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심장내과 전문의·예술의전당 후원회장 요사이 와인이 건강에 좋은 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모든 술은 소량(하루 1~2잔)을 마시면 심장병과 건강에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소량의 술은 기분을 좋게 하고, 용기와 자신감을 주며, 예술적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과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를 작곡한 러시아의 무소르크스키(Musorgskii, 1839~1881) 같은 훌륭한 작곡가는 알코올 중독으로 42세의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쳤다. 과음은 건강뿐 아니라 창작 활동에도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샴페인은 사랑의 묘약 많은 오페라에는 와인과 샴페인 등의 술이 등장한다. 와인을 비롯하여 술은 사랑의 묘약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사랑을 파괴하고 살인을 하는 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페라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도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는 여러 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에 초연된 베르디의 오페라이다. 이 오페라는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서 오로지 인생의 향락만을 위해 사는, 한 귀족의 애첩 비올레타와 그녀에게 진실한 사랑을 바치는 순진한 시골 청년 알프레드 제르몽의 사랑 이야기이다. 알프레드는 “꽃으로 장식된 잔으로 새벽까지 축배를 들자! 우리의 심장을 한없이 두근거리게 하는 사랑을 위하여 축배를 들자! 이 잔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사랑의 키스를 위하여 축배를 들자!”고 노래 부른다. 이 축배 제의에 비올레타는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요. 쾌락이 없는 인생은 모두 헛짓이요”라고 답을 하면서 그의 사랑을 거절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모르고 사는 비올레타는 알프레드의 순정과 샴페인에 취해 꽃을 한 송이 건네면서 “이 꽃이 시들면 다시 찾아와요”라고 청한다. 이때 샴페인은 비올레타가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데 도움이 된 사랑의 묘약이 아닐까? 샴페인 없이는 오페라가 될 수 없는 ‘박쥐’ 그 많은 오페라 중에서 ‘박쥐’처럼 샴페인이 많이 흐르고 만취한 인물이 많이 나오는 오페라는 없을 것이다. 박쥐는 1874년에 빈에서 초연된 요한 스트라우스의 희가극 작품이다.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 로잘린데는 멋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가난한 성악가인 알프레드 대신 귀족이자 부자인 아이젠스타인과 결혼한다. 이 남편이 한 관리를 모욕했다는 죄목으로 8일 간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이것을 알아낸 알프레드는 로잘린데를 찾아가 옛 정을 다시 나누자고 애걸하며 샴페인을 마시면서 “마셔요, 마셔요, 또 마셔요”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드디어 이 두 사람은 같은 잔으로 샴페인을 마시기 시작한다. 남편보다 미남이자 매력적인 알프레드는 “술은 그대의 눈동자를 빛나게 하네, 정열은 우리를 기만하는 꿈일 뿐이지, 영원한 순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야, 행복이란 현실(남편이 감옥에 가 있는)에 복종하는 거야”라며 로잘린데를 유혹한다. 샴페인에 취한 로잘린데는 남편이 없는 며칠만이라도 옛 애인과 정을 나누어보기로 결심하지만, 일이 벌어지기 직전에 형무소 소장이 남편을 연행하러 오는 바람에 알프레드의 유혹은 허사로 끝난다.
