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잉꼬·깨소금·달콤함·행복·재미 등 긍정적이고 부럽다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릴 때 양가 부모들은 물론 친척, 친구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의 축복을 받고 행복한 날들만 있을 것 같은 신혼부부. 하지만 이제는 이런 이미지가 ‘옛말’이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신혼부부들을 보면, 경제적 불안으로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이고 힘겨운 요소들이 시나브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초기의 집값 문제를 시작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날로 증가하는 육아·교육비용 등 시름이 늘어나는 일만 가득하다. 과거에 남편은 가장(家長)이라 불리며 가정 경제를 책임져 왔다. 아내 역시 일보다는 집안 살림만 하며 남편이 매월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생활·육아비용을 충당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해 왔다. 불과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는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과 아내가 같이 돈을 버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대출금을 갚고 세금 및 생활비를 충당하면 가계부는 마이너스만 간신히 넘기고 있다는 게 오늘을 사는 신혼부부들의 하소연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를 낳으면 지금보다 두세 배는 족히 넘는 양육·교육비 문제로 내 집 마련은 20~30년 후에나 가능하게 됐다. 남편 월급으로는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져 남자 혼자 가정을 책임진다는 말은 이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고 있는 현실이다. 말 그대로 신혼부부들이 결혼하자마자 3중고 공포를 겪고 있는 셈이다. 서울 상도동에서 22평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는 직장인 김은희(29) 씨는 결혼 2년차 맞벌이 신혼부부다. 남편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의 영업부에 다니고 있지만 결혼하자마자 1억 원이 넘는 대출 빚만 늘었다. 결혼 후 수도권 지역에서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1억2000만원의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신혼의 ‘단맛’을 느껴야 할 시기지만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크다는 게 김 씨의 솔직한 심경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게 그녀의 말이다. 그 동안 남편 벌이로 대출이자와 생활비·세금 등을 충당하고 김 씨의 적은 급여로 적금을 들었지만 이제는 그 마저도 힘들어졌기 때문. 오는 8월 그토록 기다리던 첫 아이를 출산하는데 김 씨의 회사는 별도의 출산휴가 제도가 없어 조만간 회사도 그만둬야 하는 실정이다. 양육비와 사교육비는 날로 증가하는 데 남편 혼자 벌이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는 게 김 씨의 하소연이다. 김 씨는 “남편 월급은 그대로인데 지출할 곳은 매일 많아지고 있다”며 “이러다가 아이를 낳으면 집 평수를 더 줄여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울먹였다.
서울 미아리 인근의 다세대 주택 전셋집에 사는 직장인 김인철(남·32) 씨는 결혼 1년차 새내기 신혼부부다. 김 씨는 결혼 후 새로운 스트레스가 하나 생겼다. 1년이 넘었는데 왜 2세 소식이 없느냐는 양가 부모의 성화가 부쩍 잦아졌기 때문. 또 주변 사람들이 “조카는 언제 생기느냐”며 안부 인사를 할 때도 “처음에는 웃으며 넘겼는데 요즘에는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지금같이 어려운 형편에서는 제대로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부모 도움 없이 6,000여만 원을 대출 받아 간신히 전세자금을 마련했는데 방이 좁고 아이를 키울 공간도 부족해 당분간 2세 계획은 없다”며 “그런데도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아이 이야기를 꺼내면 괜히 내 자신이 초라해지고 아내 눈치도 보인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또 “결혼 전에도 집 문제 등으로 힘들었다”면서 “이제는 간신히 맞벌이 하면서 조금씩 버텨나가고 있는데 아이 문제로 또 다시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 신혼부부들의 한숨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하려는 남성의 경우 집값 문제로 결혼을 미루는 일이 허다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하더라도 치솟는 물가와 육아·교육비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부설 기관인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한국의 결혼문화와 결혼비용’ 보고서에 의하면, 작년에 신혼부부들이 지출한 결혼비용은 1억7245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신혼집을 마련하는데 쓰인 비용은 1억2260만원이다. 특히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은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집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결혼을 하자마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 빚에 쪼들리고 있다. 게다가 아이가 생기면 육아·교육비 등이 부담스러워 출산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출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출생아 수는 1994년 72만9,000명 이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또 합계출산율도 지난해 1.26명으로 2년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지만 일본(1.32명·2006년), 미국(2.10명·2006년), 프랑스(1.96명·2007년)보다 낮아 세계 최저 수준이다. 