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은 대한항공과 영국의 브리티시에어웨이즈(BA)가 가격을 담합해온 혐의가 인정된다면서 미 법무부의 기소대로 3억 달러(한화 약 2800억 원) 벌금형을 확정했다. 대한항공은 거액의 벌금형을 받은 데 이어 미국식 집단소송에 휘말려 있다. 또한 유럽연합(EU) 등으로부터도 유사한 내용으로 조사가 진행중이다. 또한 아직도 양사를 제외한 미국을 통한 국제선 노선을 운항하는 14개 항공사들에 대한 담합여부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도 조사를 받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독점 금지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기업 활동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반도체·조선·항공 산업분야는 세계 경쟁국가들의 집중 감시대상이 된지 오래다. 담합이 적발된 기업은 벌어들인 이익을 벌금과 소비자 피해보상액으로 쏟아내야하는 밑지는 장사를 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기업이라는 낙인마저 찍혀 심각한 기업 이미지 훼손도 발생하고 있다. ■ 끝나지 않은 대한항공 담합 처벌 대한항공이 화물운임과 관련한 담합혐의로 3억 달러란 과징금을 미국 법무부로부터 부과 받았다. 대한항공은 최고 6억3300만 달러, BA는 9억 달러까지 부과 받을 수도 있었으나 양 항공사가 스스로 담합협의를 인정하고 미국 당국에 조사협조를 약속함에 따라 과징금의 절반 이상을 경감 받았다. 대한항공은 이로 인해 지난 2분기에 헛장사를 하고 말았다. 지난해 영업이익(4974억원)의 절반이 넘는 3억 달러를 벌금으로 5년간 분납하는 조건으로 미국 법무부에 내게 됐다. 대한항공은 이 기간 중 영업이익은 75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증가했으나 과징금에 따른 영업외 손실을 이 기간 경영실적에 모두 반영해 2144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2분기가 항공업계에서 전통적인 비수기라는 점과 대한항공이 향후 과징금 부분을 경영실적에 계상시키지 않아 향후 실적 발표에서 악재를 떠안지 않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화물 운임의 경우 2000년 1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여객운임의 경우 2000년 1월부터 2006년 7월까지 담합요금을 적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한~미 노선에 있어 최대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연간 2억5000만 달러라는 여객운임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미 법무부 측은 대한항공과 BA가 담합으로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한인 언론인 선데이저널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이 기간 중 대한항공이 화물 운임을 킬로그램당 10센트에서 60센트로 부당하게 가격을 올렸고 여객운임도 담합을 통해 올렸다고 보도했다. 이어 미 법무부가 대한항공이 가격 담합과 관련, 상대 항공사와 회의 개최와 담당자들 간 대화와 통신 정보교환 행위 등을 한 증거를 입수해 반독점법에 위반한 사례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또한 담합에 관계한 두 항공사의 전·현직 임원 10여 명이 조사를 받고 있어 일부는 최고 징역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대한항공은 유럽연합(EU)으로부터도 담합과 관련한 조사를 받고 있어 추가 벌금을 부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대한항공 등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 담합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이번 미국 정부의 판결로 향후 공정위의 최종 결정에 대한 귀추도 주목되고 있다. 더욱이 대한항공의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들에 대한 민사책임 부분에 대한 해결은 이제부터가 본 게임에 들어간 상황이다. 대한항공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은 몇몇 소비자가 소송을 걸어 모든 소비자들에게 피해 배상을 이끌어 내는 집단소송 문제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집단소송만 전문으로 하는 로펌들도 성업중인 상태로 파악되고 있다. 벌써부터 대한항공을 상대로 미국 내 집단소송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향후 이 건과 관련, 얼마나 많은 집단소송이 제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달 시애틀 소재 법무법인 하겐스 버먼 소벌 샤피로가 “대한항공은 여객운임 담합으로 인한 승객 수십만명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관할 연방지법에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초로 로스앤젤레스의 ‘그랜시 빙코 앤드 골드버그’와 ‘엘리드 앤드 러패키’라는 법무법인이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전해진다. 대한항공 측은 “엄격한 미국 반독점법을 이해하지 못해 이러한 처분을 받게 됐으며 미국내 집단소송과 관련돼서도 현지 소송 대리인들을 통해 대처하겠다”고 전했다. ■ 기업들 공포에 떠는 반독점 규제 강화 미국에서는 반독점법을 위반하면 해당 회사는 벌금(담합으로 인해 벌어들인 이익의 2배)형 외에도 임직원 처벌뿐만 아니라 제품의 직접소비자와 간접소비자, 제품이 판매된 주와 해외소비자가 모두 해당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 할 수 있다. 직간접 소비자는 피해액의 3배까지 청구할 수 있다. 즉 반독점행위 적발로 10년 이상 각가지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독점과 관련해 전세계 반독점규제의 원형이 되어 온 미국 셔먼법(연방독점금지법)의 골자는 미국내 거래를 제한할 능력을 갖춘 기업 간에 이뤄지는 어떤 형태의 연합도 불법이고 미거래 또는 통상에 대한 어떤 독점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앞서의 사례뿐만 아니다. 우리 기업들은 지난 2000년부터 5년간 반독점법과 관련 135건이 미국 연방법원에 제소 또는 피소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어느 기업으로 또 다른 불똥이 튈지 예측불허다. 전문가들은 전세계적인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독점 규제의 강화로 전세계적인 반독점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원 세종대 석좌 교수(미국변호사)는 최근 한 언론 칼럼에서 “무심코 나눈 말이나 관례나 문화라고 믿었던 것도 불법의 단서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 기업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조창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