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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캠프 장세동 장학생 뛴다

민추협 일부인사, 박근혜 캠프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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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0호 ⁄ 2007.07.02 14:04:01

6월 민주항쟁의 시발 뒤에는 이른바 ‘용팔이 사건’이 있다. 87년 호헌철폐, 직선개헌을 내세운 김대중·김영삼이 통일민주당 창당을 시작하는데, 지구당 창당 때 주먹패들이 방해하는 일명 ‘용팔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후에 5공 핵심인사 장세동(당시 안기부장)이 계획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당시 검찰은 신민당의 이택희·이택돈 의원이 청부폭력을 지시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그 당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장세동 안기부장은 ‘박종철 고문사건’ ‘용팔이 사건’ ‘5·3인천사태’등 정치적 변혁사건을 해결하는 선봉에 있었다. 장세동은 이런 정치적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돈으로 일부 정치인을 매수, 자기 수족으로 키웠다. 이른바 ‘장세동 장학생’. 20년이 지난 지금 ‘장세동 장학생’들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선캠프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장세동 장학생’캠프가 박근혜 전 대표를 대통령만들기에 나섰다고 한다. 민추협은 지난 1984년 미국 망명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신해 김상현 전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동의장을 맡아서 출범한 야당 민주인사들의 모임이다. 김덕룡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쪽으로 간데 이어 이규택 의원, 김무성 의원 등 다수가 박 전 대표의 캠프에 포진했다. 민추협이 박 전 대표 지지 선언을 놓고 YS와 DJ의 복심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의 초점이 좁혀지고 있다. 또 민추협에는 동교동계 인사들도 많이 포진해 있어 DJ의 복심 역시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 장세동 장학생 ‘Y, H, P 등 전 의원’합류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정치단체인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박희부 부이사장과 조익현 부회장 등 민추협인사 33인이 지난 5월 25일 박근혜 전 대표의 선거사무실에서 박 전 대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지지 선언문에서 “민주화를 바로 잡고 민주화를 완성하기 위해 박 전 대표를 지지한다”면서 “불확실한 후보자는 노무현 정권이 미는 후보를 이겨낼 수 없고, 그들이 펼칠 온갖 공격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라고 믿기에 지지한다”고 지지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박 전 대표는 도덕적이고, 깨끗하며, 추구하는 원칙이 올바르기 때문에 우리가 평생 몸바쳐온 이 나라의 민주화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박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천군만를 얻은 것처럼 기쁘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YS의 대변인으로 통하는 박종웅 전 의원이 “민추협 상도동계 회원 수백 명 중 일부 회원들이 그런 의견을 밝힌 것”이라며 “민추협에서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데, 민추협 간부들도 그런 보도를 보고는 개인적으로 의사를 밝히는 건 좋지만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잘못됐다고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웅 전 의원은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인사들은 밥 한 번 먹자고 해서 갔는데 이름이 올라서 곤혹스럽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의원은 “이번 대선은 우리나라의 명운이 걸린 선거이고, 전망도 불투명하고 굉장히 중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의견을 모아서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다수 동지들이 의견을 밝힐 시점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도동계의 분열 가능성에 대해 그는 “민추협에 상도동계 사람들이 수백 명인데, 그중 일부 인사들이 그런 의사를 밝힌다고 해서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라며, “일부가 다른 후보를 지지할 수는 있지만 큰 흐름에서는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고, 단합된 모습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셨던 상도동 식구들이 단합해서 특정후보를 지지할 시점이 올 것”이라며 “민추협, 특히 상도동계가 공식적으로 지지후보를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호헌철폐 등 민주화 봇물이 터지는 84년 김영삼·김대중 양김을 대리해 민주화운동협의체를 구성키로 하고 세를 모았다. 이들이 구성키로 한 단체명은 ‘민주화추진구국연맹’으로 마치 사회주의 냄새를 풍겼다. 이에 대해 장세동 안기부장은 사회주의 좌파단체라며 거절하고 대신 ‘민주화추진협의회’로 고칠 것으로 요구했다. 이들 정치인은 이를 계기로 장세동 부장과 인연돼 수시로 노잣돈을 받아왔다. ■ 장세동 ‘용팔이사건 조정 구속’ 장세동 씨는 안기부장으로 있던 지난 87년 3월 이택돈·이택희 전 의원에게 통일민주당 창당방해를 지시하면서 7억여원의 활동자금을 건넨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 남부지청은 87년 당시 창당대회에 폭력배가 등장한 서울 관악지구당을 관할하고 있어 이 사건을 맡았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은 통일민주당의 창당대회를 폭력배들이 방해한 사건이다. 당시 사건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용팔이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87년 4월 20일부터 4월 24일까지 통일민주당의 20여개 지구당에 폭력배들이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당원들을 폭행하는 등 난동을 부렸으며, 이로 인해서 창당대회는 인근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약식으로 치러졌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지시로 안기부가 개입한 대표적인 정치공작의 하나이다. 군사정권의 억압속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는 분위기가 높아졌지만,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 등은 당시 정부의 내각제 개헌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에 반발한 김영삼·김대중 등은 70여명의 의원들과 함께 신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자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한 것이다. 통일민주당측은 처음부터 이것은 정부가 개입한 비열한 정치공작이라 규탄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였으나,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서울 올림픽이 한창인 88년 9월이 되어서야 김용남(일명 용팔이)과 이선준 당시 신민당 청년부장이 검거되었다. 검찰은 신민당의 이택희·이택돈 의원이 청부폭력을 지시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93년에 이 사건을 재조사했고, 결국 강력한 야당 출현을 막기 위해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이 이택희·이택돈 의원에게 5억원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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