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유시민’이다. 지난 8월 18일 일산 킨텍스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대선 출마식을 가진 유시민 의원이 연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출마선언을 하자마자 각종 여론조사에서 단숨에 범여권 대선주자 중 3위에 오른 유 의원은 이번에는 ‘멧돼지 논란’으로 주목받고 있다. ■‘멧돼지 잡는 대통령, 배스 잡는 대통령, 목욕탕 지어주는 대통령’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8월 21일 유 의원은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폭주하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일일이 응할 수 없어 유 의원 측이 ‘나름대로’ 내놓은 게 바로 정기적인 기자간담회다. 이 자리에서 유 의원은 ‘멧돼지 잡는 대통령, 배스 잡는 대통령, 목욕탕 지어주는 대통령’ 등의 파격적이고 ‘튀는’ 공약을 내놨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지 나흘만이다. 유 의원은 이를 “국민의 등을 긁어주는 3대 생활공약”이라 했다. 다른 대선주자들의 다소 ‘거창한’ 대선공약과 비교해볼 때, 유 의원의 이런 공약은 황당할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업무와 관련해 전국을 돌며 채록한 말 그대로 ‘생활 속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공약이다.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다른 대선주자들의 ‘뜬구름 잡기 식’ 공약보다는 백 배 낫다는 게 당시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언론인과 유 의원 지지자들의 평이다. 이날 유 의원은 “농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멧돼지들의 공격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또 “멧돼지들이 적정수를 넘어 생존공간에서 밀린 것들이 민가로 내려와 인간과 멧돼지간의 거주영역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까지는 농촌이 고향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핵심(언론에서는 이를 ‘야마’라는 일본어를 사용한다)은 해법인데, 유 의원이 풀어놓은 해법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그는 “문제는 현행법상 멧돼지를 잡을 수 없고 새 법을 만들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전제하고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첫눈이 내리는 날 공수부대를 동원해 멧돼지들을 잡을 것”이라며 “10% 정도는 부대에 넘기고 나머지는 도축해 양로원에 주거나 팔면 된다”고 주장했다. 또 “야생 멧돼지가 30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중 5만 마리는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유 의원의 튀는 공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또 “전국 하천이 외래어종 배스 때문에 토종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어 10년이면 하천의 모든 토종 생물은 씨가 마를 것”이라면서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이 그냥 없어지지 않았다. 다 잡아버렸기 때문에 없어졌으니 배스를 ㎏당 2000원 정도 수매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낚시꾼 700만 명 중에 500만 명은 우리를 지지하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이날 유 의원이 내놓은 세 번째 ‘튀는 공약’은 ‘전국 보건소 현대화 계획’이다. 제목만 봐서는 그리 튈 것이 없어 보이는 이 공약도 유시민이라는 현실 정치인에게 가닿으면, 확실히 눈에 띄는 공약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는 “요즘 농촌에선 어지간한 읍내 아니면 목욕탕이 다 없어져서 어르신들이 목욕을 전혀 못한다. 건강의 첫째가 청결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면서 “20년 만에 보건소를 새롭게 지어주는 것을 5년 만에 한 번으로 당겨서 목욕탕도 함께 지으면 된다”고 제안했다. “보건소 하나마다 2억 원 정도 들이면 보건소에 목욕탕과 헬스클럽 같은 것을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게 유 의원이 밝힌 이유다. 그렇다면 보건소와 목욕탕의 운영과 관리는 누가 할까. 유 의원은 “보건소 운영은 정부에서 하고 목욕탕 관리는 지자체에서 하면 된다”고 즉각 대답했다. 이미 오랜 전부터 생각해왔던 공약이라는 뜻이다. ‘역시 유시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는 대목이다. ■‘멧돼지’ 발언에 발끈했다가 네티즌 조롱거리 된 특전 동지회
