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지킨 이들은 누굴까? 김 전 대통령의 임종을 지키고 상주를 자처하며 빈소를 떠나지 않는 인사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김 전 대통령의 50년 정치인생을 동고동락해온 동교동계 인사들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김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악화된 지난 8월 9일부터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꼬박 병석을 지켰다. 권노갑·한화갑·한광옥·김옥두 전 의원과 박지원 의원 등은 유족과 함께 8월 18일 임종을 지켜봤다. 이들은 당시 김 전 대통령에게 “여기 일은 다 맡기시고 편히 가시라” “사랑한다”고 고별했다. 김 전 대통령이 지난 2003년 퇴임한 이후 동교동계는 이렇다 할 위상을 갖지 못한 채 각자도생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이들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한자리에 모여, 이들의 정치적 재개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권노갑·한화갑·김옥두로 이어지는 동교동계 동교동계는 김 전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리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리틀 DJ’로 불린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를 주축으로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명운을 함께한 직계 그룹이다. 김 전 대통령의 목포상고 후배인 권노갑 전 고문은 인제 보궐선거 때부터 50년 가까이를 함께한 ‘분신’으로 불린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1967년 6·8 총선 때 김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은 뒤 공보비서와 대통령 특별보좌역,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보단장 등을 맡았다. 김옥두 전 의원은 지난 1965년에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인연을 맺은 뒤 비서실 차장, 평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수행실장, 제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 비서실 차장을 지냈다. 동교동계 1세대는 권노갑·한화갑·김옥두·이용희·남궁진 등 1960년대부터 함께 해온 인사들을, 2세대는 최재승·윤철상·설훈·배기선 등 1980년대 초반에 합류한 인사들을 지칭한다. 동교동계 3세대는 전갑길·배기운·이협 등 1987년 이후에 합류한 인사들을 말한다. 이 외에도, 한광옥·조재환·박양수·이훈평 전 의원들은 범동교동계로 분류되고 있다. 김경재 전 의원과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은 뒤 미국 망명길에 올라 연을 맺었다. 청와대 비서실장, 문화부 장관 등을 지낸 박 의원은 엄격히 따지면 동교동 출신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도 지근거리에서 김 전 대통령의 비서직을 수행한 그는 ‘영원한 DJ맨’으로 불리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맞붙었던 무소속 정동영 의원 역시 1996년 15대 총선 때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추미애 민주당 의원도 김 전 대통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여 대표적인 후예로 거명된다. 현실정치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동교동계 인사들은 1999년 이후 당직과 정부 요직을 독점하면서 여권 내 마찰음을 내왔고, 지난 2003년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어 사실상 현실정치에서 물러나 있다. ‘동교동계’라고 불리는 정치인들의 활동은 박지원 의원을 제외하곤 미미한 수준이다. 한때 한국의 정치판을 움직였던 동교동계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이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은 참여정부 당시 대거 사법처리됐고, 임동원·신건 등 고위 공직자들 역시 대북 송금과 불법 도·감청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동교동계 핵심 김옥두 전 의원마저 17대 총선과 관련하여 돈을 뿌린 혐의로 구속돼 동교동계 인사들의 수난은 이어졌다.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전주 완산 갑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수난의 세월을 거친 동교동계 인사들의 향후 행보가 관심을 받는 것은 노무현·김대중이라는 두 거목이 모두 서거하면서 요동치는 정국에서 화합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호남의 정치·정신적 지주였던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범야권 통합의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당의 정신적 지주인 김 전 대통령마저 잃어 야권 통합이라는 큰 숙제가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한화갑 등 동교동계 정치권 복귀 초읽기? 정치권에서는 당장 동교동계가 세력 재규합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일부는 현실 정치에 복귀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명숙 전 총리 등이 다시 움직이고 있고 정치 세력화를 도모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DJ 재평가 바람은 동교동계에 가공할 만한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평가이다. 지난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동교동계’ 3인방 중에서 박지원 의원만 4월 재보선을 통해 부활하고,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낙선했다. 무소속으로 무안·신안에 출마했던 DJ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은 무소속 이윤석 후보에게 석패하면서 정치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김 전 의원은 아버지인 김 전 대통령의 후광에다 어머니 이희호 여사가 두 차례에 걸쳐 선거 지원에 나섰는데도 고배를 마셔 사실상 재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선 국회의원, 야당 대표로서 호남 지도자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한화갑 전 대표는 현재 정치권을 떠나버렸다. 그의 정치권 복귀가 쉽지 않은 이유는 광주 북 갑에서 386 운동권 출신의 강기정 의원에게 패함에 따라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안·신안이 지역구였던 한 전 대표는 김홍업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내주고 광주 북 갑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가 지난해부터 꾸준히 ‘신당창당’의 뜻을 밝힌 만큼 그의 복귀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밖에, 권노갑·최재승·이훈평 전 의원은 정치자금법 및 선거법 위반 혹은 개인 비리로 정치 활동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동교동계는 김 전 대통령의 유지 계승을 명분으로 분열된 야권의 통합과 결집에 힘쓸 것으로 보이며, 일부는 민추협 활동을 계기로 정계 복귀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