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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공기업 민영화’

물 건너가나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전 공기업 개혁의지, 새 정부 출범 후 자취 감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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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호 박성훈⁄ 2008.03.24 17:03:14

이명박 대통령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정부의 몸집을 최소화하고 조직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최선행 과제로 꼽은 바 있다. 그는 만성 태만병에 걸려 있는 공기업들을 개혁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피력해 왔다. 이는 그가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민영화할 수 있는 것은 해서 국민의 부담을 줄이고 책임경영을 해서 성과를 내는 방식으로 가는 게 좋다.”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을 팔아 중소기업 지원기금을 마련하겠다.” “공기업의 효율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영화이다.” “시장이 잘하는 것은 시장에 맡기겠다.” “싱가포르식 민영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게 다 이명박 대통령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국토발전계획 시대의 산물인 산업은행을 민간에 매각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산업은행의 직원들은 휘몰아 닥칠 대규모 구조조정과 종잡을 수 없게 된 은행의 운명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쥔 순간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며 출범한 인수위는 ‘공기업 민영화’를 핵심 검토 대상으로 다루기도 했다. 출범 당시의 인수위는 코레일(KORAIL. 구 한국철도공사)의 여객 및 화물 운송 부문을 떼어내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다. 또 대한주택공사에서 서민용 주거복지사업을 제외한 일반 아파트 건설사업에 대한 기능은 일반 기업으로 이양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었다. ■‘싱가포르 테마섹’ 다시 등장 이처럼 일관되게 진행될 것 같던 공기업의 민영화에 변수가 나타났다. 공기업의 민영화를 주도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싱가포르 테마섹 모델을 들고 나섰다. 즉, 공기업의 완전 매각을 통한 민영화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절충안을 주장한 것이다. 부연하자면, 지분 소유는 정부가 하되 경영은 민간 공모를 통해 선출된 전문경영인이 하는 방식이다. 강만수 장관은 “공기업 민영화는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매각하느냐보다 우선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역대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주인이 국내 재벌이 돼야 하느냐 외국 투자자가 돼야 하느냐 등을 놓고 논란이 계속 됐다”며 싱가포르 테마섹 모델을 옹호했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공기업의 주주권을 포기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비친 셈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테마섹 모델은 이미 문민정부 때 실패를 경험한 바 있는 대안이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의 목표를 공기업 민영화에 두고, 59개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10개 공기업을 통폐합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기업에 공기업을 넘길 수 없다는 원칙론과 대기업의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에 부딪치면서 민영화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같이 정부가 빈틈을 보이자, 공기업 노조와 엽연초 농민 등 이해집단의 저항이 거세졌고, 임기 말에 들어서는 대선이 점점 다가오면서 정치적 부담도 커졌다. 결국 96년 11월 김영삼 정부는 가스공사 등 4대 대형 공기업의 민영화를 보류하고, 경영만 민간인에게 맡기는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했다. 정책 책임자였던 한승수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은 “공기업 민영화가 바람직하지만, 그 중간 단계로 우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 후 문민정부 끝까지 공기업 민영화는 논의가 멈춰 실패의 상처만 남겼다. 문제는 강만수 장관이 문민 정부가 공기업에서 경영권만 민간에 넘기려다 개혁에 실패했던 과오를 모를 리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배제된 ‘민영화’ 강만수 장관의 전문경영인 영입을 통한 민영화 절충안에 이어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이명박 정부의 내각 구성 후 경북 구미에서 이루어진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사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산업 관련 정책의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의 업무보고에는 기술표준원의 시험·인증 기능과 기술거래소의 기술평가·평가·인수합병(M&A) 중개업무를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을 뿐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다. 기획재정부도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의 지분만 특별히 관리하는 정부투자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이 또한 특별한 방침은 없다.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해서도 언급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정책방향이나 뚜렷한 민영화 계획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공분야 개혁에서 강조해 마지않던 공기업 민영화가 갑자기 정책 선두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해야 할 주무부처의 장관들이 ‘주군’의 뜻에 반하는 판단을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MB 정권에서도 ‘내사람 심기’ 조짐 공기업 민영화가 슬쩍 자취를 감춘 막후에는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 관계자가 한 언론에 흘린 얘기에 따르면, 정부 내에서는 총선 전에 공기업 민영화의 ‘민’자도 꺼내지 말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총선 과정에서 여권의 이해관계와 공기업의 인사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단서이다. 실상, 정부에서 출자하고 운영하는 공기업은 민간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거의 자유롭다. 경영이 부실하더라도, 정부에서 재정을 뒷받침해주고 시장에서 위치를 잡아주기 때문에 도산할 위험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래서 공기업의 CEO들은 기업의 경영개혁과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아도 그 지위가 보장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임명권자, 즉 정부 기관의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된다. 이들을 감독해야 할 정부관료와 정치권력에게도 공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는 사실 그들의 주요 관심사에서 멀다. 그들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자리를 가능한 한 많이 보전하는 것이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가는 일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공기업 민영화는 그만큼 정권 내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좌파정권에 몸담았던 정치·문화·언론계 인사들은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큰 논란을 빚었다. 그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분들을 서운하지 않게 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어,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도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참여정부 때 임명 받았던 문화 관련 공공기관의 장들은 물러나야 한다”며 참여정부 출신 공공기관장들의 사퇴를 종용하기도 했다. 공천 탈락자나 정권창출에 기여한 사람들을 위해 공기업에 높은 자리를 비워 ‘보은인사’를 하려는 게 아닌가 우려가 남는 대목이다.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춘 유능한 전문가가 배치돼야 할 공기업의 장 자리를 두고 정치적 이권이 개입할 여지가 남겨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공기업이 민영화를 통해 성장한 케이스가 있다. 예컨대,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경우에는 국민공모주 형태로 민영화해, 기업의 경쟁력이 이전보다 크게 성장했음을 볼 수 있다. 민간에 의한 소유와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구태의 정치 관행에서 공기업을 건져내는 일이 공기업 정상화의 기본 바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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