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인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남편, 그런 남편을 돌보는 ‘장례지도사’ 아내. 이 기구한 부부의 잔인한 러브 스토리가 가을 스크린을 물들인다. 9월 24일 개봉되는 <내 사랑 내 곁에>는 국내에서 루게릭병을 처음으로 조명하는 영화이다.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멜로 영화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너는 내 운명>, 사실적인 내용과 연출로 호평을 받은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휴먼 스토리이다. 특히, <내 사랑 내 곁에>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 <하얀 거탑>의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등 출연작마다 캐릭터의 완벽한 ‘싱크로율’로 인정받은 배우 김명민이 루게릭 환자로 캐스팅돼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그는 주인공 종우의 루게릭병 진행 경과를 영화에서 표현해내기 위해 실제로 20kg이나 감량하여 “역시, 김명민”이라는 충격과 탄성을 동시에 자아냈다. 개봉을 9일 앞둔 9월 15일 <내 사랑 내 곁에>의 언론시사회가 서울 용산구 용산CGV에서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실제 루게릭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도 함께했다. 몇몇 환자와 가족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르고 통곡을 하기도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와 언론시사회 현장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본다. [Preview]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전도 유망한 법학도였지만 현재는 몸이 조금씩 마비되어가는 루게릭병 환자인 종우(김명민 분)는,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날, 어린 시절 한동네에서 자란 장례지도사 지수(하지원 분)와 운명처럼 재회하고 사랑에 빠진다. 시체를 닦는 더러운 손이라고 사람들에게 멸시당하던 자신의 손을 예쁘다고 말해주는 종우와 둘만의 결혼을 감행한 지수에게 미래보다는 지금이 훨씬 소중하다. 그녀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다. 신혼 보금자리를 병원에 차린 지수와 종우에게는 죽음도 가소로울 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병원에서 깨소금 같은 신혼을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수가 종우를 위해 시도한 치료가 위험을 부르고, 종우는 전신마비나 식물인간 상태의 중환자들만 모인 6인실 병동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점점 몸은 마비되어가고 의식을 잃는 날이 많아지자, 종우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종우는 남편밖에 모르는 지수를 놔주기로 결심, 지수를 더욱 더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지수는 이미 종우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종우도 지수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마지막까지 지수와 함께하기로 한다. 결국 언어장애가 시작되고, 종우는 곧 다가올 죽음과 지수와의 이별을 위해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딛는다. 이처럼 영화는 죽음이 예정된 루게릭 환자 남편과 매일 죽은 사람과 마주하는 장례지도사 아내의 아이러니하면서도 애잔한 사랑을 다룬다. 영화의 소재는 신파이지만, 신파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 이유는, 루게릭 환자이지만 전도 유망한 법학도로서 꿈과 의지가 대단한 남편, 남들은 터부시하는 장례지도사이지만 늘 밝고 씩씩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아내, 이 두 남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지기 때문. 눈물을 쏙 빼는 최루성 멜로도 아니다. 뭔가 눈물로는 부족한 슬픔과 감동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보고 난 후의 여운이 정말 길다. 김명민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20kg 감량은 연기의 극히 일부분이다. 고독·기쁨·사랑·두려움이 교차하는 그의 눈빛은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하지원도 빛난다. 김명민의 그늘에 가려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해운대>의 사투리 처자는 온데간데없다. 한편, 영화는 종우와 지수의 이야기 외에도, 임하룡·임성민·남능미·최종률·손가인·신신애·임종윤·임형준 등을 통해,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도 어루만진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괴로운 사람들이지만, 그들 나름의 희로애락이 있음을 일깨운다. ‘눈물 펑펑’…<내 사랑 내 곁에> 기자간담회 용산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보기만 해도 안쓰러울 정도로 깡마른 배우 김명민과 김명민처럼 마른 하지원, 두 배우와 비슷하게 마른 박진표 감독이 자리했다. 영화의 여운이 긴 탓인지 간담회는 조용했고, 질문은 예상외로 많지 않았다. 김명민은 이날, 영화 촬영 중에 실제로 눈물을 흘린 에피소드를 공개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종우가 지수에게 입으로 반지를 주는 장면을 여러 컷 찍었는데, 한 컷을 찍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세팅 시간에 지원 씨와 마주보며 내내 울었다”고 공개했다. 이어, 하지원은 “마지막에 종우를 보내는 장면을 찍고 나서 멍했다”며, “현장에 있을 때는 멍하게 있었는데, 숙소에 들어와서 혼자 펑펑 울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직까지 지수가 내 안에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이번 배역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루게릭 환자 종우로 분하기 위해 김명민이 20kg이나 감량한 사실은 유명하다. 그는 과도한 체중 감량에 따른 불면증·저혈당 증세로 고통받았다. 뿐만 아니라, 김명민은 촬영 수 개월 전부터 루게릭병에 대한 자료 조사는 물론, 루게릭 환자들과 주치의를 정기적으로 방문해가며 치밀하게 캐릭터를 연구했다. 또한, 루게릭병 환자들의 병 진행 경과에 맞춰 손동작·발동작·표정 등이 어떻게 미묘하게 다른지 분석해 연기에 반영했다. 김명민은 “루게릭 환자답게가 아닌 루게릭 환자인 것처럼 살았다”면서, “이 캐릭터는 내가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연기에 대한 강한 열정을 드러냈다. 이어, “영화였건 다큐멘터리였건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캐릭터를 그리는 것”이라면서, “카메라에 담기든 안 담기든 루게릭 환자로 살았다”고 덧붙였다. 하지원이 열연한 지수는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 직업상 죽은 사람을 대하면서 겪는 괴로움과 주위의 멸시, 그리고 희망 없이 스러져가는 남편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를 술로 달랜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하지원의 취중 연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지원은 “평소에 술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술 마시는 연기가 가장 어색하고 민망하다”면서, “이번에는 영화 촬영 전부터 술을 많이 마시면서 다녔고, 촬영 때는 감독님과 술을 마신 뒤 정말 취해서 마음 편하게 임했다. 술 취한 신은 다 마시고 했다”고 고백했다. 끝으로, 박진표 감독은 “끝까지 곁에서 지켜주고 그것이 삶의 이유가 된 가족의 사랑을 담으려고 애썼다”면서, 이 영화를 ‘삶과 사람과 죽음이 있는 이야기’라고 요약했다. 루게릭병 이란… 루게릭병은 운동신경 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되어 지능ㆍ의식ㆍ감각은 정상인 채 온몸의 근육이 점차 마비되어가는 희귀병이다. 아직까지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법도 없어, 대개 발병 후 3~4년 안에 호흡에 필요한 근육마저 마비돼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사망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팔다리나 얼굴 근육 마비를 시작으로 결국에는 눈만 깜박거릴 수 있을 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병이 진행되는데, 말짱한 정신으로 하루하루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변해가는 자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