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지난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친인척에 대한 광범위한 재산 사찰을 벌인 것이 드러남에 따라 ‘제 2의 검증 논란’과 함께 강한 파문이 예상된다. 한국일보가 31일 국세청 조사국 조사1과 5계에서 지난해 9월 이 후보와 친인척 등 11명에 대한 재산 검증작업과 함께 출입국 기록과 해외 송금기록도 살펴보는 등 해외재산 보유여부도 조사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당초 이 후보의 재산검증 근거였던 탈세 의혹 자료에는 “이 후보의 실제 재산은 1,000억원이 넘으며 대부분 처남에게 명의신탁 돼 있다”는 내용 외에 이 후보의 해외재산 보유의혹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이 무엇을 근거로 이 후보의 해외 재산 확인에 나섰는지와 관련 자료 유출 여부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 후보의 해외재산 의혹이 담긴 다른 기관의 자료가 국세청으로 넘어온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국세청과 국가정보원의 이 후보 재산 검증시기가 겹치는 것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검찰은 31일 국세청의 ‘이 후보의 해외 재산 보유 여부 조사’ 의혹에 대해 “국세청 조회 내역에 해외 재산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의 김홍일 3차장검사는 이날 “국세청 전산망 수사의 기본 목적은 (이 후보의) 부동산 거래 내역이라는 개인정보의 유출 여부”라면서 “수사 과정에서 국세청 관련자들로부터 해외 재산 추적과 관련한 내용을 들어본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또 김 차장검사는 “국세청의 이 후보 해외재산 추적은 우리의 수사 대상이 아니며,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검찰은 전날 국세청 전산망을 통해 2002년부터 올 7월까지 이뤄진 이 후보 친인척 11명의 부동산 거래 내역 조회 100여 건에 대해 정보 유출 여부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그러나 검찰이 지난 13일 “국세청의 이 후보 정보 조회 사건은 통상적인 업무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파악돼 수사를 종결했다”고 발표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의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차장검사는 “2001년부터 2007년 7월까지 국세청 전산망으로 이 후보 가족 11명의 부동산 거래 내역을 조회한 횟수가 100여 건에 달해 조사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대부분 국세청의 고유업무 목적의 조회로 확인됐다”면서 “이번 수사의 대상이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게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인 만큼 고유업무 영역 외에 조회가 이뤄져 유출됐는지를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검찰은 ‘국세청이 지난해 국가정보원 TF팀이 이 후보 친인척의 부동산 거래 내역을 조사했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이 후보 친인척에 대한 개인정보를 집중적으로 조회하고 보고서도 작성했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국세청이 내부적으로 조사를 벌인 뒤 보고서를 작성했는지는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고, 그런 보고서가 있다는 국세청 직원의 진술이 나온 적도 없다”고 밝혔다. 한편 국세청은 이날 한국일보의 ‘국세청, 이명박 해외재산도 추적했다’는 기사에 대해 “국세청이 지난해 이 후보에 대한 세원정보자료 분석시 해외재산 존재 여부에 대하여 추적했다라는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국가기관의 정보유출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서 국세청 직원의 전산조회 내용은 통상적인 업무 처리와 관련된 것으로 위법·부당한 개인적 사용이나 유출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해명자료를 냈다. ■ 한나라, 국세청 고발…특별검사 도입도 추진 한편, 한나라당은 검찰의 이번 발표에 따라 ‘정권의 이명박 죽이기’에 강하게 맞서겠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은 특히, 이 후보의 친인척 재산 조회를 ‘불법 사찰’, ‘권력형 공작정치’로 규정하고 검찰에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했다. 또 한나라당은 국세청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으며, 검찰이 재수사를 하지 않거나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경우 특별검사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전남 구례 지리산 가족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당협위원장 합동연찬회’에서 이를 ‘전형적인 권력형 공작정치’로 규정한 뒤 “권력을 사용해서 직권을 남용하고 범법 행위를 한 것으로, 검찰에 수사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권력형 공작정치에 대해 파헤치고, 만약 검찰이 지금까지 고발한 것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으면 특별검사를 임명해서라도 이런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 사람들(집권 세력)이 하는 것의 10배로 갚아주고, 다시는 권력이 민의를 왜곡해서 정권을 탈취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집권세력이 국세청을 동원, 이 후보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산 사찰을 벌였고, 같은 기간 이뤄진 국가정보원의 ‘이명박 X파일’ 작성에도 배후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정감사 때 이번 의혹을 파헤치겠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도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이명박 죽이기 사령본부가 있고, 그를 진두지휘하는 사령관의 철저한 지휘에 의한 것”이라면서 “검찰은 반드시 재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 대변인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국가정보원과 국세청이 동시에 이 후보의 재산 검증 작업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실무진이 자발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을 리는 없다”며 ‘배후설’을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죽이기 사령본부가 있다”며 “검찰이 재수사를 안 한다면 특검과 국정조사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세금을 거둬서 국민을 잘살게 하는 곳이 국세청인데, 후진적 발상이 아닌가. 진상이 조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범여권은 “검증 따로, 불법규명 따로”라며 이 후보 검증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신당의 이낙연 대변인은 “국세청의 활동과정에서 위법이 있다면 위법한 부분을 처리하면 된다”면서 “그것과 이명박 후보의 밝혀지지 않은 의혹은 전혀 별개의 문제로 검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유종필 대변인도 “권력기관들의 섣부른 개입이 대선판을 흐리고 오히려 한나라당 후보를 키워 주는 결과가 올 수 있다”라며 “권력기관들은 조용히 뒤로 빠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