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이라는 골리앗과 싸움을 하는 ‘다윗’이라고 불린다. 내년 쉰을 바라보는 그의 서른 이후 삶 대부분은 삼성의 노동자탄압에 대한 저항의 세월이었다. 그는 삼성재벌에서 벌어진 노동자탄압 사례들을 모아 2002년 7월 ‘벼랑끝에서 희망을 움켜쥐고’라는 책을 발간했다. 삼성의 노동자 탄압사례들을 모아 312쪽으로 엮은 이 책은 말 그대로 삼성재벌의 노동자탄압 백서이다. 그러나 삼성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김 위원장을 고소했지만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다음 해인 2003년 2월. 끝내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던 삼성에서 노조를 결성한다. 이후 2004년에 삼성이 휴대폰 불법복제로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한 사실을 언론에 폭로하고 검찰에 고소했다. 집행유예로 있던 김 위원장은 이 사건으로 다시 재판을 받았고, 결국 3년 5개월형을 받고 2년째 서울 영등포 교도소에 복역중이다. ■ 설마했는데, 잠깐 조사 받으러 간 뒤 2년 흘러 최근 국제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는 김 위원장을 노동자 가운데 국내 최초로 양심수로 선정했다. 노무현 정부는 2월 9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특별사면을 논의했지만, 양심수 김성환 위원장 사면은 제외했다. 기자는 하루 뒤 김성환 위원장의 가족들을 만나려 자택인 인천 부평구 청천동을 찾았다. 인천 사람이라도 김 위원장 집을 단번에 찾기란 힘들어 보였다. 70~80년대에 보던 허름한 단독주택은 막다른 골목길에 있었다. 집 근처로 마중나온 김성환의 부인 임경옥(47)씨가 기자에게 차 한잔을 건네며 남편이 구속됐던 2년 전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실 처음 구속 소식을 들었을 때는 웃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이, 그리고 남편 개인의 피해사실도 아닌 일을 공개한 것이 법정 구속을 해야할 일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죠. 잠깐 조사만 받고 나오겠지, 그리고 곧 진실은 밝혀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2년이 지났네요” 정부가 양심수 김성환 위원장을 외면했던 그날 그 시각. 부인은 남편을 찾아 영등포교도소로 면회를 갔다. 소식을 들은 김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못 나가면 못 나가는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의미가 있잖아. 물론 감옥에서 나오는게 좋지만…” ■ 슬픈 드라마만 기대하는 언론들 참 많더군요 많은 언론들이 올해 2월 국제 앰네스티가 양심수로 선정한 김성환 위원장을 주목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청와대 앞에서 김성환 위원장의 사면을 촉구하는 1인 시위도 벌였다. “남편이 양심수로 선정되고 노회찬 의원님이 또 시의적절하게 대응해주셔서 그런건지...이곳 저곳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곳도 많았죠. 그런데 한 방송사 작가가 ‘구속노동자 가족이니 울고 짜고 그런 애틋한 걸 기대하고 왔는데, 안 그러시네요’라고 하더군요. 참 너무들 징징 짜는 드라마만 원하더군요” 부인 임경옥(47)씨는 올해로 8년째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건강식품을 오토바이로 팔던 일을 하다 2년전부터 우유배달을 하고 있다. “생활은 늘 어려웠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젠 그런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이젠 노하우란 것도 생겼죠. 장롱이나 옷도 많이 주워다 입죠. 이 집 물건 중에 90%는 주워온 물건이죠. 근데 신발만은 주워서 신기가 힘들더군요.(웃음)”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활의 노하우라기보다 차라리 생존을 위한 비참한 선택이었다. “정부 지원을 다 받더군요(웃음). 3년 전 남편과 저는 법적으로 이혼했죠. 그랬더니 생계비도 조금 지원받고 아이들 급식비나 등록금에서도 혜택을 받더군요. 우리처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노하우라고 해야할지…” 임씨는 주변에서 씩씩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 걱정은 많았다. “남편이 혈압이 높아서 걱정이예요. 시한폭탄같은 몸인데도 교도소 안에서 불합리한 처우개선과 삼성에스원 노동자연대나 신세계이마트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의미로 단식을 하니” 김성환 위원장은 감옥에서 2년을 보내며 7번 단식을 했다. 삼성재벌 규탄하는 내용과 교도소 처우개선이었다. 최근 2월 1일부터는 두 아들의 졸업식을 보기 위한 귀휴 신청을 불허한 결정에 항의하며 단식을 진행중이다. ■ 대무야,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살아야한다 김 위원장의 자녀는 첫째 한나(21)양과 갈음(20), 대무(14)군 2남 1녀를 두고 있다. 두 아들의 이름이 특이해 부인에게 뜻을 물었다. “갈음은 ‘땅을 갈다’라고 하는 말의 명사형이죠. 남편이 그러는데 ‘세상을 갈아엎어라’라는 뜻도 있다네요. 그리고 대무는 대쪽같이 살라는 의미로 ‘대나무’에서 ‘나’자 한자를 뺀 이름이예요”
