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는 3월 3일 2월국회를 마감하고, ‘2차 입법전쟁’으로 흐트러진 전열 정비와 함께 오는 4월 29일 전주 덕진·완산갑, 인천 부평을, 경북 경주, 울산 북구 등 5곳에서 치러질 재보선 체제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기싸움에 돌입했다. 이번 재보선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선거로서, 이제 갓 1년을 넘긴 이명박 정부의 중간 평가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의 개혁입법과 경제정책의 시험대라 할 만하고, 향후 국정의 향방을 가늠할 내년도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각 당은 대부분 공천심사위원회를 꾸려 심사 기간과 절차·기준 등을 이미 정했거나 마련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한나라당으로서는 재보선을 이명박 정부 성공의 도약대로 삼을 태세고, 민주당은 ‘정부 여당 무능론’ ‘거여(巨與) 심판론’을 내세워 회생을 벼르는 등 사활을 걸고 있다. 뒤집어 얘기하면, 한나라당이 패배할 경우 개혁입법 추진과 경제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린다. 책임 소재를 놓고 계파 갈등이 심화될 수도 있다. 반면, 민주당이 패배할 경우에는 국정 주도권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셈이고, 지도부 책임론과 같은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양당 모두 절박감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거물급 정치인들의 생환 내지 귀환 여부도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원외인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출마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박 대표는 11일부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면서 4.29 재·보선 출마 여부와 4월 임시국회 전략 등을 놓고 장고에 돌입해 이 기간 동안 고민한 뒤 조만간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 박희태 대표, 4월이냐 10월이냐 고민 중 원외인 박희태 대표는 당초 4월 재·보선을 통해 원내로 진입할 계획을 세웠으나, 내심 겨냥했던 경남 양산의 판결이 완료되지 않아 4월 재보선에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4월 재선거가 실시될 다른 지역 중에서는 안정적인 당선 지역이 없어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4월 재·보선이 확정된 5곳 가운데 민주당의 텃밭인 전주 2곳(전주 완산갑·덕진)을 제외하면, 박 대표가 출마할 수 있는 지역은 인천 부평을과 경북 경주, 울산 북구 등이 남지만, 경북 경주 재선거는 이미 친이계의 핵심인 정종복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진 터라, 박 대표가 출마 가능한 지역은 사실상 인천 부평을과 울산 북구 2곳이다. 그러나 울산 북구는 기존의 조직에서 오랜기간 공을 들여 놓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인천 부평을 또한 한나라당 지지세가 뚜렷하지 않아 변수가 많아서 고민으로 등장하고 있다. 더구나 만약 출마했다가 낙선할 경우 개인은 물론 여당에 미치는 타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번 재·보선이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가 될 수 있어 박 대표도 선뜻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당내에서도 박 대표가 인천 부평을에 출마해 승리를 견인해야 한다는 의견과, 패배할 경우 여권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혼재해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천 부평을에 GM대우차 문제 등이 산적해 있어 여당 거물에 대한 지지율이 높을 수 있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한다는 것”이라며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도 공식적으로 박 대표의 출마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비공식적으로 만류하는 분위기”라며 “박 대표도 위험이 큰데다 여기저기서 만류하니까 고민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경률 사무총장은 10일 S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인천 부평을 재·보선에 대해 “부평은 한나라당이 더 우세한 지역”이라고 주장하며 “필요하다면 당원들의 뜻을 모아 대표에게 출마를 건의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며, 당원들의 뜻이 모아지면 대표가 힘들더라도 출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안경률 “당원 뜻 모아 꼭 나가야 한다” 특히, 안 사무총장은 “대표가 꼭 나가야 될 것인가, 또 상대 당에서 어떻게 공천을 하느냐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하여 전략적으로 결정을 해야 될 문제”라고 밝혀, 정동영 전 장관 등 야권 인사들의 수도권 출마 여부가 박 대표 출마의 최대 변수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불리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박 대표가 나선다면 승산이 있다는 점에서, 당내 일각에선 박 대표가 무조건 4월 인천 부평을 재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분위기다. 특히, 인천 부평을의 경우 정부의 지원 여부가 관건인 GM대우 문제가 지역 최대현안이고, 지역구 내 재개발지구 사업진척 문제와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연장 문제 등 대형 민원이 걸려 있기 때문에, 여당 대표가 출마할 경우 가볍게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한, 급변하는 정치 상황을 감안할 때 박 대표가 6개월 후 한나라당 유력지역의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100% 장담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한나라당 상임고문단이 11일 여의도에서 박 대표와 오찬을 갖고 4월 재·보선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찬이 끝난 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상임고문단이 이번 재·보선에 박희태 대표가 꼭 출마하라고 했다”며 “원외에 있어도 당 대표가 됐고, 임시국회도 원만하게 마무리했는데, 국회운영에 연륜이 있는 분이 원내에서 일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 대변인은 “박 대표가 원외임에도 당 대표로 선출한 당원들의 뜻이 무엇인지 잘 헤아려보아야 한다고 했다”며 “특히 국회 경색을 박 대표가 여야 당 대표 협상으로 잘 마무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으나, 이 같은 상임고문단의 출마 권유에 대해 박 대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 대표는 이날 P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4·29 재보선 출마 여부에 대해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지금까지 깊이 생각해본 일도 없다”고 일축했다. 박 대표는 “‘출마한다. 안 한다’ 지금 말할 수 없다. 