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전통 제조업을 기반으로 했던 1929년의 미국 대공황 때와 완전히 다르다. 이제 ‘새 안경’을 쓰고 세계를 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장담하긴 어렵지만 향후 1~2년 정도면 완화되리라고 기대한다.” 11월 27일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와 중앙일보, 비엠디가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공동주최한 ‘이노비즈 글로벌 포럼 2008’에 초청강연자로 나온 미국의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현 국제금융위기 상황을 이같이 지적했다. 이어 토플러 박사는 “1929년 대공황과 1980∼1990년대 불황의 경험에서 오늘날 금융위기의 해법을 찾아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언론과 정치권, 경제학자들은 과거에 비춰 얘기할 뿐 시대의 근본적 변화를 무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토플러 박사는 ▲금융산업의 비대화 ▲지식으로 대변되는 무형자산과 무형산업의 확대 ▲변화의 가속화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한 전 세계의 동시화 등을 새로운 시대의 근본적 변화로 꼽았다. 토플러 박사는 “이번 경제위기로 과거의 전통적 세계는 종결된 셈”이라며, “경제를 ‘희소자원의 배분’으로 보는 시각은 한계가 있으며 무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무형자산과 유형자산이 맺고 있는 연관관계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플러 박사는 “혁신을 주창해도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적 기반 속에서 창의적인 제안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토플러 박사는 강연이 끝난 뒤 취재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1929년 대공황 당시에는 문제 해결에만 십수 년이 걸렸지만, 이번 국제금융위기가 해소되기까지는 1∼2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그 근거를 묻는 질문에 “언제 위기가 마무리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변화의 속도가 신속해진 만큼 위기도 빨리 움직일 것”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앨빈 토플러 박사의 강연 내용을 요약한 전문이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그 범위와 강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지금의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거시경제적인 위기라고 볼 수 있으며, 이전의 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 위기를 이해하려면 일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모두를 바꿔야 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지금의 위기를 1930년대의 대공황과 비교하지만, 나는 그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과거로 회귀하여 이 위기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으로만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나는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본다. 오늘의 금융위기는 1920년대, 심지어 80년, 90년대의 불황과도 다르다. 따라서, 그때의 해답은 결코 오늘의 해답이 될 수 없다. 특히, 금융산업은 오늘날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분야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있다. 더욱이, 금융은 다른 요소와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역학관계, 경제·사회 시스템을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 현 금융위기 이해하려면 혁신적 사고 필요 우리가 산업지표로 빈번하게 활용하는 GNP나 GDP는 사실 정확한 자료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상품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공황 때는 만질 수 있는 생산품, 즉 유형의 제품을 주로 생산하였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제조업과 1차산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1956년을 맞으며 미국의 산업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미국에서는 화이트칼라가 블루칼라를 넘어섰다. 즉, 제3의 변화의 물결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만 년 전에 농업혁명이 일어났고, 약 300년 전에 산업혁명이 일어났으며, 오늘날 지식혁명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가 도래하고 있는데, 이는 초기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무형자산의 확대가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경제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경제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미국의 언론·정치·경제 등 각계의 분석을 살펴보면, 너무나 과거에 비추어 이야기할 뿐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 재해와 같이 우리는 경제 시스템 전반에서 카트리나를 맞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제도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취하는 조치는 근본적 변화를 무시하고 있다. 오늘날 선진국의 경제구조를 보면, 금융산업이 비대해졌을 뿐 아니라 무형의 자산구조 역시 비대해짐으로써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즉, 경제적으로 보면 지식정보를 대상으로 하는 무형의 자산과 산업이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안 조치들을 보면, 이러한 지식경제가 무형·유형의 자산과 갖고 있는 연관관계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무형자산의 증대와 더불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화와 복잡한 네트워크 망의 발전이다. 과거에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이렇게 조밀하지 않았고. 이와 같은 현상들이 없었다. 세계화와 복합화(complexity)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제품도 복잡해지고 있으며, 그 과정도 복잡해지고 있다. 오늘의 세상은 더 복잡한 경제체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의 속도는 어떠한가?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가속화된 세상이다. 오늘날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모기지 상품을 활용하여 즉각적으로 다른 파생상품을 만들고, 이것이 국경을 초월하여 유럽·아시아 등 세계경제로 급속도로 전해져 또 다른 상품의 파생이 낳은 결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상품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떻게 적용되어 생산되었는지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빠른 속도로 생산,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즉, 고도의 기술을 가진 고난이도의 기술적 변화가 산업 전반에서 이루어지고,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우리가 적응해야 할 삶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것이 싱크로나이즈(동시화)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경제는 점점 지식기반 경제의 측면이 확대되고. 