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인 지난 87년 대선에서는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야권의 독자 출마로 격돌했다. 그 결과는 둘다 패배했고 군사정권의 연장의 길을 터주었고 야권은 시민들로부터 왕따돼 분열의 길로 접어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17대 대선에서 또 다시 김영삼과 김대중이 갈라서 대선을 뛰고 있다. 이에 따라 양김 씨중 누가 올대선의 승자가 될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YS는 이명박 후보를, DJ는 범여권 단일후보를 위해 뛰고 있다. 그래서 이들 계보는 다시 지주를 따라 각 후보진영으로 응집하고 있다. 특히 YS는 DJ가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 것에 대해 이번에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에 만들어 1對1대 무승부를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리멸렬하던 범여권이 이제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으로 뭉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다. DJ는 줄곧 대선을 위해 대통합을 부르짖었으며 그의 아들을 매개체로 대통합의 다리를 놓고 있다. ■YS-이명박, DJ-범여권 김홍업 의원은 자기를 의원으로 만들어준 통합민주당을 떠나 대통합세력에 합류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행보를 놓고 DJ의 의중이 반영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 의원은 이와 관련, “탈당이 중요한 게 아니라 통합이 중요한 것이며 요즘 처신하기가 힘든데 박상천 대표나 민주당이 싫어 그렇게 한 게 아니다. 어른(DJ)이 생각하시는 것(대통합)이 내가 동의하는 것이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DJ가 범여권 통합 논의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DJ는 그동안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하나로 뭉쳐 한나라당과의 일대일 구도를 만들것을 범여권에 촉구했다. 이같이 DJ가 마련한 대통합의 밥상(범여권후보)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를 위해 범여권은 물고 물리는 ‘컷오프(예비경선)’에 돌입했다. 지금 범여권에서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혁규 의원,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등 20여명이 DJ 밥상을 차지하기 위해 뛰고 있다. 손학규·정동영 두사람은 범여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1,2위를 달리고 있다. 자타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하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지난 달 26일 열린 통합신당의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 아직도 5·16구국혁명이라고 하는 과거세력, 아날로그 시대에 운하를 파서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낡은 세력이 있다며 범여권 후보자를 겨냥하지 않고 한나라당 빅2를 겨냥하며 빅 3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그는 또 우리는 자축할 때가 아니다며 민주당 박상천 대표도 반드시 합류하고 선진코리아를 만들기 위해 더욱 크게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도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정경 유착을 끊고 깨끗한 사회를 만든, 역사를 바로 세운 10년이라고 주장했다. ■민주계는 이명박 후보군으로 지금 이명박 후보의 큰 지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부산·경남과 수도권의 일부 지분을 갖고 있는 YS는 이번 대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특히 YS는 DJ가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만드는 데 성공했듯이 이번에 이명박 후보를 당선시켜 DJ와 대결에서 무승부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86년 직선개헌의 원동력이었던 민주화추진운동협의회의 회원 3백여명이 이명박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고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했다. 이와 관련, 박희부 부이사장과 조익현 부회장 등 민추협인사 33인이 지난 5월 25일 박근혜 전 대표의 선거사무실에서 박 전 대표 지지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5공화국 시절인 지난 198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연합해 만들었던 민추협은 이 전 시장과 박근혜로 나뉘어 두 대선주자의 지지에 나서 민추협이 양분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민추협은 지난 2005년 5월 정관 개정안을 토론에 붙여 ‘민추협의 정신으로 독재에 항거한 부마항쟁’이라는 문구를 추가한 상태이어서 부마항쟁의 모태인 대선주자를 지지한 것에 대해 말도 많다. 이와 관련, 김상현 현 이사장은 이러한 민추협의 행태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이를 논의한 후 김 이사장도 지지의사를 표명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교동계 민추협 대표였던 김상현 이사장도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로 돌아설 경우 김덕룡 의원이 이 후보의 지지를 선언함에 따라 이 후보의 호남 지지도를 굳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이 후보진영의 또 다른 원군은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의 영입이다. 이기택 전 총재와 이명박 전 시장의 행적은 서로 닮은꼴이라고 할수 있다. 둘은 자란 곳도 경북 포항으로 둘 다 상고출신이다. 이들의 첫 만남은 61년에 이루어졌다. 지난 57년에 고려대 상과에 입학, 이승만 정권의 독재정권을 무너트리는 데 주역인 이기택 전 총재가 대학 4학년일 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새내기로 같은 학과에 입학 했다. 지난 64년 3월 박정희 정부가 한일외교정상화 방침을 밝히자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며 학생데모대가 중앙청에 몰려가고 파출소를 파괴하는 등 시위가 격화되었다. ■MB, 이기택 전 총재 영입은 盧 대통령 가교역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는 이른바 ‘6·3사태’가 발생하는 등 14년 동안의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최종단계에서는 양국에서 모두 야당과 학생 등의 반대운동이 전개되었다. 여기에 이 전 시장은 선봉에 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체포 되는 역경을 맞았다.
“우리는 종주국 없이 한번 살아보자. 이것이 우리의 피맺힌 절규다. 일제의 망령을 박멸할 때까지 우리는 영원한 투쟁의 대열에 참여할 것을 여기서 엄숙히 선언한다” 한일국교정상회담 정국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지난 64년 3월24일, 고려대 국제상경학회 회의실에서 이 학교 상대 학생회장 이명박이 읽은 선언문 마지막 구절이다. 이 전 시장은 지난92년 첫 국회의원에 당선된후 정계에 입문했지만 이 전 총재와 반대에 서서 정치를 했다. 그러나 지금 선후배인 이들은 서로 합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했다. 이 전 총재는 원로정치인이지만 아직도 그의 힘은 다른 원로정치인보다 크다. 한때 부산 YS에 대적해 이 전 총재는 자기 계보를 만들었다. 문정수 전 부산시장, 신상우 KBO총재,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등이 이기택 계보에 속한다. 그래서 이 전 시장측은 부산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지지기반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판에 이 전 총재의 영입은 원군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역할은 한나라당 경선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대선 본선에서 그의 힘이 어디로 움직일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전 총재와 노무현 대통령. 둘은 부산상고 선후배다. 그는 지난 95년 노 대통령과 ‘꼬마민주당’에서 함께 활동했다. 지난 2002년 대선때 이 전 총재는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밀었다. 올 초 어느 강연에서 그는 노 대통령을 지지한 것을 후회한다고 하지만 고교의 대선배로서 이명박 전 시장과 노무현 대통령 간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 대통령과 절친한 신상우 KBO총재는 이 전 총재의 고교, 대학 1년 선배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노 대통령. 그러나 그도 대선구도의 흐름을 꿰뚫어 볼때 되는 후보에게 아량을 베풀 수도 있다고 본다. 물러 난 후에도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17대 대통령에 당선 될 확률이 높은 후보와 적수를 두지 않고 상생으로 나아가 퇴임 후 친노그룹으로 정당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징후는 최근 유시민 의원의 발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결코 열린우리당을 해체하지는 않는다는 것에서 볼 수 있다. <김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