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호 박성훈⁄ 2009.02.17 11:35:02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를 앞두고 청와대가 이 대통령의 재산환원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함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쓰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산환원 작업을 주도할 재산환원 추진위원회(가칭)가 서서히 모양을 잡아 가는 모습이다. 2월 12일에는 이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이자 고려대 61학번 동기인 송정호 전 법무장관이 추진위의 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한 재산환원 이행은 보다 힘을 받을 전망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2월 5일 정례 브리핑에서 “재산환원 문제가 취임 1주년 전후로 결론이 나느냐”는 질문에 “그때까지는 충분히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대변인은 “(재산을 환원한다는) 입장 정리는 이미 돼 있다”며 “큰 가닥은 잡혀 있는 것 같고, 어쨌든 그때까지는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이 대통령의 재산환원 계획은 공식발표 형식이 아닌 준비위원장 인사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밝힐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변인은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형식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용히 진행하면서 가는 것이지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거나 이벤트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이 대통령의 재산환원 방식에 대해서는 오는 2월 25일쯤에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원칙’에 따른 재산환원 최근 갈수록 위중해지는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해 25일로 예정된 취임 1주년 행사도 별다른 성대한 이벤트 없이 조촐하게 치를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재산환원도 경제위기 해결의 일환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은 ‘원칙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2월 9일 라디오 방송연설에서 ‘원칙’을 선진일류 국가의 덕목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개인이나 국가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바른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일관성 있게 꾸준히 실천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환원하기로 한 재산도 청와대에서 원칙에 합당한 용도를 확정해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데 있어 ‘경제운용의 원칙’을 피력했다. 그는 “정부출범 이후 제가 ‘친기업’이라는 말을 하니까 이를 ‘친재벌’이나 ‘반노동’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며 “내가 말하는 ‘친기업’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기업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어 스스로를 “‘친기업주의자’이기 이전에 ‘친시장주의자’이고 ‘친고용주의자’”라며 “‘친기업’이 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일자리를 원하는 근로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각종 경제지표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재산환원은 그 이벤트 자체만으로도 위축된 기업들의 투자심리와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기 위한 기념비적 의미를 갖는다. 위축된 경기와 아울러 꽉 닫힌 기부풍토가 개선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 대선 당시 “354억 원 중 집·생활비 빼고 환원”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354억여 원의 재산 중 살 집 한 채를 빼고 모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12월 7일 KBS 선거방송 연설에서 “우리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며 재산 사회환원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등록 당시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총 353억8000만 원 규모다. ▲서울 논현동 토지(11억5000여만 원) ▲논현동 주택(51억2000여만 원) ▲서초동 영포빌딩(118억8000여만 원) ▲서초동 상가(90억4000여만 원) ▲양재동 영일빌딩(68억9000여만 원) 등이다. 그는 당시 “저의 성공신화는 수많은 이웃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대한민국이 열어준 기회가 있어서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며 “이제는 제가 갚을 차례”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정치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재산 헌납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에 발간된 그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도 그런 내용이 언급됐고, 한나라당 내부 검증청문회에서도 재산 헌납 의사를 시사한 바 있다. 당시 여권에서는 ‘매표행위’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기도 했지만, 책임있는 지도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한 의도라는 게 당시 이 대통령 측의 설명이다. ■ 시기는 “머지않아 방안 나올 것” 야당 공세 일축 하지만 이 대통령은 시기에 대해서는 “주위의 좋은 분들과 의논해 결정하겠다”고 말해 정확한 규모와 시기가 밝혀지지 않았다. 재산환원을 밝힌 지 1주년이 되자 야당에서는 약속이 지연되고 있는데 대한 공세가 끊임없이 일었다. 항간에는 이 대통령이 재산환원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청와대가 그 동안 재산환원의 시기와 방법을 놓고 장고해 왔지만, 이행 시점이 더딘 게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5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자신의 재산 사회환원 문제와 관련, “어디에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검토하고 있다”면서 “아마 머지 않아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해 야당의 공세를 일축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4년 동안, 그리고 대통령이 된 지금도 월급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써 왔고, 이미 약속드린 재산 기부도 같은 마음으로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이동관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올해 안에 (재산환원 발표가) 나올 것”이라면서 “현재 추진체 인선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기 때문에 결론이 나는 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자신의 월급 전액을 환경미화원 자녀 장학금 등으로 기부한 바 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부인 김윤옥 여사가 급여를 유사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환원방식이 '키 포인트' 일단 재산환원 추진위의 위원장이 임명된 이상 위원회의 인선 문제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에 의하면, 이 대통령의 재산기부 작업은 현재 정정길 대통령 실장의 주관하에 김백준 총무비서관이 실무를 맡아 추진 방법 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재산헌납이 이루어지면, 중요한 부분은 이로 인한 파급효과보다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방식’이다. 당시 이 대통령 측은 공익재단 설립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직·간접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도 헌납 기자회견 당시 “맨몸으로 시작한 사람이 무엇을 더 욕심을 내겠느냐.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서 잘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방안은 장학재단을 통한 헌납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 노점상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고, 이 방안이 사회환원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는 판단에서이다. 또, 특정인에 대한 기부는 선거법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 재단을 설립해 운영을 맡기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연설에서 ‘가난한 분’ 또는 ‘가난 대물림’을 강조한 만큼 수혜계층은 극빈층 학생들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재산환원 ‘모범’ 대통령 나와야 현직 대통령의 재산환원이 이루어질 경우, 이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태재단’ 등이 퇴임 후 재단형식으로 설립된 바 있지만 귀감을 남기지 못했다. 이들 대통령의 재단은 사회복지보다는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성격이 더 강했다. 1983년 버마 국립묘지 희생자 자녀 교육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해재단은 거대한 정치 비리의 축으로 판명돼 국가재산으로 몰수된 바 있다. 재단은 현재 정부정책을 연구하는 세종연구소로 바뀌었다. 아태평화재단도 재단 살림을 맡아 왔던 이수동 전 상임이사가 이용호 씨로부터 5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전 대통령들의 재단 설립은 결국 취지의 순수성이 없는 정치적 비리의 온상이었다. 하지만, 외국 대통령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퇴임후 자선단체들을 만들어 자선사업에 치중하는 청지기로 나서고 있다. 자선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후 ‘클린턴재단’을 설립해 자선활동을 꾸준히 함으로써 공인으로서 훌륭한 귀감을 보여주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카터센터를 통해 인권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한편, 세계를 누비면서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도 고르바초프재단을 만들어 사회 및 경제 문제에 대한 학술적 접근을 하고 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역시 재단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빈곤·에이즈·문맹을 퇴치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자선 및 구호 등에 힘쓰는 대통령의 모범이 나와야 할 시점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