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좋은 말이 참 많이 있네. 희생, 사랑, 헌신, 용서. 화해. 평화 등이 좋은 말인가 하면 파괴, 음모, 질시, 저주, 갈등, 이기주의 등이 좋지 않은 말들이네. 세상에 좋은 말만 있다면 세상은 좀 좋아지지 않을까. 그러나 세상이 어디 좋은 것만 존재하는 곳인가. 악마가 있어 천사가 고귀하고 범죄가 있어 법의 존재가 소중한 것이 아니겠나. 천사가 악마로 위장하는 경우는 없지만 악마가 천사인척 하는 경우는 있더군. 자선가가 사기범이 되는 경우가 그런 것이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정치인이 파렴치범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우리가 흔히 보는 현실이네. 그래서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점점 깊어지고 그들 스스로도 묘혈을 파고 있지. 정치인 백 명을 모아놓고 물어봤네. 당신은 국민을 위해 무엇이 되겠는가. 50명이 국민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고 했고 나머지 50명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했네. 대견한 결심들이 아닌가. 박 군. 이건 실제 있었던 얘기가 아니고 그냥 만든 것이네. 세상에 하도 밀알과 불쏘시개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이것들을 다 어떻게 처리하나 걱정이 되서 해 본 소리라네. 이들이 말하는 밀알은 무엇일까. 밀알은 땅속에서 썩어 싹을 틔우고 결실을 하네. 죽어서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이지. 불쏘시개는 나무를 잘 타게 하는 보조희생물이네. 자기 몸을 불태워 뜻을 이루게 한다고 할까. 이런 경우 살신성인이라고 하면 맞는지 모르겠군. 남의 나라의 경우는 잘 모르겠고 우리의 경우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하도 많아서 “철새정치인”이란 말이 사전에 나올 정도이고 철새정치인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 아닌가.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한 이런저런 사람들을 철새라고 하면 화를 낼 것인가. 그러나 확실하게 철새는 있었네. 독수리 5형제로 회자되던 김부겸도 철새라고 하고 거론도 하기 싫지만 안영근도 철새라네.
철새는 자연조견이 생존과 맞지 않아 자신에게 맞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지.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당연하고 절실한 생존방법이네. 그럼 정치철새는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계산해서 자기가 몸담았던 당을 떠나는 것이네. 그렇다면 당당하지는 못해도 “나는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당을 떠난다.” 이렇게 말하면 솔직하다는 소리만은 듣지 않겠나. 헌데 한다는 소리는 ‘밀알’이네, ‘불쏘시개’네. 얼마나 장엄한가. 얼마나 감동적 어휘인가. 그러나 잘 살펴보면 가증스럽게도 빤한 거짓말이네. 김한길은 “내가 죽어서 우리가 살 수 있다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로 결단한 것”이라고 했고 천정배는 “탈당한 우리 7명의 의원들은 정치생명을 건 결단을 했다”고 기염을 토했지. 이렇게 거창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밀알이 된다던 그들이 국회에서 한 일은 하루에 수백억의 이자부담을 하는 국민연금법 통과에 기권을 하는 것이었네. 별 빌어먹을 밀알도 다 있기는 있더군. 김근태도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며 탈당을 했는데 손학규와 자주 만나 밀알이 되는 연구를 하는 모양이네. 손학규는 3개월 전 14년간 몸담고 있던 한나라당을 탈당했네. 그 때 발표한 탈당의 변이 거창하고 절실했지. 그는 한나라당은 “군사정권의 잔당과 개발독재의 잔재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정당”이라고 맹비난했네. 그걸 모르고 14년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나. 안된 소리지만 우리네 정서에는 이런 덕목이 있네. “먹던 우물에는 침을 뱉지 않는다.” 잘못 된 말인가. 이런 손학규가 아무리 대통합과 새로운 정치를 아무리 외친다 한들 누가 그 말을 믿어주고 누가 박수를 치겠는가. 그보다는 정치를 보는 국민의 혐오와 불신만 더 깊게 할 것이라고 믿네. 오죽하면 민주당의 조순형도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가 혹시 대통합의 결과로 한나라당과 싸운다면 이건 후진정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지.
