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차기 황제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위상에 적색 경보등이 켜지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돌았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삼성그룹의 위상은 특별하다. 이건희 전 회장은 지난해 삼성특검의 조사를 받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부 심어졌지만, 동시에 존경받는 기업인,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롤모델 등으로 10여 년 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스타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삼성그룹과 이건희 전 회장의 재력 및 위상은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에게로 승계될 예정이다. 그의 경영능력 등을 비롯해 끊임없는 외부의 문제제기에도 불구 하고 그룹 내부에서는 포스트 오너로서 이 전무의 위상에 흔들림이 없다. 삼성그룹 소속 맴버들은 재용 씨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때마다 “재용 씨로의 안정적인 승계가 그룹의 안정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며 “이 전 회장 사후 재용 씨의 대권 승계가 실패할 경우 경영의 중심축을 잡아줄 사람이 사라지게 돼, 큰 어려움이 있을 때 사분오열될 수도 있다”며 이재용 씨의 대권승계를 강하게 옹호해 왔다. 이는 삼성그룹 및 계열사 경영진에서부터 말단 신입사원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인 견해였다. 이건희 전 회장의 맏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그녀의 남편 임우재 삼성전기 상무, 둘째딸 이서현 재일모직 상무와 남편 김재열 제일모직 전무는 현재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위상에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같은 구도에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 호텔신라, 에버랜드 외식부문 흡수하나 외부에서 삼성그룹 후계구도의 변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삼성에버랜드와 호텔신라 간에 시너지 확대를 위한 통합작업 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에서부터이다. 삼성그룹은 에버랜드와 호텔신라의 외식사업 통합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양사의 사업 현황과 전망 등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랜드의 한 관계자는 “사업의 통합은 흡수통합 외에도 양사 간 통합회사 설립, 전략적 제휴 등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며 “호텔신라가 에버랜드의 외식사업을 흡수하는 방식의 통합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식업계는 이번 외식사업 통합논의를 에버랜드의 외식사업부문을 호텔신라에 넘기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관련, 외식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신라의 외식사업부문을 분사해 에버랜드의 외식사업과 통합하게 된다면 호텔신라의 외식 서비스의 질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며 “결국 호텔신라가 에버랜드의 외식사업을 흡수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사 간 특정 사업부문의 통합논의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삼성그룹은 발광다이오드 부문, IT 서비스 등에서 서로 다른 계열사 사업부문을 통합해 시너지 극대화를 모색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통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는 계열사 간 중복사업을 없애 경영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그룹 차원 장기계획의 일환일 뿐”이라고 밝혔다. ■ 이부진 전무의 역할론 하지만 일각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에버랜드 경영를 본격적으로 챙기고 있다”는 소문이 터져나오면서 이번 협의가 포스트 이건희 체재에 대한 역할론으로 번졌다. 모 언론에 따르면, 부진 씨는 삼성에버랜드와 관련하여 개인 사무실을 내고 임원들에게 경영사항을 보고받는다는 것. 확인 결과,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에버랜드 내에 개인사무실을 마련한 후 정기적으로 경영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밝혔다. 하지만 에버랜드의 외식사업부문 담당자들은 호텔신라와 정기적으로 협의 밑 업무교류를 해 오고 있었으며, 이번 사업부문 통합과 관련해서도 수시로 업무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 내부 관계자는 “흡수통합 혹은 사업부문의 분사 등의 방법 보다는, 양사의 외식사업부문이 서로 유기적인 경영협조 속에서 단일시장을 공동으로 점유하는, 삼성네트웍스와 삼성SDS 간의제휴 모델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적 소통이 필요하며, 그 부분을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모 언론매체는 “부진 씨가 에버랜드의 리조트 사업과 식음료 사업을 공식적으로 관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텔신라 전무로 재직하며 경영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이부진 씨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이자, 그룹 최정점에 위치한 지주회사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8.31%를 보유한 2대주주이다. 실제로 모 매체 등의 보도에 따르면, 부진 씨는 “오빠와 경쟁하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의 ‘선덕여왕’이 되길 바라는 부진 씨의 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 간 부진 씨의 행보는 여왕의 꿈을 향한 발걸음이라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2007년 10월에 삼성석유화학의 최대주주로 올랐다. 