끼가 아닌, 어느 순간 존재를 깨달은 이끼여서 더 마음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의 양종용은 불안했다. 그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고민 끝에 휴학하기로 했다. 5~6년, 꽤 길었다. 그 와중, 남들 하는 편의점이나 카페에선 일하기 싫어 농수산물시장 같은 험한 곳에서 몸을 굴렸다. 현실을 잊기 위해선 이만한 일도 없었다. 복학하고 보니 더 암담했다. 여전히 1학년이지만 쉬었던 시간만큼 새내기들과 나이 차가 벌어졌다. 주위 친구들은 회사를 다녔다. 나만 허송세월이었다. 자괴감이 엄청났고, 후회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깨달은 한 가지. 생(生)은 별 게 아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차분하게, 그냥 사는 것이었다.
고민이 많았던 그 시기, 독학을 선택했다. 전공인 미술에 더 빠졌다는 얘기다. 유독 변기에 앉아 있을 때 생각이 많아졌다. 후회는 늘 따라왔지만, 새로운 각오도 생겼다.
“주로 일요일 아침, 평온한 햇살이 들어오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으면 내가 계획했던 걸 이루지 못한 것에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이 일이 반복되니 자연스럽게 변기에 주목했고, 소재로 삼게 됐죠. 절에선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하잖아요. 근심을 덜어내는 공간이라고. 그 의미를 좀 빌려 쓰기로 했죠. 그래서 변기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절반밖에 안 담긴 것 같았어요.”
인생이 쉽지 않으니 그림도 쉽지 않았다. 좀 더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자기반성, 자기성찰을 떠올렸고, 결국 조화롭게 사는 것, 남들과 어울리며 사는 것에 답이 있음을 알게 됐다. 거창한 해석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의 삶, 지나가는 사람, 잠시 마주치는 사람, 수많은 관계, 이런 것들에 생각이 깊어졌다. 마침내 ‘자연스러운 삶’이 내 그림의 주제가 됐음을 받아들였다.
“그 자연스러운 삶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나무도 그려보고 숲도 그려봤어요. 그러다 찾은 게 이끼였습니다. 생각해보니 드로잉을 할 때도 일부러 그리려 했던 건 아닌데 그림엔 항상 이끼가 들어있었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끼에 본격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게 됐죠.”
그렇게 탄생한 게 설치작품 ‘변기 이끼’다. 그의 말대로 절의 해우소와 성당의 고해소처럼 변기를 자기반성, 자기성찰의 도구로 해석한 작품이다.
변기는 곧 자기반성이자 자기성찰
이끼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 지 10년이 흘렀다. 양종용에게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뭐라 해도 ‘변기 이끼’다. 모든 이끼 이야기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변기 다음으로 관심을 가진 건 그릇이다. 그릇은 곧 식기(食器)다. 먹는 걸 받아들이는 의미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받아들이는 것. 그가 말한 자기반성과 자기성찰을 통해 얻어낸 자연스러운 삶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입으로 넣으면서 받아들이고 한참 후에는 이를 배설하는, 순환 구조의 의미에서 그릇과 변기는 맞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달항아리 표면에 듬성듬성 자리한 이끼랄지, 스프를 담으면 딱 좋을 펑퍼짐한 그릇에 가득 담긴 이끼를 표현한 평면작업은 그가 이끼를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끼라는 소재는 계속 가지고 가지만, 이를 담아내는 표현 방식에는 늘 아쉬움이 적잖았다. 해서, 선택한 게 시멘트 레진이다. 시멘트 평판의 균열 틈새에 이끼를 그려 넣고, 그 위에 레진을 붓고, 또 그리고 또 붓고, 이를 최소 아홉 번에서 열 번을 작업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무얼 말하려 했을까.
인간은 자연을 파괴한다. 문명의 발전이라는 명목이다. 시멘트는 그 상징 중 하나다. 시멘트의 깨진 틈새에 자연이 다시 자리 잡는다. 결국, 인간과 자연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공존하며 삶을 이어가야 한다. 곱씹어볼 메시지다.
양종용은 이끼 작품을 더 확장하고 발전시키고 싶다. 그림의 이끼 작품들을 실제화시키는 작업에도 욕심이 난다. 실제 달항아리 이끼는 커다란 설치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지름 2m짜리 이끼를 접시에 담아 공중에 매달아 놓는 설치작품도 한창 손보는 중이다.
그는 이끼를 직접 재배한다. 의정부 작업실 바로 옆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그 안에서 키운다. 물론 이끼 공부도 많이 했다. 이 식물에 필요한 빛과 물과 습도는 어떻게 맞춰야 할지 꼼꼼히 체크하고 익혔다. “이끼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침 햇살이나 저녁노을이 비칠 때, 햇빛을 보게 해주면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 키워보니 알게 된 사실이다.
이야기의 처음, 양종용은 이끼 같은 삶을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의 얘기와 그의 작품을 찬찬히 귀와 눈에 담아보니 알겠다. 그의 방황 끝 얻어낸 결론 ‘자연스러운 삶’은 이끼와 참 많이 닮았다. 높게 자라지 않고 넓게 펼쳐지며, 작은 숲을 닮은 모습. 마치 자신의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관계를 이어주고 싶은 이끼 그대로의 모습이다.
양종용은 지금, 이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3월 29일까지 ‘더샵갤러리’서 전시
양종용 작가의 개인전 ‘이끼: 공존의 시대’가 3월 29일까지 서울 강남구 자곡동 더샵갤러리 4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더샵갤러리의 올해 첫 메인 전시다.
회화 작품 열여덟 점과 설치작품 두 점, 그리고 시멘트 레진과 그릇 이끼 작품 다섯 점이 전시 중이다. 이와 함께 이끼 분재 컬래버레이션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고요하지만 웅장한 사운드가 잔잔히 깔리는데, 숲을 주제로 한 소리다.
전시와 연계한 프로그램에도 눈길이 간다. 먼저, 미술관 도슨트의 아이돌로 불리는 정우철의 강연이 2월 13일 오후 2시 열린다. 요가 인플루언서인 송영현은 2월 12일과 3월 6·15일에 요가 체험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한다. 선착순으로 스물세 명만 받는다.
6~9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키즈 미술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전시장 투어와 함께 이끼 테라리움을 만들어본다. 2월 28일과 3월 7·8·14일, 하루 두 차례씩 열린다. 매회 열 명의 어린이가 참여할 수 있다. 이를 진행하는 아트살롱 오그림 대표는 2월 26일 오전 11시 양종용 작가의 작품 세계와 연계한 북콘서트도 연다.
이은숙 더샵갤러리 관장은 “도심 속 시멘트 공간 사이로 피어나는 초록 이끼의 싱그러움처럼, 많은 관람객이 이번 전시를 통해 바쁜 일상 속 자연의 아름다움과 편안한 삶, 서로 다름이 만나서 공존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