그냥 안 하고 있으면 안 하는 것이고, 한다면 내가 나서서 ‘합니다’하고 국민 앞에 얘기를 하고 잘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지, 안 나오는 것을 ‘내가 안 나온다’고 미리 얘기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며 이 같이 밝혔다. 그리고 박 대표는 안경률 사무총장이 출마를 적극 권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아직까지 아무 소식도 못 들었고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며 “총장이 거기에 관여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 정동영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 한편, 민주당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13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물고기가 물속에 사는 것처럼 정치는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오는 4월 29일 치러질 재보궐 선거에 전주 덕진에서 출마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어 정 전 장관은 “정치를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13년 전의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정치를 시작했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겠다”며 “나는 정치인이고, 정치인은 정치현장에 국민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내가 도달한 결론이었으며,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며 국민들께 위로와 희망을 드리기 위해 다시 정치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정 전 장관은 자신의 재보선 출마를 놓고 민주당 내에 반발 세력이 적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달게 감수하면서 비판에 들어 있는 애정을 잘 받들겠다”며, 수도권이 아닌 고향 전주 덕진에서 출마하는 배경을 묻는 질문에 “내가 정치를 시작했던 곳에서 우연히 선거가 열렸고, 지난번 총선 실패로 탈진한 상태에서 많은 분들이 나가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 전 장관은 “만약에 민주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당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라며 “공천은 사천과 다른 공당의 결정으로, 정동영이가 들어가 도움이 된다면 그런 일(낙천)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처럼 재보선 구도를 통째로 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정 전 장관이 전주 덕진 출마를 공식화하자, 그의 도전을 반대하는 인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 전 장관의 출마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쪽은 호남의 ‘맹주’가 둘이 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정세균 대표 측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 전 장관의 워싱턴 출마 선언과 관련해 정 대표는 “당이 지지율도 오르지 않고 어렵다고 한다. 수년 동안 속앓이를 많이 해 왔고 그래서 모두가 당을 살리는데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며 “당 대표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당에 도움이 되는가 생각하고 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당무를 집행할 생각”이라고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의 출마설이 나오자, 정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최재성 의원이 팔을 걷고 나서 “퇴행적 느낌마저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의원의 선공에 정 전 장관 측도 잇따라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통해 반격했으며, 당내 ‘개혁과 미래모임’(개미모임)과 ‘민주연대’도 모임을 갖고 논의하는 등 자칫 신-구주류의 권력투쟁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여당과의 일전을 앞두고 논란의 중심에 오르내리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 정 대표의 함구령이 떨어진 이후 양측 모두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정 전 장관의 재보선 출마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분위기이나, 이미 서로에게 충분한 상처를 입혔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 가능성 낮지만 무소속 출마설도 나와 정 전 장관의 출마를 반대하는 이들은 대표적인 이유로 개혁공천 퇴색과 ‘호남정당’이라는 지역정당 이미지로는 수도권 전략에 큰 차질이 온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최 의원이 최근 기자간담회와 인터뷰를 통해 “지금 민주당의 공천은 ‘어떻게 하면 승리할까’가 아니라 ‘이런 방향으로 가겠다’는 큰 방향을 제시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송영길 최고위원도 “이번 보궐선거는 (정 전 장관) 개인의 출마 여부 문제보다 민주당 자체가 죽느냐 사느냐의 선거”라며 “특히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출마 여부가 아니라 당이 사느냐 죽느냐 측면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역시 정 전 장관의 출마를 반대했다. 하지만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는 대신,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당헌·당규에 따라 심사를 진행하고 최고위의 전략공천권도 감안해 결정하자는 선에서 결론 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위의 이 같은 결론은 정 전 장관이 출마를 최종 결심할 경우 대선 후보까지 지낸 인사에게 당이 현실적으로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우려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지난 입법전쟁에서 미디어 관계법의 2월 임시국회 통과를 막아내는 등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음에도 당 지지율이 10%대에 머물자, 당내에서도 정세균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부담 때문에 지도부가 정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즉, 당이 4월 재보선을 ‘개혁공천’으로 규정하고 외부의 신선한 인물을 영입해 승부수를 띄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정 전 장관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 여부가 주요 관심 사항으로 등장하면서, 정 전 장관 측은 전주 덕진 현지 여론조사 결과 정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압승이 가능하다며 정면돌파하겠다는 분위기도 적지않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