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DJ)은 10월 27일 오전 중국 선양(瀋陽)의 랴오닝(遼寧) 우의빈관에서 열린 제2회 동북아발전포럼에 참석,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를 주제로 한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북핵 6자회담 과정에서 중국이 보여준 중재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6자회담의 성공을 확신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동안 6자회담은 무엇보다 중국의 인내심에 찬 노력과 현명한 리더십의 발휘로 한발 한발 성공의 길을 걸어왔다”며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로 1, 2단계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앞으로 북핵 검증이라는 3단계만 남은 6자회담은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6자회담의 진전을 가져온 주된 이유로 중국의 중재 노력과 함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등 미국의 태도변화를 꼽았지만, 정작 당사국인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아 관계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6자회담의 향후 과제로 동북아의 평화안보체제 구성을 성공시키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리하면 한반도에 확실한 평화가 올 것이고 남북관계도 많이 개선될 뿐 아니라 중국도 안심하고 내정에 전념할 수 있게 됨으로써 동북3성과 한반도의 경제적·문화적·사회적 협력은 크게 진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미 중국 방문 열흘 전인 16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신대 `평화와 공공성 센터 창립식에 참석, `남북관계 발전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 자리에서 “지금 정부는 남북대화를 열지 못해 국제적 흐름에서 소외된 처지에 놓여 있다”면서 “남북대화가 시급히 재개되지 않으면 (한국이) 고립과 손실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6.15 공동선언 인정 및 남북 정상회담 제안 등 5대 결단을 촉구한 바 있다. ■ MB, 남북 정상회담 등 5대 결단 촉구 5대 결단으로는 ▲6.15 남북 공동선언 및 10.4 선언 인정 ▲인도적 쌀 지원의 조속한 재개 ▲개성공단 노동자 숙소 예정대로 건설 ▲금강산 관광 재개 ▲북한에 남북정상회담 제안 등이 제시됐다. 김 전 대통령은 “6.15, 10.4 선언을 인정하지 않고는 남북관계의 정상적 추진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정상회담만이 새로운 신뢰 속에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보체제 구현을 위한 성공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해서는 “만시지탄이지만 매우 잘 된 일로 남북관계에도 큰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며 “북한은 제3단계 협상을 통해 의문의 여지없이 핵에 대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완전히 포기해야 하며, 국제사회로 나와 중국·베트남처럼 평화의 대열에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은 “‘퍼주기’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견해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북한으로의 진출은 현 경제난국을 타개할 획기적 방법이기도 한 만큼, 국익 입장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세력 균형만이 우리가 평화와 안전을 누릴 수 있는 길”이라며 “미국만이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의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면서 중국·일본·러시아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지키는 ‘1동맹 3협력 체제’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연설 말미에 “지금 일부에서는 과거로의 역주행이라는 말이 빈번이 나오고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현상”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햇볕정책 재평가 등 교과서 개정 논란에서 비롯된 사회의 보수화 움직임에 강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 김문수, DJ 면담 직후 ‘남북교류협의기구’설치 제안 김 전 대통령은 동북아발전포럼 참석차 중국 선양에 머물고 있는 27일 우연찮게 한중일 우호교류협의차 선양을 방문한 김문수 경기지사를 만나 대북정책에 대한 ‘과외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날 30여분 간 계속된 면담에서 김 전 대통령은 “통일은 북한의 경제적 자립과 점진적인 개방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현 상황에서 북한과의 흡수 통일은 정신적인 갈등 등 어려운 점이 있다”며 “북한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도록 지원하고 북한의 점진적인 개방을 통해 주민들이 현실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또 “올 여름 북한에 말라리아 모기 방제용 약품과 차량을 제공했고, 최근 평양에서 열린 청소년 축구대회에 예산을 지원했다”고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소개한 뒤 “얼마 전에는 도에 남는 쌀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북한에서 받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거절해 당황했지만 이러한 사업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김 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이어 김 지사는 “부시 미 대통령 방한 당시 기공한 도라산 평화공원이 얼마 전에 문을 열었는데, 내년 봄 날씨 좋을 때 한번 찾아 달라”고 김 전 대통령을 초청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바쁜 사람이 나를 찾아주니 감사하다”면서 “경기도가 (북한과의 관계에서) 중요한데 성공적으로 일을 잘 해 나가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북한 체제를 지지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평화를 해칠 힘이 있는 만큼 국제사회에 협력하도록 잘 이끌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북한은 결국은 따라오니 인내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내가 (대통령직에) 있을 때도 북한은 약속을 잘 안 지켰는데, 교만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열등감을 갖고 있어 그랬던 것 같다”며 “북한을 방문해 얘기해보니 자기네를 알아주고, 대화도 하고,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고 싶다는 의미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에 자꾸 퍼주기만 한다는데, 서독은 동독에 매년 32억 달러를 지원한 반면 우리는 많아 봐야 5억 달러”라며 “오히려 서독이 많이 주면 줄수록 동독이 빨리 무너져 갔다. 지원 문제는 인간심리 등 여러 요소를 잘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29일 김문수 경기지사는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남북교류협의기구’ 설치를 전격 제안해 관심을 끌었다. 