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8월 23일 오후 2시 6일 간의 국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을 끝으로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 전 대통령은 한마디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에 큰 족적을 남긴 한국 정치사의 거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숱한 고초와 시련을 딛고 대통령에 올라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그야말로 5전6기의 오뚝이 인생을 살다 떠났기 때문이다. 고인의 85년 삶은 그 자체가 한국 정치사의 질곡과 부침을 대변할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그런 고인의 서거와 함께 한국 정치사의 영욕을 담은 이른바 ‘3김 시대’도 저물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3김 시대’가 저문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생존한 김영삼 전 대통령 그리고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 등 3명의 김 씨들이 정치 9단이라는 노련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한국 정치사의 한 시대(1960년~2002년)를 주름잡았던 전성기가 마치 서녘에 지는 해처럼 사라져감을 비유한 말이다. 따라서 한국 정치사 그 자체를 대변해오기도 한 3김 중 한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3김 시대, 3김 정치의 역사적 종언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3김이 한국 정치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는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지원하면서 때로는 경쟁하고 갈등하면서 이른바 문민통치라는 민주주의 초석을 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3김 정치는 그 역사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재하는 암적 요소 때문에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효율적인 반독재 투쟁을 명분으로 시스템에 의한 민주적 정당정치보다 인치에 가까운 카리스마 정치를 키웠다. 가신정치·계보정치·돈정치라는 부정적 요소를 양산해냈다. 특히 3김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지속하기 위해 국회의원 공천권을 예외없이 하향식·중앙집권식으로 휘둘러왔다. 게다가 3김 정치의 가장 큰 폐해인 ‘독재 대 반독재’ 구도를 바꾸면서 만들어진 영남· 호남· 충청 등 갈라진 지역주의를 부추겼다. 반독재 투쟁이라는 정치구도가 정상적인 정당정치로 대체되지 못한 채 3김의 정치적 대권 야망과 출신 지역을 볼모로 한 지역구도로 대체된 것이다. 이 같은 3김 정치의 부정적 측면은 아직도 정치 1번지인 여의도를 지배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정치 불신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3김 이후 첫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 탄생은 겉보기로는 3김 정치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3김 정치의 폐해는 오히려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거치면서 대국민 직접정치라는 양상으로 변형됐다. 그것은 의회정치·정당정치를 외면하는 왜곡현상, 정치와 국민 간의 괴리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는 3김 정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좀 더 성숙하게 손질하고 다듬는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도처에서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들 가운데는 우선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힌, 3김 정치의 폐해인 지역감정 해소와 생산적인 정치문화를 이루기 위한 선거제도 및 행정구역 개편 방안이 가장 대표적인 목소리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물론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학계나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별다른 반대나 거부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제안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은 결과적으로 3김 정치가 남긴 폐해를 온 국민이 함께 극복하자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3김 정치의 공과에 대한 냉철한 판단 및 평가와 함께 새 정치시대를 열 수 있는 절호의 전기가 마련된 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