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벌써 태풍 ‘모라꼿’이 스쳐가면서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7일)까지 지났다. 그리곤 곧장 삼복더위의 막장인 말복(13일)까지를 지나면서 곧바로 ‘8,15’ 광복절을 맞게 됐다. 때문에 더러는 8월을 일제 식민지를 벗어난 ‘광복’을 상징하는 달로 표현하기도 한다. 지금부터 64년 전인 1945년 8월 15일에 일제의 압박과 설움에서 풀려나 조국의 주권을 되찾았기에 우리 민족 누구도 이날을 잊지 않고 기리며 경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선열들은 50여 년에 걸쳐 일제에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두가 하나로 굳게 뭉쳐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목숨 걸고 광복을 맞은 날까지 싸웠던 것이다. 이런 뜻 깊은 달을 맞아 우리 국민 대다수는 최근 우리 사회의 끝 모를 분열과 갈등의 심각성을 새삼 실감하며 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온통 대립 구도로 달리고 있다. 계층·세대·성별·지역·이념 등에서 그렇다. 또한 미디어법 통과 추태나, 비록 벼랑 끝에서 극적 타결을 보았으나 노사 갈등 요소를 거의 함축했던 쌍용차 사태 등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데도, 상대를 향한 적개심은 연일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여름 더위보다 더 끓는 느낌이다.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도 지나고 여름 염천을 막 보낸다는 말복까지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를 지경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은, 옥쇄 파업을 외쳐온 노조와 이들을 진압하려는 경찰 사이에 빚어질 수도 있었던 쌍용차 노조 농성파업사태가 절벽에서 극적 타결을 이끌어냄으로써 최악의 충돌사태를 막아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싸움에서 얻은 것이라곤 3000억 원(사측 추산)이 넘는 경제적 손실과 국가 및 쌍용차 이미지 손상 등이며, 이들은 국민 부담으로 떠넘겨질 공산이 짙다는 사실뿐이다. 때문에 차제에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노사와 국민 모두가 최근의 노사 갈등과 농성파업사태 등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과 사료 깊은 평가를 해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5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북한에 억류 중이던 미국 여기자 2명을 구해내 본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부러움과 착잡한 심경을 일게 했다. 두 여기자는 지난 3월 17일 북한 탈북자들을 취재하다가 북한에 붙잡힌 지 넉 달 보름여 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여기자들과 비슷한 시기인 3월 30일에 개성공단에서 체포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와 바로 얼마 전인 7월 30일에 예인된 ‘800연안호’ 선원 4명 등은 계속 억류한 채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음은 물론 신변 안전 여부와 언제쯤 풀려날지 등을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태이다. 이처럼 한국인과 미국인 억류에 대한 야누스적(이중적) 태도를 보면, 북한이 그토록 강조하던 ‘우리 민족끼리’ 라는 주장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한 듯싶을 따름이다. 북한의 이 같은 이중적 태도는 미국에 대해서뿐만이 아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평양회담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를 사과하고 귀국 비행기 편에 납북자들을 돌려보냈다. 미·일에는 이처럼 고개 숙이고 환대하면서 정작 동족에게는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는 북한 노동당이 목공일을 하던 개성공단 근로자와 생업을 위해 고기잡이에 나섰던 어부들을 잡아두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반민족적 행위가 아닌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번 ‘8.15’ 광복절을 계기로 남북이 다 함께 기뻐해야 할 또 하나의 역사적 기록을 우리 민족끼리의 남북 공동 기념일로 삼아 경축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바로 우리 민족 고유의 글인 한글이 인도네시아 부론섬 6만 소수민족의 토착어로 첫 수출을 하게 된 새 경사가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