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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정세균, 정치적 궁합은?

‘대화·타협 중시’ 닮은 꼴… ‘이미지 쇄신·개혁’ 공통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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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호 심원섭⁄ 2008.07.16 10:22:35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7월 초 전당대회를 통해 각각 대표직에 선출되면서 두 사람이 향후 막힌 정국을 풀어 나갈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당 내외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서 대체적으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향후 여야 협상 과정에서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사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 패배 직후 당이 위기에 빠지자 6개월여 동안 대표 권한대행을 맡으며 당이 안정궤도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정 대표 역시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2005년 10-26 재보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패배 이후 과도체제 사령탑을 맡아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정국현안을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등, 두 사람은 과거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 수습을 위해 당을 진두지휘한 공통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이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 박 대표, ‘최고 명대변인’ 찬사 들어 박 대표는 검찰에서 검사장까지 지낸 율사 출신으로서,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17대 총선까지 경남 남해·하동에서만 내리 5번 당선된 당내 최고 원로 그룹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과 민자당 대변인을 역임했으며,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원내총무, 한나라당 부총재·최고위원·대표를 지내는 등 주요 당직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50대 초반 4년 3개월 동안의 당 대변인 시절엔 ‘촌철살인’의 논평과 순발력으로 ‘당대 최고의 명대변인’이라는 찬사를 들은 바 있으며, 이번 전대 내내 청와대·국민·야당과 ‘소통의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강조한 것도 대변인 시절 언로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란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여당(신한국당)과 야당(한나라당)에서 원내총무를 경험한 정치감각에 박 대표 특유의 소신인 ‘대화와 타협’이 어우러져 얼어붙은 쇠고기 정국을 녹일 것이란 기대도 없지 않다.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거쳐 본선에서 법률담당 상임고문을 역임하는 등 이 대통령과는 ‘통’하는 사이로,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할 최적임자로도 꼽힌다. 반면, 정책으로 잔뼈가 굵은 ‘화합형 투사’, ‘구원투수’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정 대표는 그 동안 당 내부적으로는 화합의 카리스마로 갈등과 분열을 잠재우면서도 대(對) 한나라당 전선에서는 소신과 뚝심을 지키고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위기 때마다 당을 구출해내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5년 10-26 재선거 패배 이후 3개월 간 임시 당의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하며 대표적 개혁입법인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를 진두지휘한 것을 단적인 예로 들고 있다. 사학법 통과를 기점으로 난파 직전의 열린우리당은 위기를 벗어났지만, 한나라당은 사학법 파동의 후폭풍에 휩싸여 강재섭 원내대표가 낙마하기에 이른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정 대표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쌍용그룹에서 임원을 지내고 미국 페퍼다인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따 실물과 이론에 두루 밝은 ‘경제통’으로 잔뼈가 굵은 몇 안 되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정치권 입문 후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을 거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을 거치며 경제분야에서 탁월한 정책역량을 과시했다. 그러다가 정 대표가 리더형 정치인으로 한 단계 도약한 결정적 계기는 2005년 1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4대입법’ 처리 실패로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추스르면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던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던 것이다. 특히, 같은 해 3월에는 치밀한 전략 수립과 용의주도한 실행력으로 한나라당의 단상점거를 뚫고 행정복합도시특별법을 통과시킨데 이어, 근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거사법 처리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바람에 ‘컴도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2006년 1월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이후 ‘1-2 개각 파문’에 휩쓸려 잠시 당내 위상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이내 제자리를 잡았고, 11개월의 산자부 장관 재임 기간에는 수출 3000억 달러 시대를 열어 ‘3000억 달러의 사나이’란 별명을 얻었다. 정 대표가 특유의 `통합의 리더십을 과시하며 구원투수로 재등판한 것은 당이 분열로 치닫던 2007년 2월로서, 복잡한 당내 계파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당 의장에 합의추대된 그는 같은 해 8월까지 열린우리당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며 통합의 초석을 놓았다. ■ 정 대표, ‘경제실정 비판할 적임자’ 당내에서는 거여(巨與)인 한나라당을 상대로 ‘강단있는’ 원내전략을 구사하여 이명박 정부의 경제실정을 비판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장점과 두 사람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인품이 출중한 반면에, 당 내외의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사실 한나라당의 ‘박희태호’가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으로 성난 민심을 되돌리고 계파 간 갈등을 치유해야 함은 물론, 집권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 여당의 지지율도 50%대에서 30%대로 급락한 상황에서 국정 주도권을 회복하고 정국을 정상화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출범하게 됐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당내 계파 갈등 치유나 공천 후유증 극복도 박 대표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중의 하나라는 게 당 내외의 지적이다. 계파 갈등의 핵심 고민 중의 하나였던 친박 복당 문제가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일괄복당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일단 마무리 됐으나, 그래도 지난 총선 공천과정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차기 대권을 놓고도 계파 간 기싸움이 예상되고 있고, 공천 과정의 계파 줄 세우기 논란도 풀어야 할 숙제라는 점에서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박 대표의 또 다른 과제 중 하나는 본인이 민주화 1세대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민정계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것과, 이례적으로 원외신분으로서 대표를 맡고 있다는 점, 70대 고령이라는 점도 박 대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대구 경북 출신인 상황에서 당 대표까지 PK 출신이라는 ‘영남 지역주의’ 꼬리표는 그에게 앞으로 잇따를 재보궐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의 새 항로를 개척할 정세균호(號)가 닻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패배로 끝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무너진 지지기반을 일으키고 ‘강한 대안야당’의 밑그림을 그려 나갈 민주당의 새 수장으로 정세균 후보가 당심의 낙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개혁’ 카리스마와 대중성을 갖춘 추미애 후보가 ‘민심’에서는 앞서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부를 추스르는 게 더 시급하다는 바닥 정서가 정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심의 무게가 ‘화합’에만 실린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변화’의 키워드를 내세운 추 후보가 조직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선전한 것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당내 상황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즉, 변화를 하되 당내 화합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당심의 최종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정세균호의 출범에 따라 당의 운영기조와 세력판도에는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일단 ‘강한 리더십’의 출현이 예상되지만, 여당에서 야당으로 신분이 바뀐 이후 처음으로 경선을 거쳐 탄생한 지도부여서 과도기 관리형인 손학규 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구심력을 보일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안팎의 환경이 녹록치 않은 탓에 정 대표의 어깨에 놓인 짐이 자못 무거워보인다. 당장 과거 열린우리당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당의 면모를 `쇄신하는 것이 과제다. 정 대표는 통합정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을 지낸 뒤 11개월 만에 당 대표로 컴백한 만큼 국민에게 새 이미지로 다가서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수도 없이 지적했듯이, 야권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촛불정국’ 속에서도 10%대에 머물고 있는 낮은 지지율이 이어질 경우 자칫 정세균 체제의 태생적 한계가 거론되며 잠복했던 당내 노선투쟁이 불거질 공산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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