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호 심원섭⁄ 2008.10.28 17:09:52
대법원이 10월 22일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18대 총선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현역 의원들에 대한 당선 유·무효 사건 39건 가운데 22건(56.4%)에서 판결이 선고돼 법원의 재판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0명의 현역 의원이 1심 또는 1·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으며, 정당별로는 한나라당 의원 2명(구본철·윤두환), 민주당 의원 2명(정국교·김세웅), 친박연대 의원 3명(서청원·양정례·김노식), 창조한국당 의원 1명(이한정), 무소속 2명(김일윤·이무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아직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은 의원 중에서도 선거사무장이나 회계책임자, 후보자의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가 선거와 관련해 징역이나 3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경우에도 해당 의원의 당선이 무효가 된다는 점에서 상당수가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치권 일각에서는 적어도 7~8명 이상은 의원직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년 4월에 실시될 재보선이 자칫 현 정권을 중간평가하는 미니 총선을 방불케 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지난 총선에서 패하여 원내 진입에 실패했거나 아예 불출마해서 야인으로 떠돌고 있는 여야 실세 및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거물급 인사들이 4월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해서 원내 진출은 물론, 차기 대권을 겨냥한 디딤돌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 일부 인사, 극비리에 출마 플랜 가동 이미 정치권에서는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의원의 ‘조기 귀국설’이 나돌고 있는가 하면, 지난해 대선 참패와 18대 총선 패배 등 연거푸 고배를 마셨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미국과 국내를 넘나드는 생활을 끝내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계 복귀설’도 조심스럽게 나돌고 있다. 또한, 지난 7월 한나라당과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던 강재섭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의 ‘출마설’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경남 사천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게 패했던 이방호 전 의원의 출마도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이미 많은 거물급 인사들이 극비리에 재보선 출마 지역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우선,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인사는 이재오 전 의원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인사라고 주변에서 조기 귀국을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지난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9월 7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미국 유학 중인 이 전 의원의 소식과 관련해 “최소 내년 봄까지는 긴 안목으로 세계를 배우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며 자신의 조기 귀국설을 일축한 바 있다. 공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정치대학원 연수생 자격으로 도미했던 이 전 의원은 오는 12일부터 한국학을 연구하는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국 현대정치에 대해 강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동안 강의를 이유로 측근들에게 연내 귀국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바는 있지만,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귀국하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시한을 명시하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공 최고위원은 “이 전 의원은 이번 학기가 끝나면 돌아와 일하자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지만, 본인은 전세계를 다니며 공부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더라”며 “문국현·김재윤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본인은 전혀 자기와 연계해 생각하지 않더라”고 전했다. 공 의원이 이 전 의원의 조기 귀국설을 일축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10월 13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복귀라는 게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당직으로의 복귀, 정부직으로 복귀도 있고 재보선에 나가서 국회의원으로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 전 의원의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복귀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하며 이 전 의원의 조기 귀국을 종용했다. ■ 이재오, 연말 귀국설 대두 이는 내년 재보선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가 일단은 수면 밑으로 잠복한 ‘대운하’ 문제와 관련해 이 전 의원이 남미 쪽으로 돌면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을 끌었다. 더구나 ‘대운하’ 플랜으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게 일격을 당했던 쓰라림을 다시 한 번 새기면서 출마를 결심했다는 후문까지 들리고 있다. 이에 대해 문 대표 측에서는 “마침내 한나라당이 ‘문국현 죽이기’ 속내를 드러냈다”며 “문 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해야 가능한 시나리오를 정부·여당이 실행에 옮겨온 것을 뒤늦게 실토한 것”이라고 성토하고 나섰다. 