유시민 의원의 ‘멧돼지, 배스, 목욕탕’ 공약에 대한 반응이 제일 먼저 터져 나온 것은 그와 대선 레이스 경쟁을 펼치고 있는 다른 대선주자 진영이 아닌, 특전동지회였다. “우리가 사냥꾼이냐”는 반발이다. 지난 8월 23일 특전동지회는 성명을 내고 “상식 이하의 망언으로 엄중히 경고한다”며 “유시민 의원이 즉각 해명할 것”을 촉구했다. 특전동지회는 “유시민의 망언은 국가안보를 위해 목숨 바쳐 군인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 공수부대원의 애국 충정을 한낱 멧돼지나 잡는 사냥꾼의 임무수행으로 비하하고 모독한 망언”이라며 “국방의무를 수행하는 현역장병과 일생을 국가안보에 바쳐온 특전동지회원들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특전동지회는 “즉각 사과하고 그의 가슴에 품고 있는 음흉한 저의를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라”며 “〃특전사의 긍지와 명예와 자존심을 훼손한 유시민의 망언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특전동지회는 또 “공개사과하지 않을 시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그 책임을 끝까지 추궁할 것이며, 그 저의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을 엄중 경고한다”고 유 의원에게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특전동지회는 이날 성명에서 한 가지 중대한 ‘오바’를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최근 흥행돌풍과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5월광주’의 참혹상을 알리고 있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 시비를 건 것이다. 특전동지회는 성명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거짓으로 국민과 군 간에 적대감을 조성한 것 같이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국민과 특전사를 이간질 및 적대감을 고취시키는 그 저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히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특전동지회가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해 “거짓으로 국민과 군 간에 적대감을 조성했다”고 주장한 것은 또 하나의 ‘망언’ 수준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것은 공수특전단이 아닌, 누구란 말인가. ‘망언’을 규탄한다면서 또 다른 ‘망언’을 일삼는 것으로는 그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군에 대한 국민들의 적대감을 조성한 것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결코 상영될 수 없었던 영화 ‘화려한 휴가’가 아니라, 수십 년 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권력 장악을 위해 시민을 학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군 자신이다. 각 포털사이트에 공급된 유 의원의 멧돼지 발언에 대한 특전동지회의 반발 기사에는 ‘광주에서는 사람만 잘 잡던 특전사가 그깟 멧돼지 잡는 것에 발끈하냐’는 식의 댓글이 압도적이었다. 여기에 더해 해병대 등 특전사와 전통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 군종(軍種) 출신들의 ‘비아냥성 댓글’과 ‘5월광주’에 대한 특전동우회의 문제인식 수준을 비난하는 댓글까지 포함하면, 특전동우회를 옹호하는 댓글은 별로 없었다. ■유시민 “멧돼지 공약은 진지한 공약” 특전동지회의 이러한 규탄에 대해 정작 발언 당사자인 유 의원은 별반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유 의원은 23일 서울 용산의 대한노인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보건의료 실태 점검 때문에 시골지역에 가보니, 할머니 한 분이 30분 내내 멧돼지 얘기만 했다”며 “밭도 망치고 봉분도 파헤치고 해서 내외 분 중 한 분이 밭일을 하면 한 분은 깡통을 막대기로 때리고 계셨다”고 ‘멧돼지’와 관련한 자신의 일화를 소개했다. 유 의원은 “멧돼지의 개체수가 무한정 늘어나 일부는 민가로 내려와 고구마 밭을 파헤치고 사람을 위협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이로 인해 실제 사망 사건도 있었다”며 “멧돼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을 살펴보니 환경관련법 등 때문에 멧돼지를 잡기가 어렵게 돼 있다”며 “대통령이 되면 긴급 명령권을 발동해 특전사 요원을 투입해서라도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8월 24일에도 유 의원은 “‘멧돼지 공약’은 이색 공약도 튀는 공약도 아닌 진지한 공약”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날 경남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멧돼지 공약’을 이색 공약이나 튀는 공약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진지한 공약이고 매우 중대한 국가 과제”라며,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농촌 지역 어르신들은 멧돼지로 인해 일상적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고 발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유 의원은 이어 “이는 특전사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며 (멧돼지 소탕과 같은) 어려운 작전에는 특전사가 필요하다”며 “오히려 국민과 특전사 사이에 여러 사건으로 인해 끊어진 유대관계를 복원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비난한 특전동지회에 대한 유시민 식의 ‘충고’인 셈이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