마침 인터뷰 도중 거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 대무군은 김성환 위원장을 쏙 빼 닮았다. 여느 아이처럼 밝고 씩씩했다. “제 졸업식 때 가족 모두가 졸업식에 와 주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구요, 무엇보다 아빠가 이제는 (감옥에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빠는 회사가 나쁜 일을 한 것을 말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거 잖아요” 김성환 삼성 일반노조위원장의 막내 아들 김대무(14)군은 12일 서울 영등포교도소 앞에서 ‘귀휴불허 당장 취소하고 우리 아빠를 보내주세요’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이렇게 당차게 말했다. 김 위원장의 부인은 이날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란데 잘 몰랐어요. 그런데 삼성은 모든 국민을 돈의 노예가 되는 걸 바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가족들은 적어도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으로 살길 원해요” ■ <감옥에서 온 편지>다음은 2007년 2월 3일 김성환 위원장이 가족에 보낸 편지 중 일부이다. 아무리 돈을 처발라가며 2006년 2월 7일 지난 시절 잘못된 관행을 사과하고 반성한다고 하지만 그 사과와 반성이 진실한 마음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단지 세금포탈한 돈을 앞으로도 얼마나 더 게워낼까하는 속물적인 관심이 앞설 뿐이다. 삼성을 지키는 모임을 급조하여 명망있는 사람들의 헛된 이름과 경력을 악용하여 삼성재벌의 방패막이로 앞세워 진실을 호도하고 은폐·왜곡을 시도하며 국민의 귀와 눈을 가리고 있다. 삼성재벌 스스로 인정한 지난 시절 비리와 악행을 저질러온 청산되어야 할 인간들이 돈을 앞세워 오히려 더 설치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회봉사니 하며 상생경을 운운하는 것에 감동받는 국민은 없다. 오히려 삼성족벌이 국민적 반삼성 정서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작이며 돈잔치다. 그 기만과 사기극에 아낌없는 경멸과 비웃음만 보낼 뿐이다. 더구나 수 십년동안 자행해온 전근대적인 노무관리와 시대착오적이고 반사회적인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를 탄압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어느 국민이 삼성재벌의 사과와 반성에 대한 진정성을 믿을 수 있는가. 삼성재벌의 노동자 탄압과 인권유린에 희생된 노동자와 구속노동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분노와 한과 피눈물이 멈추지 않는 한 삼성재벌의 사과와 반성, ‘또 하나의 가족 함께가요 희망으로’ 등 모든 초일류 도덕경영 선전은 헛소리일 뿐이다. 더 이상 삼성재벌은 노동자탄압과 인권유린을 자행해온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솔직히 인정하고 스스로 인적청산을 하고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천민자본 삼성재벌 이씨 일가가 사람답게 사는 길이다. 역사의 교훈을 보면 내가 지금 2년째 갇혀 있는 감옥과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와 그 아들 이재용이 있는 각자의 자리가 영원히 변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바뀌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것이 역사인 것이다. 2007년 2월 3일 흙날
■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약력> 1958년 7월 13일 출생 1987년 6월 한독금속 옥상투쟁 승리, 7월 한독금속 노조결성 1993년 이천전기 입사 1996년 이천전기 노사협의회 의원으로 당선 활동하던 중 같은 11 월 삼성에 의해 징계해고 1997년 3월 이천전기 삼성 계열사로 편입 2000년 2월 삼성그룹 해고노동자 원직복직 투쟁위원회 의장 2001년 1월 민주노총 전해투 위원장으로 추대됨과 동시에 수배 2002년 7월 ‘벼랑끝에서 희망을 움켜쥐고’ 삼성재벌노동자탄압백서 발간·7월말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고 8월 보석상태에서 재판받음(집행유예 3년) 2003년 2월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으로 활동. 같은 해 3월 MBC PD수첩 ‘불패신화 무노조 삼성’ 제작에 도움을 주면서 삼성의 노동자 탄압실상 폭로 2004년 7월 삼성재벌이 휴대폰 불법복제해 노동자 위치추적한 사실을 언론에 폭로하고 검찰에 고소함 2004년 12월 수원 삼성전자 노동자 탄압, 강제사직 금품매수 각서 폭로. 삼성전자 노동자와 1차 양심선언 2005년 1월 수원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하여 노동자들을 격리 감금되고 강제사직, 금품지급 각서를 언론에 폭로하는 내용의 삼성전자 노동자의 2차 양심선언 2005년 2월 울산법원 법정에서 구속·3월 이건희 회장 구속처벌 촉구 17일간 단식·4월 울산구치소 복역중 모친상·8월 항소심 재판 도중 부산교도소에 수감중 부친상·9월 이건희 X파일 관련 구속처벌 요구하며 15일간 단식·10월 대법판결 실형 5개월 집형유예 3년 실효형이 확정(2008년 10월 7일 만기) 2006년 2월 울산 삼성SDI 노사협의회 위원 분신기도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각 단체 진정서 발송 및 삭발 2006년 5월 영등포 교도소 수용자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삼성재벌 규탄하며 13일동안 단식투쟁 2006년 7월 비정규직 철폐와 삼성재벌 규탄을 위한 옥중연대 단식투쟁 8일동안 진행 2006년 10월 삼성재벌 규탄과 교도소 처우개선을 위한 5찬 단식투쟁 8일동안 진행 2007년 1월 삼성재벌 규탄과 삼성에스원 노동자연대와 신세계 이마트 여성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위한 연대 옥중단식 투쟁 13일 동안 진행 2007년 2월 5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통해 최종적으로 국제 앰네스티에서 양심수 선정 사실을 전달받음. 2007년 2월 6일 자녀들 졸업식과 부모님 묘소를 가기 위해 귀휴신청을 냈지만 불허당하고 일곱번째 단식투쟁 돌입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