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식⁄ 2025.08.25 10:35:08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으로 촉발된 국민연금공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된 지 8년 만에 마무리됐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국민연금이 한화오션과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한화오션은 국민연금에 총 442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 442억원 중 147억 원은 안진회계법인이 함께 부담한다. 이번 판결은 분식회계로 인한 회사채 투자 손실을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례로, 향후 유사 소송에 미칠 파장이 클 전망이다.
이번 소송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스캔들이 불거진 데서 시작됐다. 대우조선해양은 2013~2014년 해양플랜트와 선박 사업에서 발생한 2조 원대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매출과 이익을 과다 계상하는 방식으로 재무제표를 조작했다. 총 분식 규모는 5조 원을 웃돌았으며, 이는 경영진의 성과급 지급과 주가 유지,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은 2015년 7월 대우조선해양이 3조 원대 영업손실을 발표하면서 표면화됐고, 감사원 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전모가 밝혀졌다.
국민연금공단은 2013~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에 약 1조 700억 원을 투자했으나, 분식회계로 인한 재무 왜곡으로 인해 실제 가치가 하락해 516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2017년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분식회계에 연루된 외부 감사인 안진회계법인(딜로이트 안진)을 공동 피고로 포함했으며, 국민연금의 투자 손실을 회복하기 위한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았다. 대우조선해양은 2017년 현대중공업그룹에 인수 시도가 무산된 후 2023년 한화그룹에 매각돼 한화오션으로 재탄생했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의 치열한 공방
소송은 1심에서 국민연금의 주장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21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가 회사채 가치 하락의 직접적 원인이라며, 한화오션에 516억 원의 배상 책임을 판결했다. 이는 분식회계로 인한 투자자 손실을 구체적으로 산정한 첫 사례였다. 그러나 한화오션 측은 “분식회계와 회사채 손실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서울고법)은 2023년 배상액을 442억 원으로 감액했다. 법원은 분식회계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시장 변동성 등 외부 요인을 고려해 손실 범위를 축소했다. 이 중 147억 원은 안진회계법인이 공동 부담하도록 했으며, 이는 감사인의 책임을 강조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이 판결에 양측 모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 22일 원심을 확정하며 소송을 종결지었다. 대법원은 “분식회계로 재무제표가 왜곡됐고, 이는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며 국민연금의 손실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소송 제기(2017년)로부터 8년 만에 내려진 것으로, 장기화된 재판 과정에서 양측의 증거 공방이 치열했다. 국민연금 측은 재무제표 분석과 전문가 증언을 통해 분식회계의 직접적 피해를 입증했으며, 한화오션은 경제 환경 변화와 투자 리스크를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이 자본시장법상 투자자 보호 조항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한화오션 “판결 존중, 경영 투명성 강화하겠다”
판결 확정으로 한화오션은 국민연금에 약 442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 이는 한화오션의 재무에 부담을 주지만, 2024년 매출 8조 원대를 기록한 회사 규모로 볼 때 치명적 타격은 아닐 전망이다. 한화오션은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 소송은 총 23건(소송가 1651억 원)의 분식회계 관련 손배소 중 첫 대법 판례로,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들의 추가 승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미 2023년 소액주주 소송에서 한화오션이 31억 원 배상을 판결받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촉진할 것으로 분석하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분식회계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감사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보호한 의미 있는 승소”라고 평가하며, 유사 사례에서 적극적 소송을 예고했다.
< 문화경제 정의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