이를 고려해야 지금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이러한 위기를 과거의 산업경제 사고방식으로 덮으려 하면 더더욱 위기를 증대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도되는 기사를 보면, 복잡하고 가속화되어가는 경제위기 현상을 과거의 느린 규제방식과 제도로 대처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신(新)경제의 현실에 제대로 눈뜨지 못한 것이다. ■ 전통 경제와 구별되는 지식기반 경제의 특징 이 신경제라는 것은 새로운 관계와 대응이 요구되지만, 대부분 이를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IT, 제3의 물결의 주요 기술이 경제와 접목하여 나타난 현상에서 월가의 문제가 발생하였지만, 이러한 변화의 충격을 많은 전문가들이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제3의 물결의 경제는 경제 그 자체뿐 아니라 건강·에너지·사회구조 등 2차적인 분야의 기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우리 삶의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는 산업혁명에 전제되는 가정들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한다. 경제학자들은 희소자원의 배분이 곧 경제라 불러왔고, 경제 교과서는 이를 설명하는 과학이라고 불려왔다. 그러나 지식은 결코 희소자원이 아니다. 무한한 것이다. 지식은 모두가 무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지식은 무형이므로 소모되는 자원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원을 분류하자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 무형자산을 간과하고 있다. 이 무형자원이 늘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식기반 경제는 이러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경제와 구별된다. 비록 만질 수는 없지만 조작 이용이 가능하며, 단순하지 않고 비선형적이다. 예를 들어, 야후도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한 지식기반의 기업이다. 지식산업은 또 관계형 산업이다. 지식은 다른 산업과 연계를 지어야만 그 유용성이 생겨난다.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경제를 바꿀 수 있다. 지식이 다른 대상과 접목되면 더 많은 정보가 나오게 되며,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지식은 즉각적으로 전달되며, 심지어 우리는 지식을 추상화하고 보관할 수 있다. 지식은 표면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암묵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지식의 특성을 경제와 접목시켜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산업구조의 유형자산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번 위기로 지식을 경시한 과거의 전통적 세계는 종말을 맞았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가 합쳐지면 더욱 심층적인 변화가 창출된다. 경제위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정치·사회 등 다른 분야로 전이된다. 때문에 우리는 변해야 하고 창조적 사고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제 혁신을 이루는 경제는 보다 앞서 나갈 것이고, 이를 이루지 못하는 경제는 낙오할 것이다. 모든 국가의 정부들이 ‘혁신’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산업시대의 관료들과 공무원들은 여전히 지배적 위치에서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즉, 이들은 겉으로는 혁신을 주창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를 원하지 않고 반대하는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보통의 수단으로는 어렵다.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위험과 그에 대한 보상 시스템을 강조할 수 있다. 혁신적 기업이나 도시·국가를 만들기 위해 위험의 감수와 이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혁신적 시도에는 언제나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저항이 존재한다. 혁신적이지 못한 기업을 생각해보자. 부하직원이 창의성을 고집할 경우, 상사가 이를 귀찮아하고 심지어 해고까지 하는 일도 생긴다. 그러나, 상사가 이를 좋은 아이디어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과거 소비에트 공산국가에서는 이러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수용하려 하지 않고 보상도 뒤따르지 않았으므로 어느 누구도 혁신적 사고를 하려 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비교해보자. 창고에서 젊은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것들을 발명해냈고 이들은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었다. 즉, 혁신을 동기화시키는 나라가 있고, 억압하는 나라가 있다. ■ “어떤 혁신도 실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는 이러한 보상을 가능케 하는 문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창업에 실패해도 다시 돌아와 도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어떤 혁신도 실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실패할 경우 그 손실을 줄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또 한 가지는 혁신에 대한 정부의 태도이다. 미국의 경우, 혁신을 지원하려는 구체적 수단인 세제를 통해 이를 자극한다. 혁신의 주체에 대해 좀 더 언급하자면 비정부기구들을 들 수 있다. 지금 세계에는 엄청난 수의 비정부기구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NGO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1970년대 수천여 개에 불과했던 이들이 오늘날 수백만 개에 달하고 있으며, 점점 빠른 속도로 생성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문제들을 공론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 같은 경우 이들을 육성 활용할 때 전 세계로부터 창의성있는 인재들을 유인해서 키울 수 있으리라고 본다. 결국 사회구조·사회관계가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과거에 땅을 파고 살던 시대에는 나이가 많은 조부가 가족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졌다. 왜냐 하면 이때에는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조부만이 풍부한 경험을 통해 미래를 알 수 있었으며, 그가 곧 미래학자였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는 아버지가 이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의 파워는 누가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가? 바로 젊은이들이다. 미래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계층인 젊은이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가족 내의 파워 구조도 바뀌고 있다. 동시에, 노령화가 일어나고 있다. 즉, 사회적 구조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의 위기와 그 영향에 대처하는데 우리는 새로운 관점으로 이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위기는 과거에 겪었던 위기를 반추해서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 점을 고려하여 경제학자들은 좀 더 광범위한 시각을 가지고 이를 전례 없는 새로운 사건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져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