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첫 국정감사 최대의 화두는 ‘쌀 직불금 부당수령’ 논란이었다. 10월 6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보건복지가족부 국정감사에서 폭로됐던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쌀직불금 부정수령 의혹 문제로 불거진 쌀 직불금 파문이 감사결과 은폐 및 참여정부 개입 의혹으로 확산되면서 하반기 정국 최대 이슈로 자리 잡았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선진창조모임 등 여야 교섭단체들은 10월 22일 논란 끝에 11월 10일부터 12월5일까지 26일간 ‘쌀 직불금 불법수령’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도 합의하고 대상과 범위를 확정했다. 국정조사에서 그 동안의 직불금 집행실태, 책임소재, 제도적 문제점 등을 철저히 규명하고, 대상과 범위도 참여정부 당시의 감사원 감사보고 경위를 비롯해 올해 초 인수위에 대한 보고 경위 등 전·현 정권의 관련 사항을 전부 망라한다는 것이어서, 국정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실체가 어디까지 파헤쳐질지 정치권은 숨을 죽이고 관망하고 있다. 국정조사의 결과에 따라 MB 정부와 여권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노무현 정권 때 일어난 상황이라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한나라당, 초반에는 국정조사 일축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쌀 직불금 파장 정국을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심정으로 국정조사로 정면돌파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집권 초기에 걸러내지 못한 친노 성향 공무원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정권을 다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차관의 쌀 직불금 수령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정부 여당으로서는 상당히 수세에 몰리는 국면이었다. 10월 6일 복지부 감사에서 민주당 간사인 백원우 의원은 이 차관이 농사를 지을 목적이 없음에도 직불금을 신청했다고 주장했고, 이 차관은 당시 자신의 남편이 실제로 농사를 지을 의지가 있었다고 반박했으나, 이 차관이 내놓은 해명은 여권에서 봐도 변명에 불과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10월 8일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가 “정책이 잘못돼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같이 책임져야 하지만, 개인의 도덕적 비리로 고위 공무원이 스캔들에 휩싸이는 것은 의원들이 막아줄 필요가 없고 막아 줘서는 안 된다”며 “우리 당 의원들도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장관들에 대한 모욕성 질문은 간사들이 나서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막아야 하지만, 개인의 결정적인 도덕성 비리가 드러날 때에는 아무리 여당이지만 감싸줄 수 없다”고 개인 비리에 대한 비호는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힌 데서도 이 같은 기류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여권 내부에서는 이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 가운데 몇 안 되는 측근이라는 점에서 “조용히 덮고 가는 게 좋겠다”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홍 원내대표가 “마녀사냥식 대응은 안 된다”며 정면대응 목소리가 한풀 꺾이는 입장이었으며, 특히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거듭 일축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10월 16일 울주군수 보궐선거 지원유세차 내려와 울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조사는 정부의 조치를 보고 미흡하면 하는 것”이라며 “무슨 일만 터지면 국회가 나서 국정조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부했다. 하지만 쌀 직불금 부당 수령에 대한 공무원들의 기강해이가 도마에 오르면서 이 차관의 사퇴 여부가 물밑으로 잠복하는 등 방향은 일순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감사원이 2006년 한 해 28만 명이 1683억 원에 달하는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내놓았지만, 감사결과는 바로 공개되지 않았고, 농림부는 제도개선 방안을 담은 직불금 개정안을 올해 10월이 돼서야 국회에 제출하는 등 직불금을 둘러싼 의혹은 커져만 가는 상황이라는 자료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에 홍 원내대표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이 대리경작을 하면서 쌀 직불금을 타갔다면 형법상 사기죄다. 이 문제를 다시 검토해 부정하게 받아간 돈은 국고로 환수하고 정도가 심한 부분은 형사처벌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이 차관의 쌀 직불금 부당 신청으로 인해 수세에 몰렸던 현 정국을 노무현 정권의 최대 실정으로 부각시키며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가 의도했던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 부각되기도 전에, 직불금 부당 수령자 명단에 한나라당 현역 의원 2명의 이름이 먼저 나와, 오히려 한나라당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 MB, 국조 통해 ‘친노 고위 공무원’ 물갈이 이 시점에서 이 대통령은 국정조사라는 반전 카드를 꺼내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당이 국정조사를 받아들일 경우 “한나라당도 충분히 개혁적일 수 있다”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 뿐 더러, 이 대통령으로서는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상징적인 단죄, 그리고 정권 초기에 솎아내지 못한 친노 성향의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통해 그 자리에 ‘친이 그룹’을 심어놓겠다는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길들여진 ‘좌파성향’의 고위 공무원들을 물갈이할 마땅한 명분이 없었으나, 쌀 직불금 파동을 기회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이번 직불금 사태를 엄정하게 처리했다는 국민의 평가가 뒤따른다면, 관가에도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고, 그것은 곧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 제고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홍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의 이러한 의중을 꿰뚫고 미리 서너 걸음 앞서 나간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적지 않다. 