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진입하지 못하고 제3국에 체류 중인 탈북자들이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지난해 동남아로 ‘탈북자 실태조사’를 다녀온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1월 15일 ‘탈북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실상과 대책’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탈북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상이 탈북자들의 증언영상으로 공개됐다. 탈북자들은 스스로 겪은 피해와 탈북자에 대한 재외공관의 미온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이들 중에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딸이 인신매매당하는 현장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일, 악덕 개입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빼앗기는 일 등을 증언했다. 박 의원은 “생존 문제와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국경을 넘은 탈북자들이 인권 사각지대에서 인신매매와 성적유린·금품약탈 등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일부는 2008년 동안 탈북자 2809명이 입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2007년의 2544명보다 10.4% 증가한 규모이다. 지금까지 입국한 전체 탈북자는 1만5057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와 러시아 등지에 유리되어 있는 탈북자는, 정확한 실태파악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줄잡아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로 볼 때, 입국에 성공하는 탈북자는 극소수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발각될 경우 북한으로 강제송환된다. 이 같은 약점이 그들을 인신매매·성매매·매매혼·가정폭력·친권포기 등의 피해자로 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 탈북자 갈수록 ‘女超현상’ 심화 탈북자들 중에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2002년에는 55%로 비등비등하던 여성 비율이 작년에는 78%로 늘어났다고 한다. 박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같은 탈북자 여초현상은 여성이 은신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탈북자들은 주로 농촌이나 벌목현장·벽돌공장·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은신처를 제공받는 방식으로 해외에 체류하기 때문에 남성의 노동력이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산아억제정책과 조선족 여성들의 한국행 활성화는 중국 내 남초현상을 심화시켰고, 탈북 여성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게 되면서 탈북 여성비율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혼인을 매개로 은신처를 확보하는데, 이 과정에서 매매혼·인신매매 등 인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이런 현상은 북한을 탈출하는 비용과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가는 비용을 지불하는 방법과 액수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며 “여기에는 탈북 남성은 노동력 착취만 가능하지만 탈북 여성은 거기에 더해 ‘성적 착취’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탈북자들의 80% 정도는 국경을 넘기 위해 교회 등 종교단체나 NGO 관계자·조선족 등 제3개입자(브로커)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탈북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대사관 또는 관련국 정부 혹은 국제기구(국제 NGO 포함) 관계자와 연락 및 면담을 주선한다. 그리고 국내입국을 위한 준비도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탈북자에게 청구되는데, 300만 원에서 10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변협의 2008년 100명의 탈북자 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300~500만 원 미만이 26%, 500~1,000만 원 미만이 21%, 1,000만 원 이상이 31%였다. ■ 중국에 팔려가도 강제송환 악몽 시달려 실제로 탈북과정을 거쳐 우리나라에 입국했다는 채옥희 씨의 증언은 여성 탈북자들의 인신매매와 노동착취 인권참상을 예시했다. 그는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70~80%가 인신매매 대상이며, 대개 동북3성과 산동성에 팔려 가고, 심지어는 가라오케 클럽을 비롯한 유흥업소에 팔려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 탈북 여성은 인신매매 후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져 담장 안에서만 외출이 허용되었고, 시동생과 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또, 그는 “나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조선족 식당에 일하러 가서 6개월 동안 일했지만, 봉급은커녕 중국 공안에 고발하겠다는 위협과 주인의 성희롱을 받는 등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1980년에 중국과 북한이 국경협약을 맺은 이후로 중국에 들어온 탈북자는 체류기간에 관계없이 무조건 북송 조치된다고 한다. 