또 그룹 임원으로서 호텔신라 외에 전자·물산·에버랜드·의료원·테크원 등 계열사들의 서비스 사업 부문에 대해 발언권을 높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 주변에서는 “그녀가 계열사 전체를 아우르는 그룹 경영 일선에 나서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 이건희 회장의 경고 메시지 시각도 삼성그룹의 오너인 이건희 전 회장은 부진 씨의 이 같은 시도를 적절히 묵인해 왔고, 이 같은 배경 속에서 그녀는 그룹 서비스 사업부문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조금씩 높여 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삼성가 주변에서는 호텔신라와 에버랜드의 외식사업부문 통합이 검토 차원에서 언론에 보도된 것이나 부진 씨의 에버랜드 경영참여 여부가 세간의 관심사가 된 것이 이건희 전 회장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황태자에 도전하는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현재 황태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아버지 이 전 회장이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여자의 몸으로, 결혼 과정에서 아버지의 뜻을 어긴 바 있는 부진 씨의 현재 입장은 그룹 후계자 자리를 놓고 오빠인 이재용 전무에게 공공연히 도전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일로 부진 씨의 행보가 언론의 관심에 필요 이상으로 노출된 이상 후계자를 향한 그녀의 행보도 한층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 간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부동의 지위를 누려 온 재용 씨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 자신 외에 동생이 추가됐다는 사실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후계자로서 재용 씨의 지위가 변화된 것은 없다”며 “하지만 재용 씨 입장에서는 성별을 떠나 언제든 바뀔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새겨질 수 있고, 이는 재용 씨를 더욱 분발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전해진 황제학의 핵심은 최적의 선택을 위한 경쟁구조 조성”이라며 “일단은 재용 씨의 황제수업은 계속되고 부진 씨가 도우미 역할을 하는 듯한 구도지만,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의중에 따라 얼마든지 후계자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대세는 이재용, 그러나 의외의 변수도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의 후계자 부상과 관련하여, 삼성가 안팎에서는 재용 씨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주기 위해 부진 씨의 부상을 용인한 것일 뿐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여차하면 그룹을 살리기 위한 차원에서 후계자가 바뀔 수도 있지만, 일단은 차기 황제로서 재용 씨에 대한 위상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올해 초의 그룹 인사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1월에 단행된 삼성그룹 인사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건희 전 회장과 함께 삼성그룹 2세대의 영광을 열었던 측근들이 대거 물러난 반면, 그룹 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우호적인 안면이 있는 경영진들이 대거 요직을 차지했다. 삼성전자에서는 애니콜 신화의 주인공 이기태 부회장과 반도체 부문 ‘황의 법칙’을 만든 황창규 사장이 물러났다. 또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 등도 함께 물러났다. 반면, 이재용 전무의 경영실무 분야에서 가정교사 역을 수행했던 최지성 사장이 이윤우 부회장과 함께 삼성전자의 새로운 선장으로 영역을 확대했고, 이재용 전무와 대학 선후배 사이로 절친한 이인용 삼성전자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후 그룹 전체의 홍보를 총괄하게 됐다. 그 외, 삼성에버랜드 사장으로 영전한 최주현 전 삼성코닝정밀유리 부사장과 에스원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서준희 전 삼성증권 부사장도 이재용 전무의 라인으로 통한다. 재계는 최지성 사장과 이인용 부사장의 급부상을 두고 이재용 황제 등극을 위해 그룹 내외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룹의 최대 주력사일 뿐 아니라, 그룹 차원의 특허와 법무관리를 통합하는 계열사이다. 실제로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전 그룹 부회장이 모두 삼성전자의 임원으로 적을 두고 있었으며, 지난해 삼성특검에 대응한 변호인단도 사실상 삼성전자의 변호인단이었다. 이를 근거로 삼성그룹 내 일각에서는 “이미 이건희 전 회장의 후원 속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인맥이 사실상 삼성그룹의 경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부진 씨 혼자서 되돌리기는 힘들 것”이라며 “부진 씨의 역할은 단지 재용 씨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포석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하지만 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는 “후계자의 대세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황제는 어디까지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라며 “이 전 회장의 권위가 살아 있는 이상 그의 복심에 따라 포스트 이재용 체제는 포스트 이부진 체제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부진 씨가 여자라는 핸디캡을 제외한다면 충분히 경영능력을 인정받을 만하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