그 동안 민주당의 국정조사를 일축하면서 소극적이었던 홍 원내대표가 ‘국정조사 수용’으로 방침을 전격 선회한 이후 “직불금 문제는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이고, 적폐 중 적폐”라고 새삼 강조하면서 노 전 대통령까지도 증인으로 불러낼 계획이라고 말하는 등 전례없이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쌀 직불금이라는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이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이 대통령의 의중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내놓는 발언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이나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통해 사의를 표명한 이 차관 문제로 쌀 직불금이 도마 위에 오른 만큼, 이 전 차관을 비롯해 이미 밝혀진 한나라당 김성회·김학용·임동규 의원 등 현 정권 인사들의 직불금 부당 수령 문제를 집중 지적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 노무현 “적법하다면 못 나갈 이유 없다” 또한, 직불금 감사 결과가 이미 인수위 시절에 보고됐는데도 현 정권에서 아직까지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은 이유 등을 추궁하며 현 정권의 책임성도 거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일단은 부정하게 직불금을 수령한 고위 공직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현 정부에도 이런 문제들이 보고가 됐다는데, 지금까지 제도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따질 것”이라며 이 같은 기류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 문제를 고집한다면, 인수위 시절에 보고받았는지 여부와 관련해 이 대통령의 증인 출석도 요구할 수 있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국정조사 증인출석 문제와 관련해 “이번 사안이 내가 나갈 사안인가” 반문하면서도 “국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출석요구를 하면 못 나갈 이유는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10월 22일 봉하마을에서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회가 적법하게 의결해 요구한다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나가는 게 민주주의 기본원리상 당연한 것”이라며 “전직 대통령이 나가지 않아 진실이 안 밝혀질 사안이 있을 수도 있다면 나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중에 이명박 대통령도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측의 한 측근인사는 이 같은 발언을 두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든지 국회가 요구하면 나가는 것이라는 일반론을 피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해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노 전 대통령은 23일 자신의 정치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에 댓글 형태로 올린 ‘정책감사와 감사원의 독립’이란 제목의 글에서 참여정부의 청와대가 지난해 감사원에 쌀 직불금 감사를 요청한 것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감사 요청은 국회도 할 수 있고 일반 시민도 할 수 있는데 대통령은 감사 요청도 할 수 없다는 논리가 말이 되느냐”고 현 정부를 원색적인 어조로 비판해 논란이 확산될 조짐이다. 물론, 청와대로서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일단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식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문제로 지난번 국가기록물 유출 사태로 벌어졌던 신·구 권력간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또한, 쌀 직불금 사태가 노 정권 때 주로 발생한 일이긴 하지만 직접적인 도화선은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봉화 차관으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현 정권의 인사 실패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어, 자칫 이 대통령의 정치적 구상이 ‘일장춘몽’으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난 22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밝힌 정기 여론조사에서 ‘쌀 직불금 파문 이후 이미지가 나빠진 세력이 어디냐’는 질문에 ‘현 정부’라는 응답이 27.7%, 참여정부라는 답변이 25.9%로 각각 나타났으며, 한나라당의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응답이 19.5%, 민주당이라는 응답이 6.1%로 조사 됐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정부 여당이 문제의 책임을 참여정부에 돌리고 있으나 오히려 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응답을 합치면 50%에 육박해 여권의 이미지 손상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저하된 상황에서 여권이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보이지 않고 책임전가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해, 이 같은 국민들의 여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