김 경기지사는 “정부 당국 간 채널을 대신해 앞으로 남북한의 교류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내 지자체가 중심이 돼 남북 간 대화와 협력·교류를 복원하는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남북교류협의기구 구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남북교류협의기구 설치 제안은 국회의원 재임시절 각 방송사 토론회에 나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일방적 퍼주기 식’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여 왔던 김 지사가 김 전 대통령과 대북정책 면담을 가진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북한 접경도시 단둥(丹東)시 방문 김 전 대통령은 팔순 고령에도 불구하고 중국 선양을 방문한 다음날인 28일 북한 신의주의 접경도시인 단둥(丹東)시를 방문해 빡빡한 일정을 무리없이 소화하는 등 건강을 과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인 이희호 여사, 3남 홍걸 씨, 수행비서들과 함께 단둥시 영빈관에 도착, 자오롄성(趙連生) 단둥시장 등 단둥시 지도자들과 면담을 하고 오찬을 함께 한 뒤 단둥시 일대를 둘러봤다. 김 전 대통령은 자오 시장과의 면담에서 환대에 사의를 표시하고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한국에서 출발한 기차가 북한과 단둥을 거쳐 중국 대륙과 더 나아가서는 중앙아시아·동유럽·서유럽의 파리와 런던까지 연결되는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압록강 하구지역에 위치한 랑터우(浪頭)항의 옛 영국세관 건물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북한 섬 유초도와 다시 섬 건너편에 있는 신의주를 감회어린 표정으로 지켜봤으며, 왕 부시장이 “이제 6자회담이 잘 진행되면 앞으로 김 전 대통령께서 압록강 철교를 통해 북한 땅에 올라서서 보실 수 있다”며 덕담을 던지자, 김 전 대통령은 환하게 웃음을 짓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께 단둥을 출발하기 전 왕 부시장과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사실은 북한을 좀 보기 위해서 왔는데 단둥을 보니까 여러 가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았다. 계획을 보니까 단둥이 엄청난 발전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북한과 잘 협력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북한을 잘 도와서 단둥만 발전하지 말고 북한도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견학을 온 학생처럼 들뜬 표정이었으며, 얼굴에서 피로한 기색은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 수행원은 전하면서 “평소 오시고 싶었던 곳을 오셔서 그런지 여독을 전혀 느끼시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23일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경제부총리 도입과 현 경제 관료들의 교체 필요성을 지적하는 한편, 이 대통령의 애매한 대북정책으로 북미관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만 이미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동교동 자택에서 진행된 MBC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방송 5주년 기념 특별대담에서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믿음”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관계 기능을 조정할 부총리 제도를 다시 도입해야 하고, 현재 국민들이 불신하는 그런 경제 관료들을 갈아야 한다”고 밝혀, 민주당이 그 동안 주장해 온 경제부총리 제도의 부활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질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대통령은 현재 위기에 놓인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국민의 신뢰”라며 “금 모으기가 우리가 생각한 이상으로 세계에 감동을 줘 세계가 도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당시) 37억 달러밖에 없던 국고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넘길 때 1400억 달러, 노 전 대통령이 다시 이명박 대통령한테 넘길 때 2600억 달러로, 이렇게 둘이 1300억 달러씩 벌어서 넘겨줬다”며 “요새 외환위기가 오는데 정부가 200억, 300억 달러 마음대로 쓰는 것은 우리가 다 벌어주고 국민이 도와준 것”이라고 언급,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 박근혜에게 대북정책 조언 아끼지 않아 김 전 대통령은 또 “지금 북미관계는 진전하고 있는데 우리만 따 돌림을 당할, 이미 당하고 있는 면도 있다”며 “최근 풍선으로 삐라를 돌린 것이 직접적인 자극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6.15와 10.4(선언)를 지키면 지키겠다든지, 안 지키면 안 지키겠다든지 얘기를 해야지, 애매하게 이랬다저랬다 하는 식의 인상을 주는 것이 지금의 사태를 하나도 발전 못 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6.15와 10.4를 인정하는 것, ▲인도적 입장에서 쌀을 빨리 주는 것, ▲개성공단에 노동자 숙소를 지어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것,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데 성의를 표시하고 나서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김 위원장은 지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열망하고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김 위원장에게 유고가 생긴다면 북한사태는 예측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처럼 국내외를 넘나들며 대북정책 ‘훈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살아생전에,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대항하여 자신이 주장했던 ‘3단계 통일론’의 완결편을 열망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박정희 정권은 김 전 대통령이 ‘3단계 통일론’을 주장하자 선거가 끝난 뒤 “용공이적 혐의가 심하다”며 3년 간에 걸친 옥살이를 시키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것을 시작으로 전두환 정권까지 근 30년 간의 핍박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은 것은 물론 수차례의 투옥과 해외망명 생활로 점철된 정치인생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표가 어느 날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 앞서 배포한 연설문에서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 ‘3단계 평화통일론’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3단계 통일론’과는 다른 내용인 ▲북핵 완전 제거 및 군사적 대립구조 해소를 통한 평화정착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을 통한 경제통일 ▲정치·영토적 큰 통일로서의 정치통일을 3단계 통일론의 단계별 핵심내용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박 전 대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면담을 가져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전에 박 전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조언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온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 전 대통령이 굉장히 답답해하는 것 같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면 닦아 놓은 통일로 가는 길목에 크나큰 장애물이 가로놓여 대북정책이 자꾸만 꼬여만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국민들의 바람대로 통일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이 같은 장애물을 김 전 대통령이 어느 정도 치울 수 있는지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