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요약 현대인이란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할 것이다. 언제나 부초처럼 정착되지 못하는 삶, 그리고 그러한 삶을 힘겹게 엮어 가는 현실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낯선 이가 될 수밖에 없다. 작품에 등장하는 창백하고 우울하며 불안에 찬 인물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의 상황을 여실히 나타내주는 자화상으로 볼 수 있다. 점점 사회구조가 전문화 세분화되고 있는 거대한 현대사회의 구조 안에서 인간은 그 공동체를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변함없는 삶에 힘들어하면서도 그저 현실에 순응해 가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본인의 조형적 관심은 왜소하고 나약하게만 보이는 현대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모티브로, 독자적인 인물화의 조형세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인의 정서 또는 미감에 의한 새로운 조형방식(造形方式)을 찾아, 시류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견고한 주체의식을 담보로 하여 독자적인 조형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 또는 미감’이란 한국인만의 경험과 체질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정서적인 공감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맞는 표현형식과 기법으로 한국적인 얼굴, 현대인의 표정을 통해 삶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모습 즉, 우리 스스로 초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대를 연상시키는 텅 빈 화면의 가운데에 또는 화면의 가장자리에 치우친 인물의 표정과 손과 몸의 과장 없는 작은 몸짓, 정면을 향한 공허한 시선 등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무기력함과 절망 때문에 좌절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간의 작업은 일관적으로 분채라는 전통적인 채색재료가 가진 은은한 깊이를 이용한 수간채색화였으나 최근 구아슈와 아크릴을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작가들을 필두로 공격적인 조형을 위하여 수많은 재료 실험들이 진행됐으며, 이러한 결과 한국화의 경계는 급속히 확장될 수 있었다. 이질적인 재료의 도입 자체보다는, 이러한 재료를 통한 새로운 조형이 우리의 고유한 조형 체계에 충실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요점이 되는 것이다. 배경에 등장하는 무지개나 인물이 지닌 꽃잎, 가방 등의 소재가 이를 암시하고 있다. 살며시 불어오는 한 가닥 바람에도 의욕과 희망을 새롭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우리인 것이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작품제작 방향은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는 연속적인 동일 선상 안에서 이루어져 왔으나, 다음에는 최근 새롭게 시도하는 재료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더욱 깊이 있는 화면을 위한 조형적인 탐구와 모색에 더욱 정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