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당공원 내 친일파 공덕비 등 일부 공덕비에 대한 본보 보도에 대해 광양시가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독립유공자 후손을 비롯한 지역사회가 이들 비석군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제시대 광양지역에서‘독서회’를 조직, 일제에 항거했지만 사회주의계열이라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하다가 지난 2005년 뒤늦게 건국포장을 추서 받은 독립지사 고(故)김지태 선생의 후손인 김영재(71) 전 광양여고 교장은 이러한 사실에 비분이 어렸다. 김 전 교장은 “독립 유공자 후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 가난한 삶을 살고 있지만 친일파 후손들은 여전히 사회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웃지 못할 현실이 답답하다”며, “(친일파 비석은) 당장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문제에 광양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달 12일 자 본보 보도가 나간 이후에도 광양시는 여전히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차원의 과거사 청산 등 역사바로세우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광양지역은 이러한 역사적 당위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광양시 한 관계자는 “옳은 것도 역사고, 틀린 것도 역사다. 현대인이 섣불리 역사를 재평가 할 수 없다”며, “현재로선 (재평가 작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지역 과거사 정리에 대한 광양시의 소극적 인식을 드러냈다. 광양시는 다만, 비석군에 대한 설명이 없었던 것에 대해 (관리가)일부 등한시된 점 등을 인정하고, 비석군에 대한 공과를 설명할 수 있는 안내판 설치 등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 시민은 “명확한 근거에도 불구, 지난 역사를 현재시점에서 평가할 수 없다는 광양시의 입장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광양시의 말대로 뒤틀린 역사는 뒤틀린 역사대로, 올곧은 역사는 올곧은 역사대로 평가하고, 이를 정비하는 것이 당연한 후손들의 몫”이라고 광양시의 태도를 비난했다. 이와 관련, 광양지역문제연구소 강용재 소장도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근호 공덕비를 비롯, 부끄러운 역사 청산을 위해서라도 역사재평가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 비석들이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만큼 존치여부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이들 비석이 지닌 역사적 상황을 일반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설명문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며, 더나아가 “광양지역 근현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당공원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사회 근현대사 재조명 서둘러야 한편, 강용재 소장은 유당공원으로 상징되는 광양지역의 근현대사를 더 늦기 전에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광양지역은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 여수봉기, 6·25전쟁 등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격변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특히, 친일문제와 해방정국에서 벌어졌던 학살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은 채, 뼈아픈 민족사의 상흔이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광양지역의 근현대사는 여전히 불에 댄 듯 민감하다. 정서적 대립도 여전히 존재한다. 까닭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들도 ‘과거에는 애써 눈을 감은채’ 같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자 현재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역사는 제대로 평가돼야 하고, 기록돼야 한다. ‘누군가를 규정하고, 심판대에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만이 되풀이 되는 역사의 악순환을 끊고, 화해와 용서로 가는 첩경이라는 지적인 것. 강용재 소장은 “근현대사의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광양은 현재까지도 지난 아픔의 역사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후손들이 많은 지역이고, 그런 탓에 이 같은 사실을 외부를 밝히기를 꺼리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근현대속에 벌어졌던 우리지역의 역사를 진실되게 밝혀내는 일은 당연하고 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당시 상황을 체험했던 생존자들이 살아 있는 지금이 아니면, 광양의 근현대사를 올바르게 정리할 시기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역사 재평가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으로 광양참여연대는 몇 해 전부터 친일종사자의 행적과 해방전후 광양지역 격전지를 중심으로 체험자들의 증언을 모으고, 일정부분 녹취를 해 놓은 상태다. 이 단체 역시 광양지역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격변의 현장이었던 광양지역의 근현대사를 재평가하기 위한 ‘지역 근현대사 진상조사위원회’등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광양시를 비롯한 학계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객관성 있는 지역역사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5년, 탁발순례 차 광양을 방문한 실상사 도법스님과 여순항쟁 57주년기념사업회가 유당공원에서 좌우 합동위령제를 지내는 등 해방정국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식도 차츰 변하고 있는 상태여서 현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강용재 소장은 “올해 안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광양지역 근현대사 재발굴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토록 방안을 모색해 나갈 방침”이라며, “광양의 근현대사 재평가는 물론, 이를 토대로 서로가 진정성을 갖고 용서와 화해의 장을 열어갈 수 있도록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봉현 기자 전남CNB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