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남 연세대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심장내과 부교수 우리말에, 몹시 놀랐을 때 “가슴이 철렁 한다”는 말이 있다. “간이 콩알 만해졌다”는 표현도 있다. 예로부터 술 잘 먹고 호언장담 잘하는 호탕한 영웅호걸은 간이나 쓸개가 크다고 해서 “담대(膽大)하다”고 하였다. 의학적으로 추측컨대, 알코올성 간 질환 때문에 간과 담낭이 커진 게 아닌가 싶다. 반면, 예민하고 배짱이 적은 사람을 심장이 작고 맥이 빠르다 하여 “소심(小心)한 사람”이라고 한다. 맥이 빠른 부정맥이 잘 온다는 뜻은 아닐까? 부정맥은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 놀라기 잘하고 감정적인 사람, 스트레스 잘 받는 사람에게 더 잘 온다. 그 이유는 뇌와 심장 그리고 위장관이 모두 자율신경계라는 커다란 신경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경을 많이 쓰거나, 과음·과식·과로를 하거나, 수면이 부족하거나, 화를 많이 낸 다음에 부정맥은 잘 온다. 이 중 가장 흔한 부정맥이 “가슴이 철렁” 하는 기외수축(期外收縮)이다. 놀랄 때만 ‘철렁 하는 가슴’은 정상인에게 흔히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철렁 하는 가슴’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피로감을 느끼게 하며, 때론 “이러다 갑자기 돌연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병적인 부정맥이다. 기외수축이란 어떤 병인가 32세 김덜컥 씨는 최근에 직장을 옮긴 회사원이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하고 또 좋은 업무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연일 야근이었다. 야근이 없는 날은 회식으로 과음하기 일쑤였다. 그러기를 6개월, 몸에서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하였다. 오후만 되면 아주 기분 나쁘게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 것 같고 가슴이 화끈거리는 증상이 발생하였다. 놀랄 일이 없는데도 이런 증상은 반복되었다. 이 증상만 오면 집중을 할 수가 없고,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때론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가슴 한복판에서 오기도 하였다. 쉬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일찍 귀가하여 잠자리에 누웠으나, 철렁거리는 심장은 계속 느껴졌다. 1시간 가량을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고 나서야 증상을 잊을 수 있었다. 스스로 증상을 분석해보니, 맥이 잘 뛰다가 한 박자씩 빠지는 현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맥박이 올라가는 아침이나 운동할 때에는 멀쩡하다가, 맥이 느려지는 오후나 야간이면 ‘철렁 하는 가슴’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심장은 우리 몸에 혈액을 공급하는 엔진 펌프이다. 그러나 근육으로 만들어진 이 고성능 인공지능 엔진 펌프도 전기가 흘러야 작동을 한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 심장은 죽은 심장이다. 그런데 전기가 주기적·규칙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전기 스파크가 반복적으로 튄다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뛸 것이다. 이를 기외수축(期外收縮:extra-systole)이라고 한다.
기외수축이 올 때 맥박을 짚어보거나 가슴에 손을 대고 심장의 고동을 느껴보면 규칙적인 맥박이 몇 박자 뛰다가 한 박자 건너뛰는 현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그림1). 특히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과로·과음·과식·수면부족·카페인 등에 의해 나빠진다. 물론 스트레스는 근본원인이 아니라 악화요인이다. 기외수축은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갈 때 이상 증상을 느끼고 쉬도록 하느님이 만들어놓은 일종의 방어기제이다. 이를 무시하고 과음과 과로를 지속한다면 가슴이 철렁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심각한 ‘큰일’을 치를 수도 있다. 바로 ‘돌연사’다. 모든 돌연사는 기외수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돌연사를 일으키는 악성 기외수축은 극히 일부이다. 필자도 병원에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날 저녁에는 잠자리에서 ‘철렁이는 가슴’을 가끔 느끼지만, 다음날 깨어나지 못할까봐 걱정하면서 잠든 기억은 없다. 도리어 큰 문제가 안 되는 기외수축을 너무 소심하게 불안해하면, 불안증 자체가 부정맥을 악화시켜 기외수축을 더 많이 만드는 악순환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할 것인가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기외수축은 기본적으로 양성 부정맥이다. 그러나 심장병이 있는 환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기외수축은 돌연사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또 기외수축이 너무 자주 오다 보면 기외수축이 연달아 나오는 심실빈맥이란 악성 부정맥으로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가슴이 철렁 한다’고 모두 불안해할 일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정밀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첫째,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 둘째, 실신의 경험이 있는 사람, 셋째, 가족 중에서 급사한 사람이 있는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심전도로 기외수축을 진단하는 일이다. 부정맥 질환은 증상만으로는 제대로 된 치료가 불가능하다. 증상이 있을 때 반드시 심전도를 찍어 심전도 진단을 받아야 한다. 그 다음 단계로, 돌연사의 위험이 있는 심장병이 있는지 검사하게 된다. 홀터(Holter) 심전도와 같이 24시간 이상 장시간 심전도를 모니터함으로써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심실빈맥(악성 부정맥, 그림2)이나 너무 빈도가 잦은 기외수축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외수축은 휴식이나 일시적인 약물치료로 좋아지지만, 돌연사를 초래하거나 진행성 심장질환이 발견되는 일도 종종 있으므로, 심장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돌연사의 위험이 낮은 양성 기외수축이라면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 자율신경계 항진에 의해 나빠지는 부정맥 질환이기 때문에 자율신경계의 밸런스를 깨뜨리는 과로·수면부족·음주·카페인·과식을 절제해야 한다. 또 규칙적인 운동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악화인자의 교정이 어렵거나,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증상이 심한 경우, 또 너무 자주 나타나 돌연사의 위험이 있는 경우 약물요법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고주파 전극도자 절제술로 완치시키기도 한다. 앞에서 예로 든 김덜컥 씨는 양성 기외수축으로 진단되어 규칙적인 운동만으로 호전되었다. 술도 끊고 일도 절제하면서 현재는 안정된 직장생활을 누리고 있다. 기외수축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발생하는 ‘가슴 철렁거리는’ 부정맥이지만, 소심한 사람에게만 오는 병은 아니다. 때론 돌연사의 그림자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으므로, 심장검진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과욕을 버리는 것이 기외수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