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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ABOUT ART]착각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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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3호 편집팀⁄ 2009.08.31 18:29:55

김하영(화가, 색채학 강사) latecomer69@naver.com 검은색 면에 바둑판처럼 그려진 그림을 보다 보면 교차하는 부분에서 희미한 망점(網點)이 혼란스럽게 움직이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혹 너무 자주 이런 느낌을 경험해 빈혈이 아닐까 의심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이는 인간의 감각체계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만 그리드 효과’라고 하는데 색채의 대비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 이를 ‘착시’라고 부른다. 착시란 우리의 시각기관이 착각을 일으켜 우리 앞에 있는 물체가 실제와는 다르게 보이는 현상이다. 원근에 의한 착시, 움직이지 않는 두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현운동, 빛의 밝기나 주위 색의 영향으로 다르게 보이는 현상인 색의 대비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일본의 후쿠오카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평온한 오무라 만의 북단에 ‘하우스텐 보스(Huis ten bosch)’라는 작은 도시를 만날 수 있다. 16,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곳이다. 그곳의 ‘미스테리어스 에셔’ 극장은 ‘착시’와 관련해 꼭 방문해 볼만 하다. 착시를 예술로 승화시킨 20세기 네덜란드의 판화가 M.C.에셔(Escher,1898~1972)의 작품이 3차원(공간)적으로 재탄생된 곳이기 때문이다. 일명 ‘천사와 악마’라는 불리는 에셔의 판화작품 ‘천국과 지옥’(1960년)을 보자. 천사와 박쥐의 모습이 교차하며 형태가 확대될수록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변해가는 이 작품은 착시현상을 의도적으로 유발한다. 기하학적 원리에 입각한 환상적 세계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특이한 그의 화풍은 물고기·새·동물 등을 반복적으로 대칭 배열하고 전체를 패턴으로 완성한다. 에셔는 주변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에 바탕을 두고 내적 이미지를 표현했는데, 공간 착시와 불가능한 세계의 사실적 묘사, 수학적 개념의 정다면체를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착시를 기반으로 하는 또 다른 회화 형식으로는 옵티컬아트(optical art)가 있다. 단순 반복적인 형태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강한 대비 색을 병렬시켜 색채 간의 긴장상태를 유발하는 추상미술로 역시 시각적인 착각을 다룬다. 이를 발전시킨 이는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8~1997)였다. 그의 대작 ‘직녀성’(160x160, 1969년)은 마치 거대한 우주의 모형처럼 보인다. 선의 구부러짐은 아주 정교하게 수학적으로 반복돼 있고 각각의 원과 사각형은 수축과 팽창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이 기하학적 형태는 움직이는 듯 착시를 일으키고 한 부분을 오래 바라보기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시각적 환상(illusion)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깨어날 때의 허무함만 없다면 착각은 진실보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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