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화 전 복지부 차관의 부당 수령 의혹에서 시작된 쌀 직불금 부정 수령과 관련한 국정조사가 여야 간의 후속 협상 타결로 11월 10일부터 12월 5일까지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이번 국조가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쌀 직불금 국조 자체가 금융시장 불안과 관련한 ‘정부 보증동의안’ 국회 처리와 함께 이뤄진 ‘일괄 타결’의 산물이라는 정치적 배경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여야 간 힘겨루기는 국조 기간 내내 계속될 전망이다. 쌀 직불금 파문이 이 전 차관 문제에서 비롯됐으나 ▲참여정부 시절 감사원의 감사 실시 ▲청와대 보고 경위와 비공개 지시 여부 ▲부정 수급 의혹 대상자 자료 폐기 ▲전·현직 고위공직자 부정 수령 등으로 쟁점이 확산되면서 국조의 대상과 범위도 광범위하게 펼쳐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 한나라당, 노무현 증인 싸고 논란 하지만 통상 국정조사의 경우 조사 대상 기관과 증인 채택 여부가 핵심이기 마련인데, 이번 여야 합의에서는 증인 문제를 특위로 넘겼기 때문에, 특위 구성 후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간에 엄창 난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제기된 쟁점에 대한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접근과 구체적인 책임 규명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전 정권 은폐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을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현 정권의 무사안일한 대응이 직불금 사태의 본질인 만큼 증인 채택 요구는 전 정권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며 절대불가 방침을 내세우면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현재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감사원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어떻게 조치를 취했느냐에 집중이 돼 있는 만큼, 이 문제는 특위에서 자연스럽게 검토되리라 본다”며 “노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채택되면 나도 특위에 들어갈 용의가 있다”고 말해 노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어디까지나 정략적이고 정치공세가 아닌가. 바르지 않은 태도”라며 “충분히 납득할 만한 근거나 정황이 없는 상태에서 (국조의 본질을) 변질시키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0월 17일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하기 한달 전에 당시 감사원 사무총장으로부터 감사 결과를 사전 보고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감사원 이상욱 감사관은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해 6월 20일 대통령 주재 관계부처 장관회의에 참석해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며 “오전에 다른 짧은 내용의 보고가 하나 있었지만 직불금 문제가 주된 보고 내용이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비공개하기로 의결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개입 의혹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은 감사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개선 지시를 분명히 내렸다며, 인수위 시절에 관련 사항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로 역공세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10월 23일 자신이 개설한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글을 올려, 작년 3월 청와대가 감사원에 직불금 감사를 요청한 것이 외압이라는 비판에 대해 “국회와 일반시민도 할 수 있는데 대통령은 감사요청도 할 수 없다는 논리가 말이 되느냐”고 반박하면서 정면 대응에 나섰다. ■ ‘이명박 님’, 실수인가 고의인가 이어 25일에는 이 홈페이지에 무려 7개의 글을 올려 “직불금 문제를 은폐할 일을 보고받지도 않았고 은폐한 일도 없다”며 “만일 당시에 이것을 공개했다면 한나라당은 선거개입이라고 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박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증인 채택 움직임에 대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니 오라고 하면 가야겠지요”라며 못나갈 이유도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도 “바보 같은 일은 그만하자”고 정치공세 중단을 요구했다. 그 동안 현실정치 불개입 원칙을 정했던 노 전 대통령이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은, 한나라당의 의혹제기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과, 자신이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데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오는 상황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직불금 문제가 터진 후 은폐 및 외압 의혹이 불거지자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해명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측에서도 홍 원내대표 등 일부 의원들이 강력하게 노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을 추진하고 있으나, ‘쌀직불금특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송광호 의원을 비롯한 허태열·원희룡 최고위원 등 일부 고위 당직자들은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이 반대하는 명분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차원이라고 하지만, 속내는 노 전 대통령의 ‘입김’에 휘둘릴 염려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민주당 역시 노 전 대통령의 해명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는 입장이지만, 당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정국 중심에 서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직불금 논란에 직접 개입하면서 한나라당과 대결하는 구도를 형성할 경우 여권 인사들의 불법수령 실태 파악을 통해 ‘강부자’ 정권의 비도덕성을 부각시킨다는 목표는 뒷전으로 밀린 채, 자칫 참여정부의 책임론이 국정조사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편, 10월 29일 노 전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자신이 직접 수확한 ‘봉하오리쌀’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수인지 고의인지 모르는 해프닝이 벌어져 청와대 측을 당황케 한 사건이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친환경 재배법인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첫 수확물 중 3kg들이 ‘오리쌀’ 한 포대를 청와대로 보냈으나, 겉봉의 ‘보내는 사람’ 란에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권양숙’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받는 사람’ 란에는 이 대통령의 현직 직함 없이 ’이명박 님‘이라고만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 김경수 비서관은 “인터넷으로 주문 발송하는 과정에서 택배사에 ‘받는 사람’ 명단을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비서진의 실무적 착오가 있었다”고 설명했으나, 청와대에서는 떨뜨럼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을 비롯한 국정조사가 어떤 실리적인 결론을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