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경남 양산 재선거 출마 공식화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박 대표의 재선거 출마가 한나라당 권력 지도를 다시 쓰는 복잡·미묘한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 박 대표가 양산 재선거를 앞두고 당 대표직을 내놓을 경우 한나라당은 당장 지도부 개편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지도부 구성의 논란을 넘어 당내 계파 간 역학구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당내 각 진영이 박 대표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이재오 전 의원 등 당내 유력 정치인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박희태, 공천에선 친이-선거에선 친박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양산 출마가 지난 8월 11일 공식화됐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30분 간 ‘독대’한 그는 양산 출마의 결심을 밝혔고, 이 대통령의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한나라당 김효재 대표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박 대표의 양산 출마 결심에 대해 당에서 잘 알아서 해달라”는 답변을 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답변에 대해 김 비서실장은 ‘매우 긍정적인 분위기’였다고 해석했다. 박 대표의 양산 출마와 관련하여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박 대표의 대표직 유지 여부이다. 박 대표는 회동 다음날인 8월 12일 “절대 대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때가 되면 과감하고 의연하게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대표는 “지금은 정지작업을 해야 될 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 지나면 결단을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가 대표직 사퇴의 전제조건으로 언급한 ‘정지작업’은 ▲양산 지역 재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후보로 공천을 받는 것 ▲지역 민심 파악 ▲친박 측 선거 지원 ▲ 정몽준 최고위원의 대표직 승계 등으로 해석된다. 재선거까지 두 달 이상 남은 만큼 박 대표는 당내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지도체제 개편, 역학구도, 이 대통령의 내각 및 청와대 개편에 따른 정국구상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공식화하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정치권에서는 시기가 문제일 뿐 박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산 출마를 결심한 이상 선거에 ‘올인’해야 하는데, 대표직을 유지할 경우 민주당의 ‘정권심판’ 논리에 부딪혀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친박과 친이 진영은 박 대표의 대표직 사퇴 시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친박 측은 박 대표의 양산 출마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혀왔는데, 그 배경엔 박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었다. 이는 정몽준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하거나, 조기 전대가 치러져 이재오 전 의원이 당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친박 측은 박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강력히 반대해 왔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 박 대표의 사퇴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것이 친박 측의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 측은 9월 조기전대를 통해 이재오 전 의원을 당에 복귀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에 박 대표의 조기사퇴를 직간접적으로 권해왔다. 친이계 공성진 최고위원과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장광근 사무총장은 박 대표가 대표직을 갖고 출마하면 선거구도 자체가 ‘정권심판론’으로 옮아가 선거결과에 따른 위험부담이 크다면서 대표직 조기사퇴론을 옹호하고 나섰다. 물론 청와대의 내각 개편 시점에 맞춰 당 지도체제에 변화를 줘야 여권 쇄신의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겠지만, 이 전 의원의 정계 복귀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표는 철저히 득실을 따져 대표직 사퇴 시기를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사퇴시기는 이르면 8월 말, 늦으면 10월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중에서도 박 대표가 양산 재선거에서 친박의 지원을 고려해 공천이 확정된 이후인 10월 초까지 최대한 대표직 사퇴를 늦출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효재 대표비서실장이 기자들에게 “머지않아 (박 대표의)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한 데 대해 박 대표가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도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입각, 정몽준-대표로 가닥 잡아 박 대표가 10월 초에 대표직을 사퇴할 경우, 당헌에 따라 전당대회 차점자인 정몽준 최고위원이 대표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 이와 관련해 친이-친박을 비롯한 당내 분위기는 호의적이다. 정 최고위원은 친이-친박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독자행보를 통해 자신의 세력 확대를 꾀해왔다. 친이 측은 사실상 정 최고위원을 ‘친이가 아니겠느냐’라는 기대감으로, 친박 측은 ‘이재오 전 의원을 견제하는 하나의 카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가 대표직을 승계할 경우 한나라당 입당 후 1년 8개월 만에 거대 여당의 비주류 당 대표가 되는 셈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그의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고 정치권은 보고 있다. ‘정몽준 대표 체제’는 여권에 유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10월 재보선을 앞두게 되며, 전당대회가 지방선거가 있는 내년 6월 이후로 미뤄질 경우 야당의 집중포화를 견뎌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정 최고위원이 당 대표직을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이 측근은 “정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해 묵묵히 일해 나가면 당내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당이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기는 없었다. 