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 등 이른바 ‘범여권’의 진로를 둘러싼 정국은 한 마디로, 실타래가 꼬일 대로 꼬인 형국이다. 오는 8월 5일 출범할 신당의 명칭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라고 당명을 정했다가, 11자나 되는 이름이 부담스러웠던지 슬그머니 ‘미래창조’라는 말을 빼기로 했다. 이를 두고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는 ‘명칭 도용’이라고 비웃는다. 하지만 통합민주당 역시 남을 비웃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당을 함께 하기로 했던 김한길 전 중도개혁통합신당 그룹이 통합민주당을 떠날 기세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분을 나누고 있는 박상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가 이른바 ‘배제론’을 거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박상천 공동대표의 ‘배제론’에는 다 이유가 있다. 흔히 말하는 ‘친노 그룹’ 다른 말로는 ‘노빠’와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의 배제론이 겨냥하고 있는 인물이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유시민 의원이라는 것도 향후 정국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다. 이런 정국에서 이미 지난 2월 ‘폐업신고’를 하고, 너도나도 당을 떠나고 있는 열린우리당에 ‘당을 살리겠다’며 거꾸로 입당한 정치인이 있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강운태 전 내무부 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 7월 26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참여정부를 계승해나가겠다”며, “다음 정부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역사의 대의에 맞는 일”이라고 주장했었다. 그가 왜 폐업세일이 한창인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는지, 그리고 이른바 ‘범여권 대통합’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지에 대해 8월 2일 서울 여의도의 강운태 대선 캠프에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다음은 강운태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지난 26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는데, 이를 두고 지역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가고 있다. 곧 해체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열린우리당 입당에 대해 어떤 방송에서 ‘역주행’이 아니냐고 물어서, ‘역주행은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인데, 나도 위기에 처한 열린우리당을 구하기 위해 정치생명을 걸고 입당했다’고 답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단심을 가지고 다음 정부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정부가 세워지는 것이 옳다는 판단에 따라 결심했다. 이는 권력을 거머쥐고자 하는 탐욕 이전에 역사의 대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다.” -‘참여정부 성공론’을 주장하고 계신데, 한나라당이나 범여권의 일부 대선 주자들이 주장하는 ‘참여정부 실패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집권한 지난 10년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개발독재에서 내재되어 왔던 온갖 병폐를 치유하고 빛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한 ‘성공한 10년’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수립 이후 60년의 역사 중, ‘후진국에서 중진국까지 오는데 악용되었거나 사용했던 독재와 개발, 타율의 낡은 엔진’ 대신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자율과 참여, 창의의 새로운 엔진’을 바꾸어 낀 역사발전의 자랑스러운 기간이 지난 10년이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많은 무거운 과제가 주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 서민경제의 활성화, 균형발전, 교육혁신, 저출산·고령화 대비, 정치개혁 등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시작한 처방에 따라 다음 정부에서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들이다. 참여정부는 비록 인기는 없지만,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많은 일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 범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대통합신당’은 결국 ‘대선용 1회성 정당’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통합신당이 성공하리라 보는가. 그리고 ‘범여권 대통합’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저는 최근 몇 달 동안 벌어지고 있는 소위 ‘범여권의 통합’ 움직임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사실 현재의 대통합 신당이라는 것은 정체가 불분명하고 참여자의 고해성사가 없는 無리더, 無비전, 無감동의 3무(無) 정당이 아닌가. 한 마디로 ‘무정란 짝퉁 신당’이다. 물론 통합 그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통합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최소한 방향은 같아야 하며, 방향이 다르면 오히려 힘을 약화시킬 것이다.
또, 원칙 없는 통합은 정도가 아니며, 이미 국민들의 마음으로부터 심판받고 청산된 구시대 정치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범여권 통합이라면 12월의 대선에서 실패할 확률이 90% 이상이다. 참여정부 실패론자들과 계승론자들이 거의 반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여권 통합에 함께 하려는 세력은 지금이라도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참여정부를 계승·발전시키겠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은 최소한의 합의마저 할 수 없다면 각기 후보를 뽑은 후 후보 단일화가 보다 현실적이고 타당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범여권의 최대 주자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손 전 지사는 지난 7월 16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광주정신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이 쓴 영화 ‘화려한 휴가’ 관람기가 인터넷에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손 전 지사의 ‘광주정신’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즈음 국민들로부터 때 아닌 ‘한나라당 짝퉁 시비’가 일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에서 14년 동안 공천 받아 국회의원·장관·도지사를 한 사람이 참여정부를 부정하면서 범여권후보를 자처하는 것은 기이한 일로 정치도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상식에 맞지 않는 일로 생각한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하여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광주에 와서 광주정신 운운하는 것은 광주·전남 시도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광주는 역사의 고비마다 방향타의 역할을 해왔다. 12월 대선에서의 광주정신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관통해온 ‘개혁과 평화’의 정신을 이어지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조순형 통합민주당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조 의원과는 지난 2004년 탄핵 당시 당 대표와 사무총장의 관계였다. 강 후보가 지난 5월 29일 대통령 탄핵에 대해 공식 사과한데 반해, 조 의원은 탄핵은 정당했다는 입장이다. 3년 사이에 두 분의 입장이 서로 상반되게 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쉽지 않은 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7대 총선 후 3년여 동안 민생봉사 현장에서 서민들과 호흡하다보니, 그간 제가 가졌던 선입견이 많이 없어졌다. 달리 표현하자면, 역지사지하는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한 것이 지난 번 탄핵이었다. 거듭 생각해봐도 탄핵은 잘못된 일이다. 이미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지 않았는가? 조순형 의원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 보다 냉정하게 헤아려보면 탄핵이 잘못됐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올해 연말 대선에 적극 개입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범여권 대선 주자 진영의 해석이 제각각이고, 아전인수 격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출신인 강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의 현실 정치 개입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가이기 전에 사상가이고, 철학자다. 우리 정치사에 드물게 존경받아 마땅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분의 삶과 그 삶의 여정 자체가 고난의 역경의 연속이었다는 게 그것을 증명한다. 특히 남북 간의 화해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은 추앙받아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의 민족사랑과 미래에 대한 안목을 저 역시 배우고 또 이어가고자 한다. 다만, 현실정치 개입에 대해 비판받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국가의 지도자이자, 정계의 어른으로서 조언은 가능하리라 본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 개입으로 비춰지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호남인, 그리고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현재 통합민주당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추미애 전 의원, 김영환 전 의원 등은 이른바 ‘호남 적자론’을 내세우고 있다. 강 후보 역시 호남 출신인데 “호남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남긴 말씀인,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다. ‘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다’는 뜻이다. 이 말씀으로부터 417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 말씀이 유효한 것인가를 더더욱 절절이 새기고 실천할 때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호남인들은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해왔다. 호남인들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인이나, 대세론을 주장하는 정치인보다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선명한 개혁성을 지닌 정치인을 후보로 선택했다. 올 연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자의 도덕성과 비전, 정책과 실행 능력을 검증하고, ‘참여정부 계승론 대 참여정부 실패론’, ‘잃어버린 10년 대 성공한 10년’의 주장이 호남인들로부터 정확히 평가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