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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인디언이 없는 인디언 이야기’…그들은 누구인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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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75호 김금영⁄ 2024.07.04 11:16:30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인디언이 없는 인디언 이야기’, 과연 무슨 이야기일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전을 관통하는 중심 모토다. 이번 특별전은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인디언의 문화와 예술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자리다. 이처럼 전시의 중심엔 인디언이 있지만, 정작 인디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흔히들 ‘인디언’이라 하면 서부 영화에서 머리를 독수리 깃털로 장식한 추장 또는 캠핑장의 티피 텐트, 혹은 유명 스낵의 이름이나,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에서 독수리 머리 장식을 하고 나타난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은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인디언을 다루면서도 인디언을 벗어났다는 설명이다.

인디언이라는 용어 대신 전시가 택한 건 ‘북미 원주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김혁중 학예연구사는 “인디언이라는 용어는 1492년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데서 붙여진 것”이라며 “이번 특별전은 오래전부터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북미 원주민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북미 원주민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윤성용 관장은 “이번 전시는 우리가 인디언으로 불렀던, 북미 원주민의 다양한 문화와 세계관에 다가가는 자리”라며 “몇 달 전 전시 준비 과정 중 직원에게 ‘북미 원주민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뭐라 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돌아온 답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였다. 이번 전시 내용과 전시품을 보면서 왜 직원들이 그런 대답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고심 끝에 전시 제목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미 원주민은 획일적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문화를 지닌 매우 다채로운 사람들”이라며 “단편적인 이미지를 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북미 원주민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을 다시 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 원주민의 일상의 예술은 공예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띈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를 위해 미국 내 북미 원주민 예술품을 수집한 최초의 박물관 중 하나인 덴버박물관과 손을 잡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공동으로 전시를 기획한 덴버박물관은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에 위치한 미국 중부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북미 원주민 관련 소장품만 1만 8000여 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덴버박물관과 다년간 협업을 이어왔다. 실제로 덴버박물관은 한국 미술품을 300여 점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실도 운영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분청사기를 대여해줘 이를 선보이는 ‘무심한 듯 완벽한, 한국의 분청사기’전이 지난해 덴버박물관에서 열려 해외 관람객을 만나기도 했다. 이번엔 덴버박물관의 소장품이 국내를 찾아 북미 원주민의 삶에 다가가는 기회를 제공한다.

북미 원주민은 북쪽 알래스카에서 남쪽 뉴멕시코에 이르는 광활한 북미 대륙에 사는 만큼 살아가는 방식, 풍속이 다채롭다. 사진=김금영 기자

덴버박물관 크리스토프 하인리히 관장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에 와서 아름다운 전시품을 볼 수 있어 기쁘다”며 “덴버박물관은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 뿌리를 둔 7만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북미 원주민 관련 소장품이 특히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 소장품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 원주민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를 통해 북미 원주민 예술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그들이 예술 역사에 기여해온 바를 조명하려 한다”며 “예술과 창의성은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포용력을 강화한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과 깊어질 협력 관계에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관계’와 ‘연결’을 중요시한 북미 원주민의 삶

북미 원주민과 관련된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북미 원주민의 다양한 문화와 세계관을 보여주는 전시품 151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시작은 1부 ‘하늘과 땅에 감사한 사람들’이 연다. 여기서 전시는 관람객에게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570여 개의 북미 원주민 부족을 하나의 단일체로 보지 않고, 부족수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에 접근하려는 의도다.

김혁중 학예연구사는 “북미 원주민은 북쪽 알래스카에서 남쪽 뉴멕시코에 이르는 광활한 북미 대륙에 살고 있다”며 “그렇기에 자신을 둘러싼 지후, 지리적 특성이 달라 살아가는 방식, 언어, 풍속이 다채롭다”고 말했다.

30여 개 부족의 과거와 현재의 의식주를 엿볼 수 있는 집, 옷, 그릇 등을 볼 수 있다. 북미 원주민의 보금자리를 작은 조형물 형태로 구현해 놓기도 했는데, 추운 지역에서는 얼음을 이용한 이글루, 건조하거나 더운 남서부 지역에서는 진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만든 어도비가 눈에 띈다.

북미 원주민에 대한 대표적인 상징적 이미지를 지닌 깃털 장식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여기에 각종 의식 도구와 그림 등도 전시하며 보다 깊이 그들의 삶에 들어간다. 북미 원주민에게 일상과 예술, 종교는 경계가 없기에 일상용품이 바로 예술품이었고, 가치관과 세계관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물건이기도 했다. 북미 원주민 일상의 예술은 공예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대평원 지역에서 사는 부족은 들소를 이용해 옷과 사냥 도구를 만들었는데,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로 물건을 만들고, 자연을 나타내는 무늬를 곳곳에 새겨놓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북미 원주민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를 상징하는 독수리 깃털 머리 장식도 전시된다. 북미 원주민에게 이 장식은 단순 화려함을 뽐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존경의 상징이었다. 공동체 구성원에게 넓은 관대함을 보이거나 전투에서 용감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 이 깃털 장식을 주로 착용했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엿볼 수 있는 아기 요람. 사진=김금영 기자

이처럼 북미 원주민의 삶을 다채로웠지만, 그 다양성 중에서도 공통점이 있으니, ‘자연과의 조화’다. 자연은 이들에게 이용하는 대상이 아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는 선생과도 같은 존재였다. 1부의 시작점에도 북미 원주민에게 자연이 갖는 의미가 담긴 아기 요람이 자리한다. 요람은 얼굴만 내놓을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원주민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아이들에게 직접 눈, 코, 입으로 자연을 바라보며 주변 세계를 관찰할 수 있게 한 의도라는 설명이다.

