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3.06.27 15:48:10
"제가 환자의 치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작고한 고(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의 연구실 벽 한켠에 붙어있는 기도문 내용이다.
26일 故주석중 교수의 장남 주현영씨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정리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는 서류들 속에서 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만년필로 직접 쓴 몇 개의 기도문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주 씨는 "정성을 다해 수술하고 환자를 돌보지만 내 힘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니,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그렇게 적어두신 듯 하다"며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전했다.
주 교수의 장남 주현영씨가 유족을 대표해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주현영 씨가 추모객들에게 전한 감사 메시지를 공개했다.
주 씨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비통했지만, 정말 많은 분들께서 오셔서 아버지가 평소 어떤 분이셨는지 얘기해 주시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 주셔서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며 추모객들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는 장례 후 유품을 정리하러 연구실에 들린 일화를 전했다. 주 교수의 연구실에는 방금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나간 것 같은 옷가지들과 책상 위 서류들, 그리고 몇 개의 메스와 걸려 있는 가운 등이 금방이라도 주 교수가 돌아올 것처럼 걸려 있었다.
그 곳에서 아들 주현영 씨를 울린 것은 책상 곳곳에 수도 없이 널려진 라면 스프였다. 주 씨는 "(아버지가) 쓰시던 책상 서랍 여기 저기, 그리고 책상 아래 한켠에 놓여진 박스에 수도 없이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다"면서,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환자 보는 일과 연구에만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졌다"며 애통해했다.
주 교수의 장례에는 의료계 관계자 뿐 아니라 그를 기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방문해 그의 죽음을 애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 주현영 씨는 그 가운데 아버지 빈소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를 만난 사연을 소개했다. 그 부부는 "갑작스러운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어려운 수술이라며 모두 기피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집도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며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면서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떻게 하겠냐'고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힘들고 긴장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심장 수술에 정성을 다해 도와 주신 많은 분들께 늘 고마워하셨다"며,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데 능한 분이 아니셔서 아버지의 진심이 전해지지 못했다면 이렇게나마 아버지의 뜻을 전해 드리고 싶다"고 거듭 감사함을 내비쳤다.
주 교수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돌아가시기 얼마 전 부인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들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 많이 썼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하여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들 주현영 씨는 "많은 분들께서 저희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해 주셨다"며, "여러분이 기억해 주신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다"며 추모객들에 대한 깊은 감사를 전했다.
아들 주현영씨의 감사 인사를 전한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앞서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주 교수를 애도하며 "(주석중 교수는) 미국에서 자라 영어에 능통하고, 미국 몬태나 듀란연구소에서 연수한 인재다. 심성이 착해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국내 대동맥수술의 수준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인재 중의 인재"라고 전한 바 있다.
또한 노 회장은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2년 전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하며 "그날도 수술 환자의 출혈이 많아 저녁을 함께 못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의 주목 받지 않는 한 구석에서 묵묵히 사람을 살리는 진정한 영웅의 삶을 산 의사"라며 주 교수의 헌신적 삶과 공헌을 기렸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