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9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 5월 26일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해 왔던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한국을 떠난 지 꼭 10개월 만인 3월 26일 귀국길에 올라 정치권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이 자신의 지지 그룹인 ‘재오사랑’ 등을 통해 요란한 환영 행사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떠들썩한 이유는,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1등공신’의 권토중래를 여권의 권력구도와 떼어서 볼 수 없는 징후가 다분히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일단 이삿짐을 꾸린 뒤, 13일부터 열흘 동안 존스홉킨스대 한국인 교수들과 함께 차량 2대를 이용하여 워싱턴을 출발해 4000㎞ 가량을 달려 22일 경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할 예정이며, 횡단 중간에 캔자스와 뉴멕시코에 들러 선진농업 현장도 둘러보는 등 미국 대륙 자동차 횡단을 마친 후에 귀국길에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가을 학기 자신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과 3월 9일 송별회를 가진데 이어, 10일에는 워싱턴 특파원들과 마지막 간담회를 갖는 등 워싱턴 생활을 마감하기 위한 일정도 대부분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전 최고위원은 귀국 후 행보에 대해 “현실정치와 거리를 둔 채 국내정치에 초연하려 한다”면서 “지금까지는 한국 정치에만 매몰돼 있어 눈을 밖으로 돌릴 기회가 없었으나 이젠 50년,100년 후의 미래를 연구·고민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3월 26일 일본 거쳐 귀국 예정 그리고 이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지역구였던 서울 은평을 재보선 출마 및 입각 가능성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다”며 분명하게 선을 그은 뒤 “(한국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겠지만, 내 처지와 관심 영역을 얘기하고 현실정치에서 나를 해방시켜달라고 사정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또한, 이 전최고위원은 “귀국하면 워싱턴에 머물면서 구상한 ‘동북아 평화번영 공동체’ 방안을 좀 더 연구하고 ‘나의 꿈, 조국의 꿈’이라는 책을 집필할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은 3월 12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히면서 “북한 문제를 풀려면 김 위원장을 만나 터놓고 얘기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이 전 최고위원은 “단순히 특사 한명을 보내는 것보다 누가 가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을 설득시킬 수 있는 자신감과 비전·콘텐츠를 가진 인물이 가야 한다”며 “김 위원장 앞에서 기분 나쁜 소리도 하면서 그가 환상을 깨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깨우침을 주는 인물이 가야 한다”고 주장해 사실상 대북 특사를 자청한 발언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한, 이 전 최고위원은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면서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데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이 강하게 나가는 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며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는 유일사상 체제를 휘어잡기 위해 그러는 측면이 있다. 또 이명박 정부를 한 번 떠보겠다는 것이며,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권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시험하겠다는 것이다. 우린 북한의 속셈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까지 긴장을 조성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눈이 다 온 다음에 쓸어야 길이 깨끗해진다. 북한이 원하는 대로만 우리가 가지 않는다는 걸 그들이 깨닫고 나면 대화하려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현 부대변인은 “(이 전 최고위원이) 대통령 대북특사로 활동하고 싶다면 대화 파트너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우선돼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대북특사) 일을 맡기도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한 수 가르치겠다는 오만한 태도로 임하다면 잘 될 턱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김 부대변인은 이 전 최고위원의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특사가 갔지만 이벤트로 그쳤기 때문에 북한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발언을 문제 삼으며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지난 10년 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남북관계를 꼬일대로 꼬이게 만들어 기존 협력사업이 전면 중단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그런데도 이 전 의원은 이런 현실을 모르는 듯이 지난 정부 타령을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 대북특사 의지는 곧 ‘2인자’로의 원대복귀 의미 그리고 김 부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와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계속되는 ‘지난 정부 탓 타령’이 이제는 고질병이 되어버린 것 같아 한심할 뿐”이라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그런데 이 전 의원의 말은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사실 2008년 연말에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실시한 대북특사 적임자에 대한 조사에서 이 전 최고위원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4위를 차지했으나, 박 전 대표, 김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 등 세 사람이 대북특사로 지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전 최고위원이 가장 유력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남북 간의 평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작금의 남북관계의 총체적 단절 국면에서,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변화 의지를 전제하지 않고 대북 특사를 수용할지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에 앞서 ‘대북특사’를 또렷이 자청했다는 점은 적지 않은 정치적 함수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역대 대북특사의 면면을 보면, 김대중 정부 때의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나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국민의 정부 ‘권력의 중핵’이 밀사 혹은 특사로서 남북관계의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으며, 노무현 정부 때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등, 곧 ‘권력의 2인자’ 또는 ‘복심(腹心) 중의 복심’의 정치적 위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에 앞서 공개적으로 밝힌 대북특사 의지는 곧 ‘2인자’로의 원대복귀를 뜻하는 정치적 행보로 보인다. 