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묵은 얘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조지 부시 직전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로 있을 때입니다. 그는 그때 벌써 “차기 대통령”이라는 수군거림을 들을 정도의 거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루는 주 정부 청사에서 차를 냅다 몰고 달려 나갔습니다. 그가 주 청사 정문을 벗어나자마자 교통경찰이 붙잡았습니다. 교통경찰 왈 “운전면허증을 주시지요.” 부시 왈 “나, 주지사야” 경찰 왈 “그건 당신 사정이고, 나는 교통경찰이니, 면허증을 내시지요. 딱지입니다.” 당시 텍사스의 지역 신문 <댈러스 모닝 뉴스>에 난 짤막한 기사 내용입니다. 사실 별 얘기도 아닙니다. 후속 기사도 없었고요. 한국이라면 후속 기사가 나왔겠지요. 차기 대통령감에게 딱지를 뗀 경찰이 영웅이라는 둥, 아니면 철없는 경찰이 좌천됐다는 둥….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그 교통경찰도 차기 대통령감이라는 거물이 “나 급해서 그래”라고 말했을 때 조금은 쫄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 교통경찰은 ‘법’에 기댔겠지요. 속도위반자에게는 누구든 딱지를 떼라는 법에, 그리고 법에 따라 한 일이니 법이 나를 지켜주리란 기대에. 부시도 마찬가지로 법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법을 뛰어넘는 일을 했을 때 자신에게 어떤 이익 또는 불이익이 올지 생각해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법치 사회는 이렇게 심플한 사회입니다. 법대로 하면 되지, 이런저런 인정사정을 돌아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고 왜 학벌이 없고 지연이 없겠습니까. 가끔 문제도 됩니다. 같은 대학 법대를 나온 판사가, 동창 또는 동문 범죄자를 구속해야 할 사안인데도, 보석금을 받고 방면했다고 호된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뒷골목 또는 사막 한가운데서라도, ‘멈춤(Stop)’ 표지판이 나오면, 글자 그대로 풀 스탑(full stop, 속도계를 0으로 떨어뜨렸다가 다시 출발하는)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법을 지킬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 결론은 ‘정체성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처럼 동창·고향사람 같은 정체성이 많고, 이 정체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치(人治) 사회에서는 법에 기댈 필요 없이, 사람끼리 해결하는 게 더 직방입니다. 하지만 미국 같은 법치 사회에서 인치를 하려 들다가는 자칫 본인이 다칩니다. 법도 주법·연방법이 있고, 수사기관-법원도 주경찰·FBI(연방수사국)·지방법원·주법원으로 다양합니다. 사람은 또 얼마나 다양합니까. 백인들끼리는 오케이 되는 사안도 흑인이나 황인종은 못 참을 수 있고, 한국 사람끼리는 별 일 아닌데 백인이 용납 못할 일도 있죠. 이런 사회에서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법으로 해결하는 게 최고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법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법을 쳐다보도록 미국의 사법 기관들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범법자에게 그야말로 엄청난 벌을 내립니다. 교통경찰의 정지 명령을 끝까지 거부하는 운전자는 사살하고, 엔론(Enron)처럼 경제법을 어기는 경영주에게는 평생도 모자란 징역형을 내리고, 부정 축재한 재산은 1달러 남김 없이 회수하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학벌-지연-법 위의 실력자 같은 문제를 우리끼리 해결하지 못하면 남은 해결책은 개방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왕창 들어와 살면서 ‘인종의 합중국’이 되면, 동창끼리, 지역사람들끼리 뿡짜뿡짜 박자를 맞추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해집니다. 이렇게 경계가 뚫리고, 말로만 글로벌이 아니라 사는 환경이 글로벌해져야 한국에서도 진정한 국제 표준이 통하지 않겠냐는 생각입니다. “법질서 확립”이라는 말을 우리는 최근세사에서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1백 년 이상을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렇게 교육을 받았는데도 한국의 준법 수준은 거의 바닥 수준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 “법질서 확립”을 말하는 사람들이 “너희들은 지켜라. 나는 안 지킬 테니”라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도 어서 빨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경계들이 뻥뻥 뚫려, 우리끼리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이 섞여 사는, 그래서 객관적 기준이, 법이 우리를 지배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