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가 당초 매주 한차례 한다는 계획에서 격주 방식으로 조정된 가운데, 과연 국민과의 소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인지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난 13일 첫 라디오 연설 이후 시점 등 진행방식을 조정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기조가 크게 바뀐 것은 없다”면서 “라디오 연설 횟수는 애초 매주에서 격주 단위로 하는 걸로 조정됐다”고 설명해 격주로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대에 방송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연설 시간을 당초대로 7~8분 정도로 유지하면서, 방송 녹음분의 경우 보도자료 식으로 각 라디오 방송사에 일괄 배포하는 대신, 특정 방송사와 계약을 맺어 전담 방송하되, 다른 방송국이 요청하면 배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10월 13일 오전 7시 30분, 취임 후 첫 라디오 연설에서 국내외 금융위기로 인한 흑자도산의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 첫 라디오 연설 감성적으로 접근 이 대통령은 이날 KBS·MBC·CBS 등 10여개 라디오 방송에서 생중계된 ‘라디오 연설’을 통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름길은 기업과 금융기관, 정치권, 그리고 소비자인 국민 모두 서로 믿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연설은 “요즘 참 힘드시죠”로 시작됐으며, “저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또 무슨 우울한 소식이 없는지 걱정이 앞선다”면서 연일 날아드는 금융 파고로 상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엊그제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굳이 말씀드리기가 무엇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제 아버지 얘기”라며 “저의 아버지는 한때 조그만 회사의 수위로 일한 적이 있다”고 일화의 첫 단락을 뗐다. 이 대통령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관련해 “지금 정부는 국제 금융시장과 국내 경제상황을 일일 점검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국제적인 정책 공조가 중요한 때라 4강과의 협력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데, 서로 믿지 못하고 각자 눈앞의 이익을 쫓다 허둥대면 우리 모두 패배자가 된다”며 ‘지금은 길고 크게 보고 행동할 때“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또 “신뢰야말로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정부부터 신중하게 대처하고, 국민 여러분께 있는 사실 그대로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리겠다”며 “국민들도 힘을 모아 달라. 여러분들이 해외 소비도 좀 줄이고 국내 소비는 늘려 달라. 그렇게만 해도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최근 이곳저곳에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내게 ‘도대체 언제쯤 경제가 나아지느냐’고 묻더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요즘,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며 “미국 0.1%, 유럽 0.6%, 일본 0.5% 등 선진국들이 내년 성장률을 0%대로 잡았던데, 우리도 내년까지는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계 경제는 서로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만 독야청청 할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해를 구했다.
■ 민주당 KBS 방문해 반론권 요청 다만, 이 대통령은 “물론 우리가 지금 어렵긴 하지만 IMF 외환위기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전제한 뒤 “외환보유고는 2400억 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고, 이 돈도 모두 즉시 쓸 수 있는 돈이다. 1997년에 비하면 스물 일곱 배나 많다. 올해 4/4분기에는 경상수지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석유파동 때 나도 기업인으로서 힘든 경험을 했는데, 그때 멀쩡한 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구할 수 없어 고리 사채로 연명하고, 그나마 돈을 못 구한 기업들은 쓰러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금융위기 때는 회사가 제품을 못 팔아서가 아니라 돈이 안 돌아서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흑자도산’이라고 한다”고 설명하면서 중소기업들의 ‘흑자도산’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비가 올 때는 우산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는게 평소 내 소신이다. 조금만 도와주면 살릴 수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며 “한 개의 중소기업이라도 무너지면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기업이 문을 닫아 일자리가 없어지는 일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다짐하곤 한다”고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일자리를 지키고 늘리는 일은 여전히 국정의 최우선 과제”라며 “기업은 오늘을 대처하면서도 내일을 보고 경영해야 한다. 어려운 때 투자해야 미래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드는 기업이 애국자”라고 단언하면서 이날 연설을 마무리 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라디오 연설’은 대체적으로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노력이 곳곳에 묻어났다는 평가와 함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세계적 경제위기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겠다는 당초 취지에 맞춰 시종일관 조근조근 설명하는 투로 말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날 연설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줬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으며, 청와대는 “오늘 연설은 새로운 화두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극복 못 할 불안이 아니다’라는 점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아날로그 화법으로 IT 시대의 감성을 어루만졌다”고 자평했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13일 “반성없는 신변잡기”라고 혹평하면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경질과 함께 해당 방송사에 대한 반론권을 요청했다. 또한, 민주당 등 야당은 10월 13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청와대가 자체 제작한 녹음 테이프를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방송편성 시간 가이드라인까지 제시, 방송의 독립성과 공립성을 저해했다고 맹공을 폈다. ■ MB 지지율 23%, 역효과 얻은 듯 특히, 민주당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전병헌·천정배 의원 등 5명은 10월 15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반론권 보장을 요청하기 위해 KBS를 항의 방문했으나, KBS 측이 사장 면담은 일정상 어렵고 보도본부장 등과 만날 것을 제안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거부하며 이 사장과의 면담 요구를 고수해 30여분 간 본관 출입문 앞에서 KBS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발길을 되돌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KBS 측은 “오늘은 정해진 일정 등으로 인해 면담이 어렵고 다른 날짜에 면담이 가능하다는 점을 민주당 측에 여러 차례 공식 통보했음에도 의원들이 일방적으로 방문을 강행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라며 “민주당의 요구와 항의는 KBS 보도나 편성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여러 차례 전달하고 이해를 구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KBS 측은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방송과 관련한 야당 등 정치권의 우려와 관련해서도 정규편성이 결정될 경우에 대비해 정치권에 발언기회를 제공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를 놓고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방송된 10월 1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라디오 연설의 정례화 등 적극적인 대처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 지지율은 23.0%로 지난주 대비 3%p 낮아졌으며,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59.0%여서 지난주의 58.2%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이 대통령의 첫 라디오 연설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도 ‘기대된다’는 의견(38.3%)보다 ‘기대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44.2%로 높았던 것으로 조사돼 ‘라디오 연설’이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실질적으로 이 대통령과 국민들 간의 소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또한, 최근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 전반에서 강력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12.8%로 나타나, 지난 9월 KSOI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신뢰도 20.5%보다 더 낮아진 것으로 조사돼 강 장관의 거취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