이 전 의원과 더불어 18대 총선 후보 공천과정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한나라당 공천과정을 주도하다가 ‘강기갑’이라는 ‘농심’(農心)에 일격을 맞고 최대 이변의 희생자가 됐던 이방호 전 사무총장도 절치부심 곁눈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을 이겼던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재판 추이를 지켜보면서 본격적인 재보선 플랜을 가동시킨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7월 한나라당과 민주당 전당대회 이전까지만 해도 정국을 주도했던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와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의 출마설도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물론, 강 전 대표의 경우는 자신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이 내년 4월 재보선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에서 출마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측근에서는 일단 차기를 준비하자면 원내에 진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수도권 출마라도 하자고 종용하고 있으나, 총체적 위기상황에 몰려 있는 여권의 현실을 감안하면 수도권 출마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강 전 대표가 제보선을 통한 원내진출보다는 입각 등 현 정부에서 핵심 중책을 맡아 ‘대권수업’을 받게 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가운데, 연말 개각설과 맞물려 ‘강재섭 총리설’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아직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측근들은 “무조건 출마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손 전 대표 측은 일단 지난 총선에서 출마해 패했던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와 경기지사를 역임했던 프리미엄을 등에 업을 수 있는 수원 장안을 두고 법원의 판결에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다. 이 두 지역구 현역 의원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과 박종희 의원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 전 대표 측은 두 지역에서 재보선이 이뤄진다면 최상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만에 하나라도 두 지역이 안 되더라도 수도권의 다른 지역 출마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손 전 대표의 재보선 출마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대선 참패와 18대 총선 패배로 정치생명의 최대 위기를 맞은 뒤, 권토중래를 꿈꾸며 지난 7월 미국으로 떠났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10월 5일 출범한 당내 진보개혁 블록인 ‘민주연대’의 상임고문격인 지도위원 직함을 걸자 정계 복귀를 위한 징검다리 수순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정 전 의장 측은 “민주연대 측의 요청이 있었고 당이 개혁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동참한 취지였을 뿐”이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으며 출마 얘기를 꺼낸 적은 없다”고 정치적으로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정 전 장관은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연수 중이며, 내년 초쯤 중국 칭화대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져 현재로서는 당장 정치무대에 컴백할 가능성은 적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지만, 재보선이 가시화된다면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 민주, 여권 거물 인사에 대항마 거론 특히, 정 전 장관의 옛 지역구였던 전북 덕진과 전주 완산 지역에서 재보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출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는 섣부른 관측마저 현지 일각에서 나돌고 있다. 이 두 지역구는 현역인 민주당 김세웅 의원과 무소속 이무영 의원이 1심과 2심에서 각각 당선무효형인 벌금 500만 원과 300만 원을 선고 받은 상태라, 이대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경우 내년 4월 재·보선은 기정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 전 장관의 한 핵심 측근은 “정 전 장관이 차기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원내 진출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4월 재·보선은 더 없는 호기”라며 “정 전 장관의 높은 인지도를 감안하면 전주 지역이든, 수도권이든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한편, 지난해 ‘통합의 밀알’을 자임하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근태 전 의장은 ‘민주연대’ 추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특히 민주연대를 통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당 내부를 향해서도 선명성 강화를 주문한다는 구상이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정치활동을 재개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도봉갑 지역위원장을 다시 맡았던 김 전 의장은 자신의 싱크탱크였던 한반도재단도 지난 7월 사무실을 여의도에서 광화문으로 옮기면서 재정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측근들은 만약 서울 종로가 재보선 지역에 포함된다면 출마 가능성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학기에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한국정치론에 대한 강연도 하고 있는 김 전 의장은 자신의 진로에 대한 질문이 있을 때마다 “기다려달라”는 답으로 말을 아끼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심정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측근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여전히 당 안팎에서 차기 대권주자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김 전 의장이 어떤 형태로 정계에 복귀하게 될지와 그 시기는 당내 역학구도와 정치권 상황 등 외부변수에 의해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손학규-정동영-김근태’로 이어지는 ‘재보선 벨트’를 만들어 침체된 당 지지율을 끌어 올리고, 대안야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세 거물을 수도권에 전략공천하는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측면에서 ‘전략공천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재오 전 의원이나, 강재섭 전 대표가 출마할 경우 4월 재보선을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으로 몰고가기 위해서라도 대항마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최고위원의 출마설도 나오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충남 논산·계룡시·금산군에 출마하여 이인제 의원에게 패했으나, 재보선에서는 수도권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안 최고위원은 아직까지는 출마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후원 그룹인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넷심’ 세력들은 안 최고위원이 결심만 하면 언제든지 재보선 출마 플랜을 가동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선거사범에 대하여 전례없이 빠른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법원의 판결대로라면, 내년 4월 재보선은 향후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정치적 이슈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지난 총선에서 실패한 여권의 실세들이나 여야 대권주자, 핵심인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 게임’에사 살아남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