헌데 손학규가 범여권에 들어오겠다고 하던 날 들러리를 선 작은 밀알들인 김부겸 정봉주 안영근 등 일곱명이 재미있는 말을 했더군. “일곱난쟁이와 백설공주”라든가. 그러니까 자기들 밀알 일곱 명은 난쟁이고 손학규는 백설공주라네. 한국의 정치 때문에 세계 명작 동화다 망가지네. 이거 왜들 이러나. 박 군. 손학규가 탈당한 진정한 이유가 자넨 뭐라고 생각하나. 진정 군사정권의 잔당과 개발독재의 찌꺼기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정당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명박·박근혜 사이에 끼어 빛도 보지 못하고 한자리 수 여론지지로 죽을 쑤는 판에 열린우리당의 이상한 사람들이 손학규 카드라는 것을 만지작거리자 옳거니 저기에 내가 살 길이 있을지 모른다고 탈당을 한 게 아닐까. 그는 대통합의 바다에 자신을 던지기로 했다지만 진정으로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탈당을 하는 즉시 자신의 과거 행적을 반성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을 했어야 최소한 범여권이라는 배에 승선할 자격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네. 지금 궁지에 몰린 범여권이 손학규까지를 범여권 안에 넣지만 도대체 손학규가 어떻게 범여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백가지 천 가지로 연결고리를 찾아봐도 찾을 길이 없더군. 통합의 밀알이 되고 불쏘시개만 된다면 과거불문 만사형통이니 대한민국이 정치하기 기막히게 좋은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밀알과 불쏘시개들이 만났네. 김근태·손학규·정동영(가나다순)은 만나서 진담인지 농담인지 주고받았는데 내용인즉 짐작한 대로 그렇고 그런 거네. 이들의 만남은 박상천과 김한길이 중도통합민주당이라는 것을 창당한 날에 이루어 졌네. 김한길은 밀알이 되어 썩은 후 ‘중도통합민주당’의 대표가 되었네. 원 풀고 한 풀었지. 대표가 됐으니까 말이네. 대표가 어딘가. 김한길이 출세한 거지. 그러니 쥐나 개나 모두 밀알이 되고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김근태는 대의통천(大義通天)의 자세인 손학규를 존경하며 대통합에 헌신과 노력을 하는 정동영에게도 감사한다고 했네. 대권의 꿈에서 깨어났으니 말이라도 인심을 쓰자는 건가. 김한길이 답답하게 됐네. .
손학규는 사람이 길을 다니다 보면 길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며 김근태와 뜻이 맞는 국민들이 함께 가는 첫걸음으로, 열심히 따라가겠다고 응답을 했지. 김근태와 뜻이 맞는 사람이라. 글쎄. 정동영은 아주 불쏘시개 예찬론자가 됐더군. 그는 너도 나도 불쏘시개가 되는 불쏘시개 정신이면 땅에 떨어진 희망도 주워 담고 뛰어넘지 못할 게 없다고 했지. 좋은 말을 많이 골랐더군. 살신성인의 자세로 국민에게 감동을 준 ‘김근태 정신’을 존경하고 손학규도 어려운 결단을 했다고 듣기 좋은 말로 인심을 썼지. 문득 동상이몽이란 사자성어가 생각나네. 이들의 마음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14년간 몸담고 온갖 특전을 누려온 손학규가 탈당을 한 이유가 진심일까. 자신이 창당 주역 중에 주역이고 당의장을 두 번이나 지낸 정동영이 “마중물”이 된다는 이상한 이유로 탈당을 하고 이제 다시 대통합을 입에 담으니 국민들을 혼한으로 빠트린 허물을 어떻게 벗을 것인가. 김한길과 박상천 그리고 탈당한 밀알과 불쏘시개들은 당을 또 만들었다네. 김한길은 이제 자신이 침통한 표정으로 강조하던 대통합 밀알 역할이 얼마나 위선이었나를 인정해야 할 것이네. 아니나 다를까 김한길은 급조신당이 출발한 바로 그날에 열린우리당과는 통합이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언명했네. 만약에 올림픽 경기에 급조정당 만들기 종목이 있다면 이 나라의 불쏘시개와 밀알들이 참가해 반드시 금메달은 따올 것이라고 굳게 믿네. 이제 앞으로 얼마나 많은 밀알과 불쏘시개들이 등장할지 모르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땅이 그런 것들로 해서 말도 못하게 오염이 될 것이라는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하네. 이들이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밀알은 희망을 거두는 밀알이 아니라 그냥 썩어서 토양을 오염시키는 밀알이 분명하고 그들이 들고 다니는 불쏘시개는 이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불을 지피는데 쓰일 불쏘시개가 아닌 희망을 잿더미로 만드는 불쏘시개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네. 진정 이 때 필요한 것은 잘못된 오늘의 정치를 불살라 버리는 가짜가 아닌 진짜 불쏘시개가 아닐까. 정치토양을 오염시키는 밀알이 아니라 풍성한 수확으로 세상을 풍요하게 만드는 진짜 밀알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입만 열면 국민이 하늘이라는 정치인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정동영이나 김근태, 김한길, 천정배 그리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범여권을 기웃거리는 손학규. 이들의 국민에게 한 약속은 대통합이며 정권 재창출이네. 만약에 이들이 통합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믿네. 벼락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고 국민은 하늘이고 국민을 속인 정치인들이 맞는 벼락은 바로 국민이 내리는 벼락이 아니겠는가. 결국 국민이 정신만 바짝 차리면 철 안든 어린애처럼 헤매는 정치인들의 못 된 버릇을 반드시 고쳐 놓을 수 있다고 나는 굳게굳게 믿고 또 믿고 있다네 -이기명 시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