아무리 못해도 본전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 최고위원은 자신이 대표직을 승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고위원이 대표가 되면 자신의 친위대와 우호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9월 전당대회를 통해 복귀를 희망했던 이재오 전 의원은 ‘입각’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이 전 의원이 방향을 선회한 것은 조기전대를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당초 이재오 전 의원은 전당대회를 통한 당 복귀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가 대표직을 8월 말에 조기 사퇴할 경우 9월 전당대회가 가능해져 이 전 의원의 당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 측은 이 대통령과 박 대표의 회동 전까지 9월 전당대회를 성사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박 대표의 ‘10월 대표직 사퇴설’에 무게가 실리면서 ‘입각’과 같은 다른 대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의원 복귀와 관련해 당초 전당대회보다 규모가 작은 전국위원회를 열어 박 대표의 빈자리를 채우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었지만, 현재는 입각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여권에선 박근혜 전 대표의 미디어법 처리 협조와 대통령 특사활동 등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된 마당에 굳이 친박계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와 관련해 이 전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들 간의 경쟁에서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장관 입각설이 힘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물러난 뒤 정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를 승계해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 경우, 정 최고위원에게 권력의 추가 기울어지면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조기에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은 평소 “정치를 해야지 장관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왔지만, 최근 들어 “대통령 인사권과 관련된 문제를 내가 뭐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전 의원의 한 측근은 “굳이 지금 당에 복귀해서 친이-친박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보다는 정부 내에서 정무적 기능을 뒷받침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며 “박 대표 사퇴로 생기는 최고위원 공석에 ‘무혈입성’하는 형식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노동-보건복지 등 사회분야 및 ‘4대강 살리기’ 사업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 장관에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밖에 교과부 장관설도 나돌고 있다. 이같이 이 전 의원이 입각하고, 당대표를 정 최고위원이 승계했을 경우, 9월 조기 전당대회 문제로 불거졌던 당내 친이-친박 간 갈등은 자연 소멸될 전망이다. 하지만 10월 재보선 공천과 관련해 친이-친박 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적과의 동침’ 10월 재·보선이 증명할까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유럽 특사로 8월 24일부터 약 열흘 간 헝가리·덴마크·유럽연합 등을 방문한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제의를 받아 들인것을 두고 두 사람이 본격 화해국면으로 가는 물꼬를 튼 게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이와 관련, 친이-친박 간 ‘빅딜설’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만약 개각 때 친박 인사들의 입각이 현실화될 경우 화해 기조는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의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게 된 핵심적인 계기는 지난해 총선 공천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직 불씨는 남아 있다. 최근 화해 무드로 전환된 친이-친박 관계에 10월 재보선 ‘공천’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있다. 10월 국회의원 재선거 지역은 현재 경기 안산 상록 을, 경남 양산, 강원 강릉 3곳인데, 벌써부터 친이-친박 간 예비후보 등록자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박희태 대표가 출마 결심을 한 양산은 17대 총선에서 이 지역에 당선됐던 김양수 전 의원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한 공천이 된다면 무소속으로라도 나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 4월 총선 때 친박계 무소속 후보로 나와 2등을 했던 유재명 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친박연대의 엄호성 전 의원 등도 출마할 것으로 보여 공천 티켓을 둘러싼 신경전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강릉은 누가 공천을 받을 것인지 미지수다. 강릉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강세 지역. 이에 공천 경쟁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치열하다. 친이 측에선 청와대 김해수 정무비서관과 권성동 법무비서관이, 친박 측에선 심재엽 전 의원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가 8월 11일 심재엽 전 의원의 선거사무소를 찾아 사실상 지지선언을 하면서, 친이-친박 간 갈등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의리’를 위한 행보라고 선을 그었지만, 당내에선 은근한 공천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