이 전 최고위원의 이 같은 바람에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최근 두 사람과 관련된 다른 사실이 불거져 정치권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3월 12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2008년 11월 16일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2박3일 간의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 공식 일정을 마친 뒤 이 전 최고위원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1시간 20여 분 얘기를 나눴으며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회동 사실을 확인한 핵심 인사는 “당시 개각설이 나돌고 있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에게 ‘인사 문제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입각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는 것. CBS 노컷뉴스는 이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각) 이 전 최고위원을 극비리에 만난 뒤 브라질로 떠났다고 보도했으나, 청와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펄쩍 뛰며 보도 내용을 공식 부인하면서, 심지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보도가 나간 직후 상파울루로 이동해 수행기자단에게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로도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 지난해 11월 MB와 워싱턴서 80분 간 만나 따라서 당시 국내 언론들은 ‘회동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으며, 심지어 일부 언론은 초판에 기사를 실었다가 이후 판에서 삭제하기도 했으나, 이날 동아일보에서 날짜만 다를 뿐 회동 사실을 확인하는 보도가 나가자, 청와대는 “확인이 안 된다”며 내심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금융위기를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워싱턴을 방문했으나, 이 전 최고위원을 만남으로써 대통령의 워싱턴 활약상 관련 기사가 희석되는 것을 우려해 청와대가 두 사람의 만남을 부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어찌 됐던, 이 대통령은 2008년 11월 16일 오후 3시30분 토머스 도너휴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 접견을 끝으로,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 2박3일 일정을 마무리한 이후, 다음 행선지인 브라질 상파울루로 떠나기까지 4시간여 동안 숙소인 윌러드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6시쯤 수행원과 취재기자들이 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향하고, 윌러드 호텔에 남아 있던 수행원들도 각자 출발 준비에 분주할 때, 이 대통령이 한 참모의 안내를 받아 은밀하게 자신의 방을 찾아온 이 전 최고위원과 만나 1시간 20여 분 얘기를 나눴다. 이와 관련 “당시 주변에서 두 사람의 만남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이 대통령은 결국 이 전 의원과의 만남을 강행했다”는 한 핵심인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전 최고위원이 그 자리에서 “입각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은 귀국 후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견조율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무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더구나 귀국이 임박한 지난달에는 친이계의 또 다른 핵심 인사인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베이징에서 이 전 최고위원과 회동하는 등 권력 핵심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여전한 신임과 함께, 이 전 최고위원의 대북특사 자청 사이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 “대통령 평가 취임 2년 뒤에 했으면” 하지만 대북특사가 권력관리나 정치논리로만 결정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분명한 활동 목표와 왕성한 에너지를 과시한 것만으로도 그의 귀국이 몰고올 정치적 파장은 재보선 출마 등 이재오의 재기 문제쯤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특히, 친박계와의 불화, 친이계 내부의 역학관계 변화 등의 문제 역시 2인자의 정계 복귀에 따른 적지 않은 ‘부수효과’일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편, 이 전 최고위원은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친박계와 친이계의 화학적 결합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국가 발전의 방향이나 개혁의 문제를 놓고 노선 및 이론 투쟁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며 “그러나 사람을 중심으로 계파가 갈라지고, 친아무개·반아무개 계가 충돌하는 건 봉건적인 행태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세계 지도를 들고 가서 NCPP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NCPP는 남한이 북한을 보듬고 중국·러시아 등과 협력해 유럽까지 다가가는 구상으로, 한민족의 경제·문화적 영토를 넓히는 구상이다. 부산-서울-평양-나진-시베리아-파리-런던, 부산-서울-평양-신의주--베이징-시안-카자흐스탄-이스탄불-마드리드, 부산-서울-평양-베이징-라오스-베트남-인도-중동-아프리카-모로코 등을 잇는 3개의 길을 국가 간 협력을 통해 개척하자는 것”이라며 “당장 현실화할 순 없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논의하고 협력하면 우리의 경제와 문화가 뻗어나갈 좋은 트랙이 될 것이다. 이런 길을 열지 못하면 우린 북으론 북한과 중국, 남으론 일본에 막혀 옹색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요즘의 한국 정치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대통령이 나라를 살리려고 하지 망가뜨리려고 하겠느냐는 말을 하고 싶다”며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만큼 한동안 참고 기다려 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여야가 앞으로 1년 동안 무(無)정쟁을 선언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모으면 좋겠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취임 2년 뒤에 하면 어떨까 싶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 감회’에 대한 질문에 이 전 최고위원은 “미국에 와서 한국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됐고,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됐다”며 “한국에선 야당 생활을 10년이나 했기 때문에 정권을 잡을 생각만 했고, 당직을 놓고 경선할 때엔 이길 생각만 했다. 그런 내가 국가 간의 글로벌 경쟁 시대에 한국이 어떤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덕분에 좋은 경험을 쌓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