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때 아닌 내홍을 겪고 있다. 당 노선을 둘러싼 갈등과 지지부진한 재보선 공천으로 당 지도부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 당 지도부는 ‘민주당 브랜드 법안’과 ‘민생·부자감세·4대강사업·세종시’의 4대 쟁점을 이슈화시키며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거대여당에 맞서는 제1야당으로서 뚜렷한 색깔과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정통 민주세력 복원을 명분으로 ‘민주세력 끌어안기’에 나서야 할 이때, 당 지도부가 복당 의사를 밝힌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구애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주당엔 세 가지가 없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을 재창당해야 한다.”이는‘민생 포장마차’로 전국을 누비고 있는 민주당 천정배 의원의 말이다. 천 의원은 “민주당은 정체성과 비전·정책을 상실하는 등 지난 수년 간 표류해왔다”며 “현 지도부가 들어선 지 1년 2개월이 됐는데도 민주당의 정체성과 정책이 뭐냐는 당 안팎의 의문에 대해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고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천 의원은 이어 “지난 총선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했을 당시 ‘민주당에는 정체성과 가치·인물 등 3가지가 모두 없다’는 지적을 받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민주개혁 진영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면서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의원뿐이 아니다. 수원 장안 지역이 재보선에 포함되자 당 지도부가 ‘삼고초려’했지만 끝끝내 출마불가 선언을 한 손학규 전 대표도 목소리를 높였다. ‘반성이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글로 불출마의 변을 대신한 손 전 대표는 “지금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승자가 독주하고 원칙이 무너진 데서 국민의 고통이 시작되었음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해법을 가지기 전에는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손 전 대표는 “사즉생의 각오로 나서야 한다”며 “찬바람을 맞고 험한 길을 헤치며 처절한 각오로 자기단련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같은 의원들의 쓴소리는 당내에 확산되는 위기감과 무관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 노선을 걸으면서 민주당의 지지층을 잠식하고 그 결과가 여론조사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 각종 조사마다 편차가 있지만, 7월 전까지 30%대였던 국정지지도가 40%대 벽을 넘어섰다. 민주당 지도부가 꺼낸 돌파 카드는 민주당 브랜드 법안과 ‘민생·부자감세·4대강 사업·세종시’의 4대 쟁점이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무엇보다 민생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라며 “주택임대차보호법·노인틀니법 등을 민주당 브랜드 법안으로 정해 정기국회에서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국감과 2010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부자감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4대강사업으로 인한 복지·교육 예산의 삭감 문제를 지적한다는 계획이다. 서민정책 MB 선점…“새로운 카드 없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떡볶이집, 남대문시장, 농촌 마을을 누비며 친서민 행보에 나서고 있는데, 민주당 역시 ‘민생’ 행보를 추진한다는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당 지도부가 민생 행보를 걷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눈에 민주당이 한 일이라고는 집권세력을 공격하고 국회 운영을 막는 것밖에 없었다는 점에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가 ‘가짜 친서민 정책’이라고 비난만 했지 민주당은 정작 대안이라고 내놓은 게 없다는 평이다. 중산층과 서민층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책에 중산층이 없다는 것이다. 신낙균 의원은 “부자감세·4대강사업·미디어는 야당이 견제하고 계속 투쟁해야 하지만,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 강화 뿐 아니라 교육과 세제 문제에서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스펙트럼을 넓히고 당의 지지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대안정당으로의 발전을 역설했다. 한 중진 의원은 “국민들이 ‘민주당이 일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무언가가 없다”며 “지도부가 정치적 어젠다를 잡아야 한다. 정치권을 풍미할 관심 있는 아젠다가 없다”고 비판했다. 상대 당의 정책을 비판만 하는 네거티브 전략만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김영진 의원은 “행정구역 개편은 지난해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정세균 대표가 얘기한 걸 이명박 대통령이 받은 것이고,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도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며 “반대만 하는 정당으로 비쳐져선 안 되며 ‘옳은 건 옳다’는 자신감 속에 이들 이슈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인기 의원은 “지도부가 모든 전투마다 이기려고 하니 ‘발목 잡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이런 비판에서 탈피하려면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해 야당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관심을 끌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언론악법 반대’가 당의 외연을 넓히고 통합 원칙을 밝히는 것보다 우선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 중진 의원은 “야당이라서 비판만 하면 된다는 생각도 낡은 편견”이라며 “이번에 정권 재창출을 한 일본의 민주당은 선거에서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지 않았다. 정책설명회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펼쳤고 ‘저 사람을 찍어주면 바뀌겠구나’하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당 안팎에서 민주당의 노선 변경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상천 의원은 “중도개혁의 원조이고 서민·중산층 보호의 기수인 민주당은 어디 가버리고 한나라당이 그것을 차용해서 하고 있다”며 “노선을 명확히 하고 중산층과 서민들이 민주당에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시니어 그룹과 수도권 출신 일부 의원들은 “민주당 노선이 좀 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는 보다 분명한 각을 세우고 한나라당과 중도에서 경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세균, 당 문 활짝 열어놔야” 특히 거물급 전략공천이 무산되면서 급하게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민주당에는 ‘5:0 참패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정 대표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조기 전당대회의 필요성까지 거론되며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의 혁신을 위해 지난 1년 2개월의 임기를 거친 정 대표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특히 ‘대통합론’으로 친노 인사를 비롯해 정동영 의원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시기에 정 대표가 당내 입지를 다지고 대권 후보로 도약할 움직임을 취해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9월 14일 동교동계 한화갑 전 대표와 김경재 전 의원이 복당했지만, 정 의원은 복당하지 않았다. 당 안팎으론 정 의원과 민주당 모두 민주당 복당에는 동의하고 단지 시기의 문제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를 인정하기엔 정 의원의 최근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정동영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민주당 복당 문제와 관련하여 “마냥 앉아서 기다리지만은 않을 생각이다”라며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당을 통해서 정치를 시작해 지금까지 해왔고, 또 민주당이 정치개혁에 쭉 앞장서서 개혁정치를 해오는 과정에서 사실 제가 크고 작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의 민주당 복귀가 논의되고 있음에도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정세균 대표가 한 명이라도 힘을 보태야 하는 시기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왜 막는지 모르겠다”며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가 취임사에서 당 문턱을 낮추겠다고 하는데, 이는 정세균 대표가 해야 할 말”이라고 힐난했다. 천정배 의원은 “민주당은 당 밖 인사 몇 명을 영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득권을 버리고 민주·개혁·진보세력과 통합해야 하고,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등 통합하기 어려운 세력과는 연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 중심으로 몇 명을 흡수하는 수준에서 통합하려 한다면 국민적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