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급락이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10월 23일 코스피지수가 1000선 붕괴를 눈앞에 두고 올해로 10번째 사이드카가 발동되는가 하면, 코스닥 시장 역시 사상 3번째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다. 이같은 현상으로 인해 개미들은 물론 큰 손들도 하나 둘 주식시장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역력하다. 10월 중순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렌 버핏이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고 투자자들을 독려했으나, 이날 주식 폭락에 개미들은 먼 나라 이야기로 듣는 분위기이다. “귀 막고 눈 감고 살고 싶다.” 직장인 A씨(36세)는 10월 23일 주식시장 개장 직후 시세표를 보고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을 꺼버렸다. 출근길 미국 증시 급락 소식에 마음을 다져 먹고 나왔지만, 출발부터 심상치 않자 이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는 판단에서였다. 코스피지수 1,500~1,200에서 꾸준히 했던 ‘물타기’(주가 하락시 추가매입으로 매입단가를 낮추는 행위)도 이제 포기했다. A씨는 “귀를 막는다고 안 들리는 건 아니고, 하루 이틀 지나면 수익률이 궁금해지겠지만, 당분간 펀드·주식과 담쌓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주가가 연일 폭락하자 투자자들의 절망이 극에 달했다. 코스피지수 세자릿대 붕괴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손절매고 저가매수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장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필명 ‘친절세포’는 증권정보 사이트 팍스넷에 “어찌어찌 주식 경력 10년쯤으로 힘든 장도 많이 겪어봤지만 요즘 같은 장은 그야말로 처음 보는 장이라 대처가 안된다. 패닉 상태, 자포자기, 무대처로 일관하고, 세상이 좋아지기만을 바라며 살고 있다”고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증권사 일선 영업점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굿모닝신한증권 광화문지점 박동명 차장은 “거의 포기상태다. 어제나 오늘이나 거의 매매가 없고, 저가매수도 실종됐다. 큰 소란도 없고, 1,000이 깨질 것 같냐는 문의전화만 종종 온다”고 말했다. 하나대투증권 대치역지점 문경식 부장은 “지난주부터 이어진 패닉으로 고객이 크게 동요하기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미 지난밤 뉴욕 증시가 폭락한 여파로 고객들도 시장의 공포를 감내하는 분위기여서 오히려 환매·매도 문의전화는 더 줄었다”고 전했다. ■ 큰손들, 증시폭락 언제 끝날까… 인내심 한계 큰손 투자자들 역시 지속되는 증시 패닉 국면에 불안해하며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혹시 더 큰 하락국면이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각 증권사 PB(프라이빗 뱅커)들에 따르면, 아직 펀드런 조짐은 없지만 일부 해외 펀드에 대해서는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환매하는 투자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법인들은 현금 확보를 위해 사모펀드 손절매에 적극적이다. 또, 인내력과 자금력이 뛰어난 거액자산가들도 요즘 같은 장세에는 버티기 힘들어 한다는 게 PB들의 전언이다. 일부 해외 펀드에 대해서는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환매하는 경우가 속속 생기고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1,400선만 해도 과도하게 하락했다는 인식 때문에 투자 기회를 잡으려는 큰손 투자자들이 있었으나, 주식시장이 패닉 국면에 빠지자 신규 투자는 보류상태”라고 허탈해했다. 삼성증권의 한 PB 역시 “해외 리츠 펀드에 투자한 한 큰손 고객이 참다 참다 결국 마이너스 70% 수준의 수익률에서 환매했다”며 “PB들이 좀 더 두고 참아보라고 설득하면 몰래 환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인컨파워인덱스 등 원금도 거의 건지지 못하거나 환매가 중단된 펀드도 속속 나오면서 투자원금의 절반이라도 건지려는 고객들이 생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이탈한 자금은 단기자금 운영시장인 MMF(머니마켓펀드)와 은행예금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보인다. SK증권에 따르면,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가 발생했던 9월 15일 이후 MMF 잔고는 15조1927억 원이 증가, 펀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44%까지 확대됐다. 실세총예금 역시 10월 한 달(10일 기준)에만 4조7653억 원이 증가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전까지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지속되면서 MMF나 예금 등으로 자금이 이동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비록 큰손들의 환매 움직임이 제한적이지만, 환매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단기간에 폭삭 주저앉은 수익률에 체념하고 있는 투자자의 경우, 지수가 반등해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면 환매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환매대기 물량인 셈이다. 