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권은 일대 전기를 맞았다. 민주개혁 세력의 큰 축이었던 김 전 대통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민주당 등 야당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여야는 현재 표면적으로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 분위기에 전념하면서 정치적 셈법은 미뤄두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향후 9월 정기국회와 10월 재보선 등 굵직한 정치일정이 있어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다. 9월 정기국회 개회 여부는 민주당의 미디어법 장외투쟁으로 8월 16일까지는 불투명했던 게 사실이다. 당내에서 등원론이 제기돼왔지만, 지도부의 완강한 투쟁의지에 밀려 활발한 논의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DJ 서거가 미디어법 강행처리 후 장외투쟁에 나선 민주당에게 등원을 위한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주당 내에도 원내 활동과 원외 활동을 병행하여 여권의 실정을 부각시키는 게 정치적 실익이 있다는 등의 원론이 있어, 곧 민주당 회군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이 있다. 민주당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국가적 사건을 계기로 민주개혁 진영이 결집하고, 여권에 비해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대통합론’을 역설한 DJ의 유지에 따라 친노신당 창당 움직임 등이 잦아들 것도 기대하고 있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를 빈틈없이 준비해 재정적자 책임론과 4대강 예산 논란 등 대여 공세를 편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10월 재보선에 앞서 주도권을 선점한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원내외 병행 투쟁이라는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당내에서 충분히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고 여지를 뒀다. 9월 국회에서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와 미디어법 처리, 세종시특별법 논란 등이 격화될 전망이다. 4대강·미디어법 등 논란 격화 전망 특히 민주당은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공동변호인단과의 간담회를 통해 미디어법 처리 원천무효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경우 이미 한나라당 내에서도 비판에 둘러싸인 적이 있다.‘원점 재검토’ ‘속도전·업적주의 탈피’ 등 강도높은 비판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한구 의원은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사업은 재정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치밀한 계획 없이 진행되고 있어 전체 국가경제로 보면 어리석은 결정이 될 수 있다”면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재정적자가 가중되고, 시중금리가 오르면서 민간투자가 위축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경필 의원도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22조 원을 투입해 임기 내에 사업을 끝내겠다는 ‘속도전’과 ‘업적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남 의원은 “4대강 사업의 취지나 긍정적 효과는 인정하지만 감세정책, 확장재정, 대규모 국책 사업을 한꺼번에 추진할 수는 없다”면서 “4대강 사업을 장기적으로 진행하여 재원 집중을 분산시키고, 법인세 등 감세 정책을 일부 조정하는 등 한두 가지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무성 의원은 “4대강 사업 때문에 복지예산도 줄이는데, 복지예산은 그대로 두고 부산 신항만 계획을 전면 수정, 예산을 절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홍준 의원은 “4대강 사업을 5~6년 늦추더라도 기존 SOC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경석 의원은 “SOC 사업 중 정부가 연내 내지 2~3년 내 완공을 약속한 것은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시법 갈등 재점화할 듯 세종시특별법은 한나라당 내부에서 ‘원점 재검토론’이 불거지면서 자유선진당과의 보수 공조가 무너진 상태이다. 세종시특별법은 지난 4월에 이어 6월 국회에서도 처리가 무산된 바 있다.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은 지난 7월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명칭은 세종특별자치시, 지위는 광역과 기초단체 지위를 겸하고, 시행 시기는 2010년 7월 1일, 범위는 청원군 2개 면을 세종시에 편입시키는 안에 합의했다. 그러다 여야 간 이견을 보이면서 본회의에 상정조차도 못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에서는 8월 중 세종시법에 대한 간사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여권이 세종시 이전 정부기관을 축소하려 한다는 ‘축소 용역설’이 제기됐다. 선진당은 당의 사활을 걸고 세종시법을 9월 정기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행안위가 소위에서 세종시 관할구역에 청원군 2개 면을 편입시킨데 대해 청원군과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여야 3당 간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얽힌 때문이다. 행정구역·선거제 개편 논의 순항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원칙적인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각 정당들은 개략적인 개편안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기존 230여 개 시군구를 경제·생활·역사권이 비슷한 인구 70만 명 전후의 60~70개 통합광역시로 묶자고 한다. 민주당 역시 한나라당과 비슷한 60~70개 통합시를 만들자는데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반면에, 자유선진당은 기존 도를 폐지하고 전국을 60~70개 통합시로 쪼개자는 것은 또 다른 중앙집권을 강화할 뿐이라며, 인구 500만~1000만 정도의 초광역시 5~7개를 두자는 안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존 도·특별시·광역시를 어찌할 것인지를 두고선 각 당의 의견이 다르다. 한나라당은 도 단위 체제개편 성과를 봐가며 향후 2단계로 추진하자는 생각이다. 반면에, 민주당은 서울의 25개 구를 5개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기존 도에서 나눠진 특별·광역시는 기존 도와 다시 통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거제도 개편도 9월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는 현안 중 하나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제시된 선거제 개편은 한나라당에서도 국회 특위를 통해 다음달까지 구체안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당장 중·대선거구제를 추진하면 계파를 막론하고 반발이 거셀 수 있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현행 소선구제를 지역구마다 2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꿀 경우, 일부 의석을 양보해야 한다. 야권은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해왔던 사안인 만큼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일단 비례대표를 해당 지역별로 할당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지역별 근소한 차로 낙선한 차점자에게 기회를 주는 ‘석패율 제도’로 시작될 수도 있다. 비정규직법 등 잊혀가는 민생법안 챙겨야 민생법안 논의가 주요 현안에 밀려 사라지는 현상은 여야 모두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정기국회 개원 후 국정감사 등 현안에 밀려, 지난 6월 국회가 열리지 못한데 따른 민생법안 처리 지연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대표적인 민생법안이 비정규직법이다. 현재로선 여권의 우려처럼 비정규직법 미처리에 따른 ‘고용대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한나라당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규직 전환 방법이나 비정규직법 미처리에 따라 고용이 여전히 불안하다. 이에 노동부와 한나라당은 7월 30일부터 고용실태 조사 등 법안 개정 논의를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으나, 이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법안 개정 논의에 앞서 노동부가 정규직 전환율·해고 상황에 대한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또 “법안 논의를 한다 해도 야당이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공무원연금법·대부업법·여신전문금융업법·재래시장육성법 등 민생경제 법안도 공청회조차 멈춘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