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결국 서거했다. 2009년 한 해 동안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온 위인 3인이 영면에 들었다. 가장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 한국인들은 물론이고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 카톨릭 신자들의 눈물어린 전송식이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역시 국민장으로 치러진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평범한 서민 500만 명의 자발적 조문으로 보수 우익 세력을 긴장하게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었다. 그러나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는 국장이라는 점과 세계 주요 국가의 대부분이 조문사절을 보내오는 등 그 위상에서 앞의 두 분보다 조금 더 무게감이 느껴진다. 특히 그의 죽음 이후 재계 각 단체들이 발표한 애도성명을 보면, 김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에 이뤄놓은 경제 분야의 업적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재계 애도성명 칭송 일색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부터 타전된 뒤 재계는 전국경제인연합·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 명의로 애도성명을 발표했다. 재계의 애도성명에는 지금까지 있어온 비경제계 인사들의 죽음에 대한 그것과는 달리 안타까운 마음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계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김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때 해외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 경제의 조기 회복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뒤 “경제계는 김 전 대통령의 나라사랑 정신을 높이 기리며 어려운 경제상황을 조기에 탈출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김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때 우리의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족적을 남겼다”고 논평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김 전 대통령은 지난 외환위기 때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획기적 지원책 등을 통해 빠른 기간 내에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회고했다. 무역협회도 “김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이후 어려움에 처한 경제를 활성화하고 우리나라를 무역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외환위기 극복에 기여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는 언급을 했을 뿐 경제 분야에서의 업적 평가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계가 가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이 같은 기억들은 지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받은 강렬한 이미지에 기인하고 있다. IMF 조기극복과 금 모으기의 위력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거물 대통령으로 통한다. 이번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조문하기 위해 방한한 해외 사절단들의 면면이나 개인적으로 명목을 빌기 위해 방문한 해외 주요 인사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김 전 대통령의 지도력과 국가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 및 비전은 IMF 외환위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김 전 대통령이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시점은 우리나라가 디폴트 선언을 하기 전에 IMF에 자금 차입을 요청하고 금융시장을 강제 개방할 수밖에 없는 위기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같은 위기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의 경제적 식견과 리더십은 더욱 빛이 났다. 특히 당선자 시절 대국민 호소를 계기로 시작된 전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은 지난 1900년대 초에 일제의 경제종속에 맞서기 위해 벌인 국채보상운동과 비교될 만했다. 실제로 당시에는 가난한 서민들이 아이 돌잔치에서 거둬들인 금반지, 금으로 장식한 결혼예물 등 금으로 된 것이면 무엇이든 보탰었다. 또 지하경제의 숨은 거물 혹은 재벌가 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수십 톤에 해당되는 금을 몰래 모으기도 했었다. 당시 빈부와 이념을 넘어선 전 국민적 금 모으기 동참은 모아진 금의 양을 떠나 세계가 한국 경제의 저력을 재평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리고 당시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벌인 조치들은 현재 글로벌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를 함부로 혹평하지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될 만큼 세계인들의 인식에 강렬히 남아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당선자의 호소 한마디에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미련없이 모은다는 것 자체가 한국민의 수준과 끝없는 잠재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당시 우리 민족의 잠재력을 그같이 표출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금 모으기 운동 결과, 미국 달러 기준 100억 달러 상당의 금이 모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발휘한 본격적인 능력은 소위 빅딜이라고 불리는 재계 구조조정과 배드뱅크를 통한 부실채권 양성화, 부실기업의 국가 인수와 기업회생 작업 등 IMF 탈출을 위한 제반 조치들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 재계 구조조정과 IMF 탈출 전략을 이끌었던 인사는 이헌재 경제부총리. 김대중 인맥으로 통하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추천에 의해 전격 발탁되어 금융감독원장과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 전 장관은 당시 구조조정에 버티기로 일관하던 재벌 그룹 오너들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으며 화려한 빅딜을 무리없이 진행했다. 당시 구조조정에서 가장 부각된 부분은 이헌재를 앞세운 재계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식견에 따라 IMF 탈출에서 가장 중대한 역할을 했던 조치는 배드뱅크의 설립. 당시 산업은행의 자회사 격으로 존재했던 한국자산공사를 법률개정을 통해 별도의 독립기관으로 만든 후, 이곳에서 도저히 가망성이 없는 부실기업들의 주식과 채권 등을 국비로 무차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재계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렇게 매입한 대우그룹 계열사들·현대건설·미도파백화점·한빛은행 등은 배드뱅크의 지원과 자체 노력에 의해 현재 대부분 M&A 과정을 거쳐 주요 그룹으로 편입 혹은 흡수됐거나 자체 생존에 성공했다. 당시 국고탕진이라는 일각의 비난을 들을 만큼 막대한 돈을 물붓듯 쏟아부었던 이 프로젝트는 이후 대부분의 기업을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현재 현대건설·대우조선해양·우리은행 등 대물급 물건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IMF 당시 김대중 정권 하에서 투입됐던 국고 자산의 원금을 초과 회수한 상태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인사들조차 “당시 김 전 대통령의 과감하고 신속한 움직임과 지도력이 IMF 극복의 일등공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IT 코리아 신화와 벤처기업 육성의 업적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 업적 중에서 우리 경제와 서민의 삶, 문화 전반에 가장 큰 변화를 끼친 분야는 IT산업 육성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IT 강국이다. 물론 지난 디도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과연 IT 강국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느냐에 대한 반성과 논란은 있지만,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는 점과 한반도 남부의 IT 인프라가 미국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의 어느곳보다도 완벽하다는 점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IT 강국의 위상과 함께, 네티즌들과 IT 코리아의 선봉에 서 있는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의 탄생 등이 모두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에 일어났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를 모으고, 노사모의 노란 물결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끌어올린 것도 바로 이 기같 중 육성된 IT 인프라를 활용한 전 국민적 소통을 통해 일어난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프린터라는 기계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고, 486 컴퓨터에 PC 통신 하이텔·천리안 등이 조금씩 공급되기 시작했다. 소설형 문서 하나 다운로드받는데 2시간, 영화 한 편 내려받는데 12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일부 PC 통신 이용자들이 사이버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국가가 전략적으로 광케이블 국산화에 나서고, 당시 국영기업인 한국통신(현 KT)을 활용해 전국에 LAN 선을 깔았다. 일반전화선을 이용한 PC 통신으로는 12시간 동안 내려받아야 할 영화 1편을 LAN 선을 이용한 인터넷에서는 10분이면 가능할 정도였다. 이때부터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재벌 대기업에 편중된 재계의 채질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에서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했다. 이때 수많은 벤처 재벌들이 나왔는데, 네이버와 한게임 사업을 영위하는 NHN, 한메일로 유명한 다음커뮤니케이션, 옥션 등이 모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벤처 육성 장려정책 아래에서 창업된 곳들이다. 당시 벤처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열풍 등으로 투기적 이미지가 덧씌워지자 그와 차별하기 위해 이노비즈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중소기업 육성책이라는 토양 아래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중앙회는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애도성명에서 “김 전 대통령은 지난 외환위기 때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획기적 지원책 등을 통해 경제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논평한 것.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의 벤처기업 정책과 이를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로 인해 한국 경제의 일부 재벌에 편향된 의존도는 상당부분 개선됐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을 꼽는다면 남북 간 화해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점이다. 남북 간 경제교류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에서부터 시작됐지만,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사전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