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름값 급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5월 28일 총리실에서 발표한 고유가 대책이 정치권과 여론으로부터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은 후 6월 8일 다시 마련된 ‘고유가 극복 종합대책’은 지원 대상과 규모 면에서 헌정사상 전례가 없다. 유류세를 일괄적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세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그 규모는 10조원을 넘는다. 하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그야말로 응급대처용 처방들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난해 이후 유가 폭등이 계속되면서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타격과 고통이 여타 소비국들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한 이유는 우리의 에너지 소비 구조와 의존도, 에너지 효율이 타국에 비해 훨씬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와는 별도로 고유가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중장기 종합대책을 따로 세워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고유가 대책은 근로자와 자영업자, 저소득층, 농·어민, 화물차 등에 대한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원방법은 세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며, 우리나라에서 도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유가 극복 민생종합대책’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최근 유가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 증가분 20조원의 50% 수준인 10조원 상당액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원칙 아래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류세 인하 등 획일적인 지원보다는 고유가를 감내하기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선별적,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세금 환급(Tax Rebate)은 외국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실시하는 제도”라며 “미국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한 목적으로 쓰였지만 이번 고유가 극복 대책에서는 저소득층에 집중하기 위해 시행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체로 이번 대책이 서민 가계와 경기 부양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정부로선 ‘촛불 시위’ 민심 수습과 정국 타개를 염두에 두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여 근시안적인 대책이라는 비판이 있고,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이 나올 소지도 다분하다. 특히 비싼 경유값 때문에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는 화물차·버스 업계와 농어민들은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불만이다. 또한, 유가 환급금 지급 대상 선정을 놓고도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서민 초점 맞춘 지원 우선, 근로자와 자영업자는 급여와 소득별로 연간 6만원에서 최대 24만원까지 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이는 오는 7월부터 1년 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월급을 받는 근로자는 연봉이 3,600만 원 이하인 경우가 지원대상이다. 총급여가 3,000만원 이하일 경우 24만원을 지급하고, 3,000만~3,200만원은 18만원, 3,200만~3,400만원은 12만원, 3,400만~3,600만원은 6만원이다. 자영업자는 종합소득 금액 2,400만원이 기준이다. 종합소득액이 2,000만원 이하면 24만원을 지급하고, 2,000만~2,130만원은 18만원, 2,130만~2,260만원은 12만원, 2,260만~2,400만원은 6만원이다. 이 돈은 6개월분씩 2회로 나눠 지급되거나 원할 경우 매월 지급도 가능한데, 올해 하반기분은 9월에 신청해서 10월에 지급(근로자)되거나 11월에 신청해서 12월에 지급된다. 근로자의 경우 직장에서 관할 세무서에 일괄 신청하면 되므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자영업자는 세무서에 개별로 신청해야 한다. 근로자의 연봉과 자영업자의 종합소득금액은 모두 지난해 소득이 기준이다. 버스, 화물차, 연안화물선 등과 같은 사업용 차량·선박에 대해서는 유가 환급금을 지급한다. 현재 이들에 대해선 보조금이 리터당 293원 나가고 있는데 이 돈 역시 그대로 지급되고, 경유가 리터당 1,800원 이상 오르면 그 상승분의 50%를 추가 지원키로 했다. 그런데 환급금이 급증할 경우를 대비, 기존 보조금을 포함해 리터당 476원을 환급 상한선으로 정했다. 화물차와 버스는 시군구에서, 연안화물선은 해운항만청에서 지급된다. 유가 환급금은 가구별이 아닌 사람별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도 각각 지급받을 수 있다. 농어민에게도 유가 환급금이 지급된다. 농어민에 대해선 현행 유류세 면세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경유가 리터당 1,800원 이상 오르면 그 상승분의 50%를 지급한다. 이 역시 대중교통업자와 마찬가지로 리터당 183원(면세부분을 뺀 금액)이 상한선이다. 이에 앞서 국세청은 지난 4월, 경차 소유자를 대상으로 1년간 10만원 한도 내에서 기름값을 돌려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이 방침이 1톤 화물차를 대상으로도 시행된다. 법인소유가 아닌, 1톤 이하 자가용 화물차를 가진 사람도 연 10만원 한도 내에서 기름값을 돌려받을 수 있다. 환급 대상자에게는 유류구매 카드를 발급, 운전자가 이 카드로 주유를 한 뒤 카드 대금 청구시에는 환급액이 제외된 금액이 청구된다. 정부는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자(올해 86만 가구)와 중증장애인(3만 가구)에 대해서도 유류비 부담 증가분의 50% 수준인 월 2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올해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등유와 LPG, 프로판가스, 취사·난방용 도시가스의 세금을 30% 내릴 계획이다. 저소득층의 연탄 구입시 가격 인상만큼 쿠폰을 지급하는 보조사업은 기존의 기초생활 가구에서 차상위 가구까지 범위를 확대한다. 아울러, 공공요금 안정 지원 대책으로 전기·가스 요금 동결에 따른 누적적자를 정부가 50% 지원해 급격한 요금상승을 방지하고, 지방 공공요금 안정 지원으로 지자체가 교부세 정산분 5.4조원을 활용해 버스·지하철 등의 유가 등 원가 상승분을 보전해 요금이 안정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만약, 국제 유가가 계속 치솟아 두바이 유가가 배럴당 170달러에 이를 때에는 추가 예비조치를 시행하여 모든 유종의 유류세를 인하하고, 이번 유가 환급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택시에 대해서도 지원을 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지원 대책에 필요한 자금은 10조4,900억원으로, 정부는 세계잉여금 잔액 4조9,000억원과 앞으로 1년간 유가상승으로 예상되는 세수 증가액 5조원 안팎을 사용할 방침이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고통분담의 원칙을 최대한 지키도록 하겠다”며 “각 계층별로 유가 인상분의 절반은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회 안 열리면 허사…법률안 손질 필요 정부가 발표한 ‘고유가 극복 종합대책’에 대해 일각에서는 ‘허점 투성이’라는 논란도 일고 있다. 