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의 영원한 숙제로 남을 뻔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화해. 그들의 화해를 이들만큼 바라던 이가 있었을까. 한국 정치의 양대 산맥인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인사들이 지난 8월 11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모였다. 이들은 두 전직 대통령 밑에서 따로 또 같이 민주화 활동을 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회원들이다. 민추협 소속 김무성·김영진·이용희·이인제·이종혁 등 전·현직 의원과 김덕룡 공동이사장을 비롯한 50여 명은 한자리에 모여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화해’ 뜻을 밝힌 다음날이었다. 민주협 측은 “늦게나마 두 분의 화해가 이뤄진 데 대해 벅찬 감격을 금할 수 없다”며 “민추협은 앞으로 망국병인 동서갈등과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위해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DJ-YS 함께 몸담고 일했던 ‘민추협’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애증과 반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엔 민추협이 있다.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화해는 그들이 한때 동고동락했던 민추협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알려졌다. 상도동계로 불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 측 인사들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인사들의 연합체인 민추협은 1984년 5월 18일 양측이 연합해 발족한 재야 정치단체이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5공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활동기반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에 두 지도자가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해체됐다. 이후 민추협은 창립기념식 등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형식적인 모임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부터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의 주도로 매달 한 차례씩 모임을 가져왔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화해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배신자’로 낙인 찍었던 그 거부감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선 김대중 전 대통령 앞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22년 간의 해묵은 감정을 털어냈다. 한국 정치사 숙제 푼 민추협, 이젠 ‘국민화합’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실을 찾은 김덕룡 특별보좌관과 김무성 의원 등 이른바 상도동계 인사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비는 난을 들고 나타났다. 병실을 지키고 있던 동교동계 한광옥·김옥두 전 의원 등은 병원 입구에서 이들을 반갑게 맞아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특히 병원을 찾은 김덕룡 특별보좌관은 현장에서 즉석 기자간담회를 청해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이 국민이 기대하는 화해를 했다”며 “인간적 화해를 마쳤으니 정치적 화해는 이제 후배들의 몫이고 이는 시대적인 과제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역갈등 해소를 제2의 민주화운동이라 생각하고 국민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김무성 의원은 “우리 사회 민주화에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이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며 “하지만 두 분의 경쟁으로 망국적 지역감정이 고조된 걸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추협의의 최대 목표는 우리가 만든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회원이 30여 명인 민추협 동지회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전현직 의원들이 아직도 그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매달 서울 종로구 기독교 회관에서 모임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를 계기로 지역감정 해소에 나서는 민추협의 향후 ‘국민통합’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