말 그대로 달콤하고 행복해야 할 신혼생활이 빚과 육아 책임을 떠안는 생활고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신혼부부·육아 대책에 대해 실질적인 정부의 혜택은 없다는 것이 신혼부부들의 하소연이다. 즉, 무늬만 있는 ‘탁상공론’ 정책이라는 것이다. 김은희 씨는 “아이가 태어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고 생활비는 지금보다 2배 가까이는 늘어나는데, 이런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라며 “행복하고 축복받아야 할 결혼·출산이 왜 생활고로 이어지고 직장마저 잃는 불행한 사건으로 변질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혼부부 정부혜택 막연한 기대… 혼인신고 일부러 늦추기도 이러한 신혼부부의 경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대안이 새 정부의 지원대책안이다. 이에 따라 혼인신고까지 늦추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아직까지 흡족한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복지정책과 신혼부부들의 고충이 따로 놀고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은희 씨 역시 “주택·육아비용 지원 정책이 나올 것 같아 아직까지 혼인신고도 안했다”며 “많은 신혼부부들이 그렇게 한다. 혼인신고는 아이 낳으면 그 때 할 예정”이라고 토로했다. 김인철 씨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김 씨는 “아직 출산계획도 없고 새 정부가 어떤 형태로 신혼부부 지원혜택을 내놓을지 상황을 지켜보고 혼인신고를 할 계획”이라며 “이에 대해 아내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정부가 무주택 신혼부부를 위해 여러 가지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 오는 실질적인 혜택이 없다”며 “새 정부 들어와서 신혼부부를 위한 혜택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나 역시 주변사람에게 혼인신고를 미루라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집값 안정 대책 지지부진…서민 부부만 울상 지금 신혼부부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기대는 집값 안정이다. 집 문제만 해결하면 그나마 빚더미에서만큼은 벗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분유·기저귀 값 등 아기들의 육아용품 가격을 낮추거나 출산 후 일을 하고 싶은 여성을 위해 마음 놓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놀이방 지원 정책이있다. 그러나 집 문제부터 시작해 육아용품, 놀이방 대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우선 새 정부는 올해 초 연간 신규주택 50만 가구 중 12만 가구를 신혼부부에게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무주택 신혼부부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다른 계층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데다, 신혼부부들의 주택 수요와 공급 물량 간 괴리감도 적지 않다. 특히 ‘수도권·광역시의 여성 기준 34세 미만 무주택 가구’를 신혼부부로 정의하고 있어 같은 연령대의 독신·기혼 가구, 35세 이상 신혼부부 등을 위한 배려는 빠져 있다. 또 신혼부부를 우선 배려하면, 청약 가점제에서 후순위로 밀려 있는 30대 중·후반과 40대 초반 계층은 신혼부부 아파트 혜택에서도 제외돼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 있다. 아울러 입지가 좋은 지역은 공급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어 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다. 또 현재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당첨 우선권을 주는 청약 가점제를 적용하고 있어 신혼부부들이 당첨될 확률은 ‘제로’(0)에 가깝다. 이에 따라 신혼부부로서 지위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을 명시, 다른 계층과의 형평을 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출산 후의 취업과 놀이방 지원 정책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결혼과가족관계연구소 김신애 씨는 “3자녀 이상 아이를 낳아야 지역에 따라 5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지원금을 주는 게 고작인데 막상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마저 끊긴다”며 “3명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말을 들어보면 차라리 안 낳고 안 받는게 낫다고 호소한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또 “분유·기저귀를 사는데 드는 비용은 아이 한 명당 매달 50~60만 원은 꼬박꼬박 지출된다”며 “아이의 필수 품목은 정부 지원으로 가격을 낮춰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놀이방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신혼부부 지원 대책안을 연구하는 한 관계자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병설유치원은 월 5~10만 원 안팎으로 교육비가 저렴한데,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 보다 힘들다”며 “정부가 지원하는 유아원이나 유치원 등을 늘리고 여성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과거와는 달리 일하고 싶은 여성은 매년 증가하는데 출산휴가가 없는 기업이 많이 있다”며 “여성취업 부문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