또한 북미 원주민은 세상 속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와 ‘연결’을 중요시했다. 자신과 타인의 관계, 조상과의 관계, 미래 세대와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초자연적 존재와의 관계 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조화롭게, 균형 있게,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했다.

이는 북미 대평원 원주민이 언제 어디서든 나누는 인사 ‘미타쿠예 오야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뜻으로, 자연과의 교감과 조화와 균형의 가치관은 그들이 만든 집과 옷, 일상용품과 의식뿐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지는 말 속에도 담겨 있다. 한 예로 대평원 부족의 집인 티피는 둥근 바닥이 대지를 뜻하고, 가운데 세운 기둥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다.

갈등과 위기 거쳐 현재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들

이주민의 시선에서 본 북미 원주민의 모습은 낭만적이기도 하다. 사진=김금영 기자

1부가 북미 원주민의 근원적 삶에 집중했다면, 2부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 사람들’에서는 새로운 만남이 펼쳐진다. 유럽 사람들이 북미 대륙으로 건너와 정착한 이후 달라진 원주민의 삶을 회화와 사진 작품들을 중심으로 다룬다. 2부 시작지점에서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대체로 평화로웠던 풍경이 보인다. 이주민의 시선에서 본 북미 원주민의 모습은 낭만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사진작가 에드워드 커티스처럼 곧 사라질 문화에 대한 기록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로 인한 갈등과 위기의 순간도 드러난다. 북미 원주민에게 자연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이주민에게 북미 대륙은 기회이자 풍요의 땅이었던 것. 이주민의 서부 개척이 이어지면서 본래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었던 원주민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고전 서부 장르 영화 '역마차'(1939)를 1966년 리메이크한 작품을 광고하는 일러스트에서는 북미 원주민이 극단적이고 단순한 야만인으로 묘사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 과정에서 북미 원주민에 대한 고정관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혁중 학예연구사는 “고전 서부 장르 영화 ‘역마차’(1939)를 1966년 리메이크한 작품을 광고하는 일러스트는 북미 원주민을 극단적이고 단순한 야만인으로 묘사했고, 이런 이미지를 통해 서부 개척을 장려하는 데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학살당한 역사를 알리고자 한 원주민이 전쟁을 기록한 그림도 함께 전시된다. 골드 러시, 리틀 빅흔 전투, 운디니드 사건 등 미국 역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북미 원주민이 겪었던 사건들을 회화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프리츠 숄더(1937~2005)와 같은 북미 원주민 예술가들은 ‘운디드니: 아메리카 대학살’에 1890년 12월 29일, 미군에 의해 운디드니에서 남성, 여성, 어린이 등 약 300명의 원주민이 학살당한 사건을 소환하며, 잘못된 인식이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프리츠 숄더는 '운디드니: 아메리카 대학살'(왼쪽)을 통해  북미 원주민이 학살당한 역사를 알리고자 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갈등 이후 현재를 살아가는 북미 원주민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전시에 소개되는 ‘인디언을 죽이고, 사람을 구하라 인디언을 구하고, 사람을 죽여라’는 원주민 출신 작가 그레그 딜의 작품으로, 미국 국기를 배경으로 원주민 복장과 양복을 입은 부자(父子)를 그렸다. 이를 통해 원주민에 대한 고정관념의 위험성과 오늘날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전시의 마지막은 ‘인디언의 힘’ 작품이 장식한다. 프리츠 숄더는 현대 원주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원주민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해당 작품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육상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받은 뒤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올리는 장면과 비슷하다. 그림 속 주인공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원주민 출신 작가 그레그 딜의 '인디언을 죽이고, 사람을 구하라 인디언을 구하고, 사람을 죽여라'. 사진=김금영 기자 

김혁중 학예연구사는 “미국 대륙에만 570여 개 부족이 있는 북미 원주민은 깊이 있는 정신세계를 지녔다. 그들의 문화는 사라진 옛 문화가 아니라, 현재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며 “특히 조화를 중요시한 그들의 삶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성용 관장은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북미 원주민이 어떤 사람들인지, 각각의 전시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전시실에서 직접 만나보기 바란다”며 “우리에게 낯설고 오래된 문화가 아닌 현재 우리 곁의 문화로 한층 다까이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0월 9일까지 열린다. 이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순회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디언의 힘' 작품. 사진=김금영 기자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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