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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고그라드의 고려인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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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호 ⁄ 2007.07.03 10:59:43

요즘 우리 한민족이 문화, 예술, 스포츠 등등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새삼스레 세계화시대에 혈통에 바탕을 둔 민족의식을 부여잡고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택하지도 않았으면서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해외에서 어렵게 정착해 살고 있는 우리 동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정파와 이념을 넘어서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로 다가온다. 또한 개인의 자유와 창의 존중을 기본으로 공동체의 소외된 약자에 대한 관심을 놓아선 안된다는 21세기 대한민국 우파의 공동체 자유주의 가치와도 부합된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남부 러시아 볼고그라드市에서 의미있는 동포행사가 열렸다. 제4회 ‘볼고그라드 고려인 축제’가 열린 것이다. 볼고그라드州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1,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 소속의 한 州로, 주도(州都)는 볼고그라드市다. 주 전체 인구는 약 250만 명, 그 중 볼고그라드시에 약 100만 명이 살고 있다. 볼고그라드시라고 하면 생소해도 스탈린그라드라고 하면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볼고그라드시는 스탈린 정권시절 스탈린그라드로 부르다가 다시 볼고그라드로 바꾸었다. 이렇게 도시 이름이 바뀐 곳이 러시아에 또 있는데 페테스부르크다. 옛 소련시절 레닌그라드였다가 다시 페테스부르크로 바뀌었다.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에 살던 고려인 동포들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남부러시아로 이주하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볼고그라드주로 이주하는 실정이다. 이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땅을 소유하거나 농기계를 소유할 수 있는 자본이 없어 고율의 이자(월 5%)를 주고 돈을 빌려 땅과 농기계를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 대개 고려인 한 가족이 3ha 정도의 땅을 빌려 양파·수박·참외·고추 등의 농사를 지어 현지 유통 상인들에게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윤 창출을 위한 기업농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가족농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 90년대 중반이후 이주한 고려인 동포들은 러시아 시민권을 받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옛 소련시절이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각 국가들이 독립한 뒤에는 개별 독립국가의 국민이 되었기에 공식적인 이민 절차를 거쳐야만 러시아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러시아 시민권을 받기가 쉽지 않다. 현재 볼고그라드주에 거주하고 있는 4만여명의 고려인 중 15,000여명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국내에 불법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동포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볼고그라드 고려인 동포들은 지난 2001년 8월 15일 제1회 볼고그라드 고려인 축제를 개최하였다. 볼고그라드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함께 모여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한편, 고려인으로서 민족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첫해에 1,500여명의 고려인이 모였고 이후 매년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금년이 제5회가 된다. 볼고그라드에는 수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고려인만이 유일하게 소수민족으로서 독자적인 민족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 축제가 볼고그라드에서 열리는 연중 행사가운데 가장 성대한 행사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처음에 축제를 열었을 때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축구나 배구, 탁구, 팔씨름이나 공굴리기 등이 전부였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봉사활동을 위해 볼고그라드를 방문한 한국학생들로부터 사물놀이와 부채춤을 배운 고려인 청년들이 어설픈 동작이나마 공연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유려한 몸짓으로 한민족의 춤과 노래를 공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볼고그라드의 많은 고려인 청년들이 한국춤과 노래 그리고 한글을 배우려 하고 있다. 자기의 조국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2004년부터 고려인 축제에 볼고그라드 거주 소수민족들의 문화공연단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20개 이상의 소수민족 문화공연단이 참여하여 자기 민족 고유의 춤과 노래를 공연하였다. 이것은 고려인 축제가 고려인들의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볼고그라드에 살고 있는 모든 러시아인과 함께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협력하기 위한 행사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2005년 제4회 고려인 축제는 2,000여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모인 가운데 볼고그라드 시민회관에서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사물놀이와 부채춤 등 우리 한민족의 문화를 어설프지만 정성을 다해 선보였고 아르메니아·타타르·그리스·체첸 등 20여 소수민족의 춤과 노래가 어울렸다. 이제 볼고그라드 고려인 축제는 모스크바를 제외하고 러시아에서 고려인이 개최하는 가장 큰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또 고려인이 개최하는 민족축제에 볼고그라드 소수민족 전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민족축제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려인들의 지위도 차츰 향상되어 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축제의 성공이 곧 고려인 동포들의 무거운 삶의 무게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불법체류 신분의 고려인들이 하루속히 합법적인 신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세대보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더 열악한 고려인 청년과 학생들이 좀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투자야말로 고려인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우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아니,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없을까? 이 문제를 우리는 좌우의 문제로 재단하여 접근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소외자들, 또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조선족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히 필요할 때가 아닐까? 또 21세기 세계화시대 우리의 번영의 길이 여기에도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애국애족, 애인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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