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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눈 뜬 장님, 노사는 한통속

공기업 돈잔치…인건비 과다지급 4600억 원에 달랑 5억 원 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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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1호 박성훈⁄ 2008.08.26 16:20:40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 공기업이라고 한다. 해고당할 염려 없이 퇴직 때까지 높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터가 바로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불경기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공기업 직원 연봉의 정체가 감사원 감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12개 주요 공기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 공기업들은 국민의 눈을 속이고 돈잔치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감사원이 공기업 직원들의 공금 나눠 먹기를 적발해도 이를 환수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규정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뿐만 아니라, 공기업들은 직원들의 횡령·성매매·음주운전 등 범법행위에 대해서도 ‘제 식구 감싸기’에 치중하는 등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드러내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 공기업 임금 가이드라인 ‘유명무실’ 감사원의 7·8월 ‘공기업 예산운용 감사 보고서’에 의하면, 대한주택공사와 한국도로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전력공사·한국토지공사·대한석탄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마사회·증권예탁결제원·한국수출보험공사·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 등 12개의 주요 공기업이 직원들에게 부당 또는 과다하게 지급한 돈은 4690억1660만 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환수된 액수는 고작 5억8500만 원(전체의 0.12%)에 불과했다. 국민 1인당 1만 원씩 돌아가는 엄청난 규모의 눈먼 돈이 시간외수당·성과급·연차보상비 등의 갖가지 명목으로 이들 공기업 직원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물론, 정부에서 마련한 공기업 직원 임금 가이드라인이 있다. 여기에선 2∼3% 인상폭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의 존재가 무색하게, 대부분의 공기업은 각종 수당의 신설과 사내 근로복지기금으로 포장된 임금 보전 등의 방법으로 사실상 임금을 7∼8%까지 올렸다. 많은 공기업이 퇴직금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을 올리기 위해 성과상여금을 평균임금 항목에 슬쩍 포함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2007년에만 29개 공기업(이번에 조사한 12개 공기업 포함)에서 454억 원의 퇴직금이 과도하게 지급됐다. 명백히 잘못 계산된 퇴직금이지만, 회수는 없었다. 12개 공기업 중에서도 한국전력공사의 부당 과다지급금 액수가 월등히 많았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성과상여금의 기준이 되는 연봉월액을 실제보다 높게 책정해 1177억 원의 인건비를 추가 지급했지만, 감사원은 이를 적발하고도 “앞으로는 연봉제 도입을 통해 임금을 편법 인상하지 말라”며 하나마나한 지적만 했다. 연봉제로 전환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임금 인상의 수단으로 교묘하게 악용한 잘못을 감사원이 눈감아준 셈이다. 한국전력공사는 2007년 4급 이하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기본연봉에 가족수당·난방보조비·급식보조비 등 각종 수당을 포함시켜 연봉월액을 높인 뒤 이를 기준으로 성과상여금을 과도하게 지급했다. 또, 성과상여금 지급기준액(성과상여금 지급률과 곱해져 성과상여금을 산출하는 기준 금액)을 연봉월액의 100%로 설계해 성과상여금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한전은 2007년에만 1177억 원에 달하는 인건비를 추가 지급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 부당 과다지급금 환수 손도 못 써 과도한 임금 상승분에 대한 국고환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이다. 그나마 환수한 5억8500만원의 과다지급금도 철도공사가 2005~2006년 휴일을 근무일수에 포함시켰다가 토해낸 금액이다. 이를 제외하고 과다지급금을 환수한 기업은 한 군데도 없다. 신용보증기금은 2005~2007년 인건비로 쓰고 남은 돈과 관련해 특별업무추진 시간외근무 명목의 사후 문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45억9800만 원을 부당 지급했지만, 전혀 회수되지 않았다. 한국석유공사는 국가에 돌려줘야 할 국가보조금을 자신들의 수익인 것처럼 꾸며 사내근로복지기금을 과다 출연했다. 이렇게 쌓인 사내근로복지기금은 많은 공기업에서 경로효친비나 문화활동·휴가비 등으로 전 직원에게 사실상 급여로 지급되고 있다. 수출보험공사가 2005~2007년 인건비 잔액으로 전 직원에게 시간외수당을 일괄 지급한 돈은 환수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전력공사와 6개 자회사는 수익을 부풀려 2006년 성과급 지급률을 79% 높이는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899억 원을 더 주는 등 모두 2488억 원을 과다 지급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됐지만, 한 푼도 회수되지 않았다. 이 같이 부당하게 지급된 인건비는 국고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사실상 환수의 근거가 없다. 