제2막에서는 아이젠스타인의 친구가 아이젠스타인을 골탕 먹이려고 오르로프스키 왕자의 별장에서 파티를 여는데, 아이젠스타인과 로잘린데 그리고 아이젠스타인의 하녀 아델레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신분을 속이고 파티에서 만나게 된다. 누가 누군지를 모르면서 서로 유혹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가운데, 오르로프스키의 선창으로 “왕과 황제도 모두 샴페인을 좋아하네, 샴페인은 모든 술의 왕이라네”라는 샴페인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평생 최고의 파티를 즐긴다. 이 오페라의 제3막에서는 모두들 감옥에서 만나게 되는데, 거의 모두가 만취한 상태에서 한판의 희극을 연출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샴페인 탓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술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사고와 망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와인, ‘오텔로’에게 비극을 안겨주다 ‘오텔로(Otello)’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들어 1887년에 초연한 작품인데, 베르디의 오페라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베르디는 1871년에 ‘아이다(Aida)’로 대성공을 거둔 후 이태리 최고의 작곡가가 되었으며, 부자가 되자 54세의 나이에 은퇴하여 시골에서 살려고 했다. 그러나 라스칼라의 제작자이자 지휘자인 파씨오의 끈질긴 설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Othello)를 원작으로 하여 오페라를 작곡하기로 결정한다. 이 오페라의 배경은 1440년대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였던 사이프러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사이프러스의 총독인 무어인 오텔로, 출세를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음모도 서슴지 않는 뱀 같은 냉혈인간 이아고, 생명을 걸고 오텔로를 사랑하지만 이아고의 음모로 간통 의심을 받아 오텔로의 손에 죽는 데스데모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아고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신을 가장 신임했던 오텔로, 죄 없는 그의 약혼녀, 그리고 자신의 경쟁자였던 카시오까지 모두 없애버린다. 그리고 그는 검은 피부색을 증오하는 최초의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했다. 이아고는 오텔로가 카시오에게 자신이 원했던 선장 자리를 주자, 술을 잘 못 마시는 카시오에게 오텔로와 데스데모나의 결혼을 축하해야 한다며 “목을 축여라(Inaffia l'ugola!)”를 부르면서 카시오를 만취시키고, 데스데모나를 짝사랑하던 로드리고를 시켜 결투를 하게 하여 난장판을 만든다. 그러자 잠에서 깨어난 오텔로와 데스데모나가 등장하여 카시오는 그 자리에서 직위를 해제당하고, 이아고는 우선 1차 목표를 달성한다. 이 장면은 술이 적을 무너뜨리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와인으로 수많은 여자의 정조를 빼앗은 ‘돈 조반니’ 돈 조반니(Don Giovanni)는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을 희롱하고 겁탈한 남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1787년에 모차르트가 이 전설을 오페라로 만들어 초연했다.
돈 조반니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돈나 안나를 겁탈하려다 기사장인 그녀의 아버지가 저항하자 이 노인을 죽인다. 그리고 두 번째 여인 엘비라를 정복한 바 있는데, 이 두 여인이 자신을 쫓는 와중에도 시골 농부와 결혼을 약속한 체를리나에게 결혼을 하겠다며 속이고 초야권을 뺏으려 한다. 그리고 돈 조반니는 마을 여성들을 자기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하면서 아리아 ‘드디어 와인(Finch'an Dal Vino)’을 부르며 하인 레포렐로에게 예쁜 여자들을 자신의 방으로 보내라고 지시하고는 “내일 아침까지는 10여 명의 여자 이름이 내 명단에 추가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는 귀족의 신분과 잘생긴 얼굴, 돈과 와인을 잘 이용하면 많은 여자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부도덕한 색마의 말로는 좋을 수가 없으니, 결국 지옥으로 추락하고 만다. 와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자들을 유혹하는 좋은 무기로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 ‘햄릿’에게 결단을 내리게 한 와인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프랑스의 토머스가 오페라로 작곡한 이 작품은 1868년에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햄릿(Hamlet)’은 오페라보다는 연극이 더 유명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햄릿은 13세기 덴마크 왕가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유혈 사건을 제재로 하여, 왕자인 햄릿이 부왕을 독살한 숙부와 불륜을 저지른 어머니에게 복수하는 이야기이다. “오페라에서 햄릿 왕자는 고통을 잊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놓고 ‘오 와인이여, 내 고통을 잊게 해 다오(O vin, dissipe la tristesse)”를 부른다. “오 와인이여, 나의 슬픔을 거두어 다오 / 술에 취한 꿈이여, 조롱하는 웃음이여 / 달콤한 와인이여, 나의 마음을 독 들게 하여라, 그리고 나의 고통을 잊게 해 다오.” 만취한 햄릿 왕자는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To be or not to be)’하는 망설임을 제치고 드디어 궁전에서 열린 연회장에서 피를 상징하는 빨간 포도주를 전신에 뿌리고 숙부를 살인자로 고발한다. 이 오페라에서 와인은 고통을 잊게 하는 묘약이기도 하지만, 복수를 감행하는 데 결단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오페라에서 술은 다양한 역할을 한다. 우리 주변에도 술로 슬픔을 달래고, 술로 용기를 얻어 못 하던 말을 다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필자는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소량의 와인은 약이지만 과음은 독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오페라에서도, 적당량의 와인은 고통을 잊게 하고 인생에 즐거움을 줄 수도 있지만 만취는 독이 되기도 하고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