쇠고기 파동에 따른 민심이반, 3차 오일 쇼크에 버금가는 고유가로 인한 경기침체 등을 막기 위해 정부가 10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대책의 대부분이 법령을 새로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하므로 예정대로 추진될지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가 환급금 등을 놓고서는 중복지원·형평성 문제 등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대책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18대 국회는 현재 여·야의 대립으로 개원 신고식도 못 치렀다.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 열릴지 가늠할 수도 없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대부분이 관련법의 제·개정 작업이 이뤄져야 시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 협조가 필수 사항이다. 먼저, 유가 환급금 지급 등 종합대책이 집행되기 위해서는 모두 6개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예컨대, 근로자, 자영업자, 사업용 차량(대중교통·물류), 농어민에 대해 유가 환급금을 지급하고 저소득층과 공공요금 안정을 위한 보조금 지급을 위해서는 조세특례제한법,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지방세법 등에 대한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 외, 에너지 절약구조와 해외자원 개발을 위해서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도 개정해야 한다. 법을 바꾸지 않아도 4조9,000억원의 추경편성은 가능하겠지만, 추경예산은 국회를 통과해야만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회가 열리지 않을 경우 이 역시 허사다. 추경을 편성해야 고유가 극복 민생 종합대책을 집행할 수 있고, 세계잉여금 중 이 대책에 쓸 3조3,0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1조6,000억원을 앞으로 추진할 민생대책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강만수 장관은 “7월 1일부터 순조롭게 집행이 될 수 있도록 여당에 요청했다”며 “여야 없이 조속히 집행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간곡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세계잉여금의 추경편성에 대해선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추경편성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당과의 회의에서 이것에 의해서도 (추경이) 가능하다고 한나라당은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급금 등 지원 놓고 중복지원·형평성 논란 이와 함께 유가 환급금의 지급방식을 놓고서는 중복지원·형평성 문제 등도 거론되고 있다. 대책의 상당 부분이 서민층을 대상으로 했지만, 일부는 맞벌이 부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 유가 환급금의 경우 맞벌이 부부는 최대 48만원까지 환급받을 수 있어 홑벌이 부부 등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부가 각각 3,000만원씩 6,000만원의 가구소득을 올리는 가정에는 각각 24만원씩 48만원의 환급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기준선인 3,600만원을 갓 넘은 홑벌이 4인 가정에는 한 푼도 지원되지 않는다. 가족이 많아 실제 유류비는 더 많이 들어갈 수 있는데도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는 유가 환급금이 가구별이 아닌 사람수별로 지급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부양가족 여부나 재산상태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으면서 나타난 문제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부부가 각각 소득세를 납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각자가 낸 소득세의 일정 부분을 돌려받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 유가환급의 취지는 유가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의 교통비 등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지원체계가 가구별이 아닌 인별 기준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중복지원 문제도 논란거리다. 주된 지원대상인 영세민의 경우 평상시 소득이 과세점 이하여서 세금을 내지 않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유류비 부담 증가분의 50% 수준인 약 2만원, 즉 연간 24만원을 받는 것 외에 근로자 유가 환급금도 24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또 경차를 소유한 영세사업자도 10만원 상당의 경차 보조금 외에 유가환급금 24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반면, 평소 소득세를 많이 내온 계층은 자신이 낸 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일부 불만이 제기되는 상태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서 기획재정부는 “소득이 면세점 이하여서 소득세를 내지 않지만 소득세 체계 내에서의 관리대상인 만큼 환급 대상으로 보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또, 이번 지원대상은 올 7월부터 내년 6월까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므로 직장이나 자영업 등록을 하지 않은 실업자의 경우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이와 함께 농어민들과 화물차·버스 사업자 등 경유차 사용자는 “피부로 느끼는 지원 규모가 크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전국의 농어민들은 실효성이 미흡하다며 면세유 가격 동결, 부채 경감 등 실질적인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고유가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고민거리여서, 앞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번 유류세 인하와 같이 이번 정책의 실효지속시간이 짧을 수 있다는 점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앞으로 물가 급등세가 이어지고 유가가 현 수준을 넘어설 경우 이번에 내놓은 긴급대책도 실질적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대책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을 미리부터 고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