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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콤, 제2의 ‘이랜드사태’ 되나

정규직 전환 회피 위한 간접고용…‘이랜드사태’와 닮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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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호 ⁄ 2007.09.17 13:44:13

“아마 어느 누구도 여의도 한 복판 증권선물거래소 건물 안에서 비정규직이 서럽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황영수 코스콤 비정규지부장) 서울 여의도 한 복판 증권거래소에서 증권 전산업무를 담당하던 사무직 노동자, ‘화이트칼라’로 불리던 코스콤(옛 증권전산) 노동자 100여 명이 11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다. 이들이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반감금’ 상태에서 파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7월 1일 시행과 함께 ‘이랜드사태’를 불러온 비정규직법.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제안대로 기업들은 2년 이상 사용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기 위해 파견·도급·하청 등 간접고용에 힘을 쏟고 있다. 비정규직법을 ‘비정규직보호법’이라고 자부하던 정부도 아직까지 이런 기업들의 편법을 막을만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비정규직법의 차별시정 조항을 손쉽게 벗어나기 위한 사용자들의 편법이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 상관없이 우후죽순 나타나는 양상이다. ■ 사용자는 없다?…‘유령’ 밑에서 일한 이들 코스콤(옛 증권전산)은 국가 증권전산망을 운영하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타 공공기관이다. 올해로 설립 30돌을 맞은 코스콤은 지난해 매출 1800억원에 순이익 200억원을 냈다. 흔한 오해처럼 이들이 무리하게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일까. 코스콤 비정규노조 측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루 12시간 일하고도 한 달에 고작 100만~120만원을 임금으로 받았다. 전산업무 특성 때문에 추석연휴 특근으로 고향도 못 가는 신세였다. 그래도 코스콤 직원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란 구분은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 믿어왔다” 이들은 사실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되지도 않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주)코스콤 간판이 달린 사무실에서 일하고 사 측이 제공한 컴퓨터와 사무비품을 이용해 일했다. 명함에도 ‘(주)코스콤’이 찍혀 있었다. (주)코스콤은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해 직접 보직임명과 전직, 작업장 배치 등을 지시해왔고 사내 전산망인 ‘나누미’를 통해 근무태도 관리까지 해왔다”

하지만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코스콤 사 측이 보인 행태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사 측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장비를 같이 못 쓰게 하고 업무를 구분했다. 정용건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은 12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IMF 이후 수많은 사무기업들이 합병되고 인수되고 망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되는 상황을 맞았고 현재 사무금융연맹은 약 30%가 비정규직이며 특히 전산관련 IT산업 종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은 편”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해 외주화하면서도 많은 회사들이 밖으로는 이들이 정규직인 것처럼 위장해 왔다”고 지적했다. ■ 중노위도 간접고용 폐해에 등 돌려 코스콤 비정규지부에 따르면, 비정규직법 취지대로라면 이미 정규직화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면하기 위해 코스콤은 지난 7월 비정규 직원들을 5개 업체로 이동시켰다. 이들은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없었던 일처럼 무마하고 싶어하는 코스콤의 비양심적인 계획”이라며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법안을 악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코스콤 비정규 노동자들의 외주화로 인한 갈등은 22차례 교섭을 통해 풀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사 측은 사용자성을 부인했고, 사용자가 사용자성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성실한 단체교섭은 불가능했다. 이런 까닭에 코스콤 비정규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단체교섭에 제대로 응할 것을 요청했다.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 민주노총 근로자위원 196명은 10일 성명을 통해 “코스콤 사건은 중노위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신뢰를 판가름할 중요한 사건”이라며 “중노위는 공정한 판단을 내려 코스콤을 교섭테이블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이원보)마저 편법적인 간접고용을 인정하고 사실상의 사용자성을 보인 코스콤 사 측의 사용자성을 부정했다. 중노위는 11일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가 “코스콤이 직접 고용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주 도급업체로 전환해 간접고용한 뒤 비정규직 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며 원청업체인 코스콤을 상대로 낸 노동쟁의 조정신청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쟁의조정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중노위는 “노조는 해당 사용자인 하도급업체와 교섭할 것을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업체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은 물론 고용안정 등의 사용자 책임을 묻기 힘들어진다. 협력업체가 계약을 해지 당하면 정리해고 당하고, 부당해고를 당해도 책임소재가 불투명해진다. 여의도 증권거래소 안에서는 코스콤 비정규 노동자 등 100여 명의 파업이 11일부터 계속되고 있다. 12일 낮엔 조합원과 사무금융연맹 간부 등 모두 14명이 강제연행되기도 했다.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중노위 판결, 비정규직법 안착에 손 놓은 노동부, 차별시정 조항을 피해가기 위한 기업들의 편법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언제나처럼 ‘불법파업’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언제까지 비정규직법의 허점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업→구속수배→손배가압류’라는 악순환을 방관할 것인가.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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