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호 성승제⁄ 2008.12.02 14:55:33
두산밥콕은 영국의 최북단인 글래스고에 위치해 있다. 한국에서 날아오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두산이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바로 발전소 분야의 원천기술 때문이다. 두산은 원천기술 확보를 통한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 창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두산이 지난 2005년부터 추진해온 해외 인수합병(M&A) 9건 중 6건이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이다. 두산 측은 “제품 대부분이 산업재인 ISB(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로 바뀌는 상황에서 기술력이 우리의 앞날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수단”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원천기술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천기술이란 기술 발명자가 A에서부터 Z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한 상품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인정받고 통용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원천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해당 사업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면 세계 어느 곳이든 제약 없이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의 중요성은 세계 최대의 석탄화력 발전설비 시장인 유럽과 미국에 원천기술 없이는 진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발전소 보일러뿐 아니라 터빈 발전기 등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 등은 모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원천기술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두산밥콕 역시 미국의 B&W사가 지난 1891년에 설립한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발전 엔지니어링 분야만 100년을 파온 기업이다. 무엇보다 원천기술을 확보하면 대우부터 달라진다. 두산 관계자는 “70년대 말 담수사업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는 기술부재로 입찰제안서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하청에 만족해야 했다”면서 “그러나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한 이후 중동 발주처에서는 제일 먼저 두산을 부를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전통적인 주력 사업이었던 서비스 사업 외에도 신규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독일의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석탄화력 보일러처럼 3억3500만 파운드(약 6700억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들도 포함되어 있다. 미쓰이밥콕 시절에는 위험을 우려해 대형 신규 프로젝트에는 아예 입찰조차 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이처럼 수주가 급증하고 사업이 확대됨에 따라 2006년 인수 당시 약 4700여 명이었던 인력 규모도 9월 말 현재 약 54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2020년까지 유럽·미주 지역의 화력발전소 시장 규모는 최대 40GW,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0조 원 규모”라며 “두산중공업과 두산밥콕은 서로의 장점을 잘 접목시켜 이 가운데 5조 원 가량을 수주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두산중공업, MSF·MED·RO 3대 원천기술 확보 두산중공업은 이와 함께, 전 세계 담수설비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역삼투압방식(RO)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지난해 미국 AES(American Engineering Service Inc.)사 미주지역 수처리 사업 부문을 인수해 두산 하이드로 테크놀로지(Doosan Hydro Technology)사를 설립했다. 이로써 두산중공업은 MSF· MED·RO 등 담수분야 3대 원천기술을 모두 갖추게 됐다. 또, RO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세계 최대의 담수 플랜트인 쇼아이바 담수 플랜트 확장공사에 들어갈 RO 방식의 담수설비를 수주한데 이어, 지난 3월 쿠웨이트 슈웨이크 RO 플랜트를 수주함으로써, RO 방식 담수 플랜트 시장에서도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했다. 아울러, 지난 9월에는 캐나다 회사인 HTC사의 지분 15%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HTC사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현재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세계적으로도 4개 회사에 불과하다. 두산중공업은 이번 계약 체결을 계기로 이 원천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CCS는 2013년부터 강화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 때문에 화력발전소 사업에 필수적인 기술이다. 이 기술이 없으면 당장 미국·유럽 등 선진국의 발전설비 시장에 진출하기가 어려워진다. 두산중공업은 이번 기술 확보로 2013년 이후 연 평균 10억 달러 이상의 신규 수주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지난해 인수한 밥캣 역시 소형 건설장비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한 세계적인 브랜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당시 인수로 단숨에 세계 7위권 건설장비업체로 부상했으며, 기존의 중대형 건설장비와 함께 소형 건설장비 사업을 확보함으로써 이 분야의 완벽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현재 밥캣과의 가시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두산에서 개발한 제품 중 밥캣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미니 휠 굴삭기와 소선회 굴삭기가 밥캣 브랜드를 달고 밥캣 판매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 및 북미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또한, 부품의 공동구매와 소싱 프로세스 통합 등에 따른 원가절감, 핵심기술 공유 및 부품 공동개발, 생산기지 공동구축 및 신흥시장 진출 등의 협력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가시적 성과를 보이며 상호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 글로벌 경쟁력 확보 위해 해외기업 인수합병 활발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보다 앞선 지난해 3월에 중국 휠로더시장 진입을 위해 중국 휠로더 업체인 연대유화기계를 인수했다. 또한, 친환경 제품인 수소 혼합 천연가스 엔진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CTI사를 인수함으로써 북미 CNG 및 HCNG 엔진 시장 진입 기반을 마련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에도 대형 덤프트럭 원천기술을 확보한 노르웨이 목시(Moxy)사를 인수했다 노르웨이 서부 해안인 몰데(Molde)에 위치한 목시는 23~46톤급의 굴절식 덤프트럭과 관련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에 각각 판매법인과 R&D센터, 그리고 유럽 및 북미 지역에 61개에 이르는 딜러망을 확보하고 있다. 목시사의 주력제품인 굴절식 덤프트럭(ADT)은 앞뒤 프레임이 독립되어 차체가 좌우로 굴절하는 덤프트럭으로, 선회반경이 작아 좁은 장소에서 주행성능이 뛰어나고 대용량을 운반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대형광산 개발 및 험지 건설공사에 필수 장비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세계 굴절식 덤프트럭 시장은 원자재가 상승에 따른 광산개발 증가로 최근 3년 간 연평균 18%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 시장규모도 3조4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유럽·미주 등지에 퍼져 있는 300여 개의 기존 딜러망을 활용해 목시 사의 판매망을 전세계로 확대함으로써 2012년 매출을 현재의 5배인 2억5000만 유로(3875억 원)까지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9월에도 독일의 물류장비 전문 업체인 ATL사를 인수하는 등 ISB 사업의 영역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두산이 핵심사업으로 삼고 있는 ISB 사업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매년 8700조 원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며 “지금까지 인수한 업체들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족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M&A·기술개발 등을 추진해 전세계 ISB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