더욱이, 공기업의 노조와 사측은 정부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채 노사협상을 앞세워 임금과 수당을 과도하게 인상하여 적발됐지만, 노사 합의를 내세운 반발이 거세 환수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공기업의 금전 출납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 관계자는 “부당하게 지급된 인건비는 환수하는 게 마땅하지만 환수규정이 없거나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더욱이, 공기업 노사가 합의해 부당하게 과다 지급한 사례가 많아, 환수 결정을 할 경우 강한 반발이 예상되고, 직원들의 계좌로 이미 지급되어 써버린 돈을 돌려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 수당·임금 높여 인건비 나눠 먹기 이들 공기업이 부당하게 인건비를 과다 지급한 사례를 보면, △연말 잉여 인건비를 시간외수당으로 배분하거나 △평균임금을 실제보다 높게 계산해 퇴직금을 과다 지급하고 △통근비·연차보상비 등 수당을 과다 지급하고 △편법 회계처리로 경영실적을 부풀려 이를 토대로 성과급을 산정하는 등 나눠 먹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정원 변동에 따라 남는 인건비를 연말에 시간외근무를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전 직원이 나눠 갖는 사례도 비일비재했지만, 회수 조치는 없었다. 기업은행은 실제 근무에 따른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고도, 연말에 다시 시간외수당을 일괄 지급하는 방식으로 2005∼2007년에 358억2700만 원이나 나눠 줬다. 교통보조비 등을 수년 전에 기본급에 편입시켜 놓고도 몇 년 뒤에 다시 비슷한 명목의 수당을 슬쩍 신설해 이중으로 지급하는 사례도 많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시늉을 하기 위해 인상률에 계산되지 않는 수당을 새로 신설하거나 이중지급을 하는 행태는 공기업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변칙 회계처리로 경영성과를 부풀린 뒤 정부로부터 높은 경영평가 점수를 받고 성과상여금을 더 받아내는 수법도 썼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력공사다. 한전은 발전소를 운영하는 자회사에 전력구입비를 실제보다 적게 주고 한전 본사의 수익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영성과를 부풀렸다. 자회사들도 한전의 실적과 연계해 상여금을 받기 때문에, 전력구입비를 적게 받아 수익이 나쁜데도 성과상여금은 많이 받았다. 이처럼 실적을 부풀리면, 이익의 5%를 출연하도록 돼 있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적립금도 저절로 많아진다. ■ 공금횡령 어물쩍 무마…자체 정화능력 상실 공기업들은 자체 감사 과정에서 공금을 횡령한 직원을 적발하고도 형사고발하지 않고 자체 징계로만 어물쩍 무마하는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성매매나 음주운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직원에 대해 수사기관에 통보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내부통제 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46곳의 공공기관을 감사해 3곳의 공기업에서 내부 통제 미비 사안을 적발했다. 대한주택공사는 직원이 전세지원금 72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을 알고도 이를 고발하지 않았다가 적발됐다. 또, 검찰이나 경찰의 통보문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도, 음주운전을 한 직원이 경찰의 음주운전 사실 통보문서를 총무과 문서팀에서 빼돌릴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하다 적발됐다. 음주운전 직원은 문서를 빼돌렸지만 징계 처분은 받지 않았다. 한국산업은행은 성매매를 한 직원이 경찰에 붙잡혀 그에 관한 통보문서가 회사에 도착했는데도, 이를 접수대장에 기록도 하지 않은 채 관련 부서 팀장이 서랍 속에 보관하다 적발됐다. 한국토지공사는 직원 3명이 호텔 객실료를 과다 지급한 뒤 차액 400만 원을 돌려받아 임의로 사용한 사실을 발견하고도, 징계 규정에 나와 있는 정직 처분이 아닌 주의와 경고 등으로 가볍게 처분했다. 감사관은 “자체 징계위원회가 부당한 감경 처분을 내려도 감사실에서 재심사 요청도 하지 않은 채 공기업의 제 식구 감싸기가 여전했다”고 평가했다. ■ 노조도 한통속, 낙하산 감사는 눈뜬 장님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진 공기업 내부의 문제점들은 공기업 노동조합과 내부 감사의 존재 의의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임금의 개선을 위해 존재해야 할 노조는 과다 지급금이 방만히 집행되는데 오히려 주도적 역할을 했다. 임금은 노사협약 사안이므로 정부지침에 우선한다는 대법원 판례의 허점을 이용해 사측과 결탁해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앞장선 것이다. 또한, 이토록 공기업 내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낙하산 인사라는 태생적 인사 부조리가 도사려 있다. 공기업 감사는 기관장에 버금가는 권한과 처우를 누리면서도 책임은 거의 없어 정치권 낙하산 인사의 우선순위로 선호돼 왔다. 전문적인 식견이 전혀 없는 정치권 인사들이 공기업 감사 자리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다 보니, 공공기관의 감사가 이렇듯 허술해진 것이다. 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였던 조영래 전 새마을운동중앙회 감사는 지난 8월 14일 한국지역난방공사의 감사로 선임됐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였던 김공자 씨도 보훈복지의료공단 감사에 임명됐다. 16대 국회의원 출신인 이만재 씨는 7월에 국민체육진흥공단 감사로 선임됐다.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내고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취임준비위 자문위원을 맡았던 김주철 씨는 사학연금관리공단 감사에 선임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특보 출신으로서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김해진 씨는 철도공사 감사로 일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 시절에도 공기업의 감사 자리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운 인사들에게 나눠주는 전리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도 공기업 노조는 낙하산 인사라며 정부를 비난했으나, 속으로는 그 낙하산 감사를 은근히 환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눈먼 돈을 빼먹는 데는 무능한 감사가 필요했을 테니까. 이들 낙하산 감사들은 공기업 개혁은 안중에도 없이 자리보전에만 신경이 쓰여, 기관장과 노조와 적당히 타협해 사내 범법행위와 방만한 국가자금 운용 등이 만연하게 됐다. 이러한 내부 비리와 방만경영의 폐해는 모두 국민들이 떠안게 될 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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