그는 “중국 정부는 탈북 난민들을 지속적으로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고 있으며, 그 수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발표처럼 한 해 4,8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체류하다 공안에 발각된 탈북자들은 연길·통화·장백 등 국경지대 도시의 임시수용소나 감옥에 모은 뒤 북한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채 씨는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북한으로 아이를 데리고 갈 것인지, 중국에 남겨 놓고 갈 것인지 본인이 결정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탈북 여성과 젖먹이의 ‘생이별’도 벌어진다”고 전했다. 2005년 10월 중국 산둥성의 한국국제학교에 진입한 9명의 탈북자들은 중국 공안기관에 체포돼 9개월 간 교도소에 수감된 뒤 북송되기 위해 북한 신의주 맞은편 단동시 중-북한 국경 철교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한국 정부의 교섭으로 간신히 북송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일부 브로커, 인신매매로 수입 챙겨 문제는 일부 악덕 브로커들이 북한 여성 인신매매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거나 강제결혼 주선, 성추행, 성폭행 등 비인간적 가학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박 의원은 “탈북 여성들의 대부분은 국경을 넘자마자 바로 인신매매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매매혼의 대상이 되는데, 일부 중국인 남성은 이를 약점 삼아 몇년 간 부부생활을 한 뒤 타인에게 팔아넘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 여성들을 노리는 인신매매단도 활개를 치고 있다”며 “중국 농촌의 요청으로 북한에 들어가 여성을 빼내오는 ‘주문형 인신매매’도 성행한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한국 재외공관이 도움을 청하는 탈북자에 대해 부적절하게 대처했다며 이에 대한 진상조사도 요구하기도 했다. 박 의원이 제기한 재외공관의 부적절한 대처는 ▲동남아 A국 검문소에서 붙잡힌 탈북자가 도움을 요청하자 “탈북자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거부한 경우 ▲현지 감옥에 수감된 탈북 청소년의 면회 요청을 거부했다가 일본 민간단체의 항의 기자회견 직후에야 한국행을 허락한 경우 ▲담을 넘어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를 현지 경찰을 동원해 추방한 경우 등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는 “일부 악덕 브로커가 탈북 여성을 인신매매해 보수를 챙기려 한다. 최근 여성 탈북자의 비율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브로커들이 인신매매 등을 통해 보수를 챙기기 용이하므로 남성보다는 여성 탈북자를 선호한다는 유력한 분석이 있다”며 “이는 여성을 이용한 비인간적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제 교수는 악덕 브로커의 범죄 행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인은 NGO 등의 공식 탈북자 지원활동이 사적 브로커에게 위축된데 있다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브로커 활동 영역을 NGO에서 흡수한다면 탈북자 지원의 비용누수 문제와 범죄 및 일탈 행위가 상당 부분 정화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브로커 관련 문제에 대한 공적 차원의 개입은 ‘탈북자수용 반대정책’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며 민간단체를 통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해결할 것을 당부했다. ■ 탈북자 인권문제 국제 공론화 필요 탈북자의 난민지위 인정을 위한 외교가 필요하다는 등 탈북자들의 인권침해 방지 방안도 나왔다. 제 교수는 “대부분의 탈북자문제(브로커 문제 포함)는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강제송환 정책을 견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며 “브로커 문제라는 지역접 차원이 아니라, 인권 문제로서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론화를 통해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하거나,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등 유수한 국제인권기구에서 탈북자 보고서를 발간하고, 중국 등 관련국에 대한 탈북자 정책 변경 요구 등의 방안이 제시됐다. 또,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의 보호 확대추세(위임난민·비난민 혹은 사실상의 난민에게도 보호 제공)에 맞게 관련 국가들은 최근 국제법상의 난민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인도적 지위’(Humanitarian Status)라는 이름 아래 난민에 준하는 지위와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제 교수는 “이 같은 점을 고려하여 국제사회가 중국 정부에 대해 탈북자들에 대해 일정한 절차와 요건을 정하여 인도적 지위를 부여하도록 촉구하는 방안을 강구·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브로커의 폭력·협박·과도한 비용 요구 등의 범죄 행위는 강력하게 처벌하되, 브로커들의 순기능은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탈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태 파악과 관련 공직자·브로커의 처벌 강화 등이 선행되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탈북자들이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채옥희 자유북한운동연합 국제팀장은 “국제법상 탈북자의 난민인정은 정당하다”며 “정부는 동남아시아 등 주변국들이 난민지위를 부여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