한덕수 삼성증권 삼성타운 마스터PB는 “지수가 1,400~1,500선까지 오르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강한 환매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세계 증시 ‘팔자’ 대세… 공황 지속될 듯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증권시장은 국내보다 더 열악하다. 10월 22일(현지시간) 세계 증시는 또다시 금융 공포 속에 ‘팔자’ 움직임이 대세를 이루며 뉴욕 월가의 다우존스지수는 글로벌 경기 침체의 우려로 5.6%를 잃었다. 11월에 워싱턴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뉴스도 미국과 아시아 증시의 팔자세를 꺾진 못했다. 글로벌 증시의 하락은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추가적인 경기지표의 하락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유럽 시장은 4~5% 뒷걸음질쳤으며, 뉴욕 시장의 다우존스는 509.83p 떨어진 8523.83으로 문을 닫았다. 미국 백악관은 G20(주요 20개국) 국가들이 11월 15일 워싱턴에 모여 지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다나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요 20개국 정상들을 미국으로 초대해 금융시장과 글로벌 경제에 대해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세계 정상들이 최근의 금융위기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공조 체제에 합의하고, 금융 부문의 규제개혁과 제도적 보완책을 도출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백악관의 이 같은 발표는 미국의 최고 동맹국인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영국이 경기 침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한 이후에 나오게 됐다. 브라운 총리는 영국 의회에서 “영국의 은행 시스템 위기에 대한 대응 조치가 취해졌으며, 이제 글로벌 금융 침체에 대한 대책을 시행해야 할 차례다”라며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세계 각국과 영국이 동시에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언급했다. 영국은 지난 2분기에 경제성장률 제로(Zero)를 기록했으며, 3분기 성장률 역시 부정적 전망이 우세한 형편이다. 여기에 스위스 연방은행(UBS)도 “미국의 경제 침체와 동시에 유럽 각국도 침체 국면에 들어서는 것은 필연적인이다”라며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는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5년 만에 최저수준인 1.6139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유로화 역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날 유로화는 금리인하 기대심리로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으로 1.30달러를 밑돌았다. 신흥경제 국가들에도 먹구름이 뒤덮이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폐인 랜드(Rand)의 달러에 대한 가치는 6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추락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증권거래소의 ‘보베스파’ 지수는 10% 이상 폭락한 뒤 주식 거래가 중단됐으며, 또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인 아르헨티나도 주가가 10% 이상 주저앉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민간 연금기관의 국유화를 공식 선언한 가운데, 10곳의 민간 연금기관 임원들에 대한 경찰수사가 단행되면서, 주요 주가지수는 10.1% 폭락했다. ■ 글로벌 경기 냉각으로 국제유가 추가하락 국제 유가는 글로벌 경제 냉각에 따른 수요 감소의 영향으로 추가로 떨어졌다.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12월 인도분은 5.43달러가 내려간 1배럴당 66.75달러에 거래됐다. 런던 북해산 브렌트유 12월 인도분도 5.20달러 떨어진 64.52달러에서 가격이 형성됐다. 세계 증시는 이 같은 글로벌 경기의 침체로 동반 하락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계 2위 경제국인 일본의 닛케이평균지수는 유럽 주요 시장에서의 기업실적 악화로 6.79% 떨어졌다. 영국의 FTSE 100 지수는 4.46% 하락한 4040.89p를 나타냈고, 프랑스 CAC 40 지수도 5.10% 떨어진 3298.18을 가리켰다. 한편,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 금융 당국은 무너진 금융체제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해 금융구제법안이라는 고육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절반 이상은 수천억 달러의 금융구제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부시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