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과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가 또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시는 3월 9일 강남과 노원구를 제외한 23개 전 자치구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벌인 결과, 용산구청 8급 공무원 송모 씨가 장애인 보조금을 횡령한 사실을 적발했다. 송 씨는 장애인 보조금의 지급 대상자와 금액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총 1억1773만 원을 빼돌렸다. 송 씨는 횡령한 돈을 자신과 모친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했다가 상급자에게 범행 일체가 발각되기도 했지만, 상사의 묵인하에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송 씨에게 횡령액을 변제하도록 함과 더불어 검찰에 고발했다. 또, 송 씨와 횡령 사실을 은폐한 당시 상급자에 대해 직위해제했다. 시는 이와 함께, 수혜자가 사망했거나 사망신고를 늦게 한 경우에 보조금을 지급한 사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급여를 이중으로 지급하거나 미지급한 사례 등 부적절하게 처리된 188건을 적발했다. 또, 서울시는 2월 17일 자치구의 보조금 예산 공금횡령 여부를 조사한 결과, 양천구 8급 공무원 안모 씨가 26억44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을 적발, 안 씨를 직위해제한 뒤 형사고발했다고 밝혔다. 안 씨는 구청 사회복지과에 재직하면서 3년을 넘는 기간 동안 72회에 걸쳐 지급대상자 수와 금액을 과다 신청하는 방식으로 서울시 복지보조금 예산을 횡령했다. 2008년 10월에는 양천구 여성복지과의 7급 공무원 이모 씨가 저소득층 학생에게 지급하는 장학금 1억500만 원과 신월청소년문화센터 보조금 5900만 원 등 총 1억64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씨 역시 보조금 청구서를 5600만 원에서 1억1500만 원으로 부풀려 차액을 횡령했다. 관악구청에서는 인사 승급심사에서 공무원들 사이에 뇌물이 오간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악구청 조사계장 김모 씨는 1월 서울 모처에서 공무원 두 명으로부터 5500만 원을 받아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 공기업, 곳곳에 만연된 비리사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는 미국의 한 업체의 금품수수 사건을 계기로 납품비리 전반이 드러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황인규)는 2월 18일 한수원 간부를 미국의 한 밸브업체로부터 납품계약 대가로 5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국내 발전소 관리를 사실상 독점하는 한수원 임직원이 다른 업체한테서도 관행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구속된 간부는 미국 밸브업체로부터 2000년부터 수백만 원어치의 상품권과 고급 만년필, 양주를 여러 차례 받았으며, 수차례 룸살롱 등지에서 접대를 받기도 했다. 2008년 10월에는 한국전력의 한 납품업체가 한전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180억 원을 챙겼다가 적발됐다. 회사 대표는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납품업체 입찰에서 또 해당 업체가 선정됐다. 안전성 확인에 필수적인 성능검사가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제품들은 고압전류를 집과 연결시켜주는 안전에 관한 ‘핵심부품’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는 경부고속철도(KTX) 사업이 침목균열에 따른 갖가지 의혹과 부실시공 등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KTX의 침목에 열차가 달리기도 전에 수백 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매립 전에 방수재 대신 흡수재를 사용하여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국책사업에 대한 감리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정부 출범 초인 2008년 3월 당시 남일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통폐합·민영화 대상 공기업을 분류하기 위해 사실상 전체 공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3월 27일 28개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공공기관 경영실태 종합분석자료’를 발표하고, 공기업들의 부채비율이 26.35% 증가했음에도 인건비는 31%포인트, 성과급은 2.4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또, 2008년 3월부터 6월까지 한국전력공사와 산업은행·국민연금공단 등 100여 곳에 대한 2단계 감사를 실시한 결과, 증권예탁결제원과 대한석탄공사 등 7개 공공기관, 20여 명이 각종 부정·비리 혐의로 검찰에 기소됨과 더불어 공기업 방만경영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 클린 운동 벌이는 지자체도 이에 따라, 자성적 목소리와 쇄신의 움직임을 보이는 공공기관도 속속 눈에 띄고 있다. 구로구청에서는 2월 27일 쇄신된 각오로 청렴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클린 구로 다짐대회 및 도로 물청소 기동반 출범식’을 개최했다. 양대웅 구청장은 “거리의 먼지와 때를 닦아내는 클린운동이 공직사회의 안 좋았던 문제들을 깔끔히 쓸어버리고 바른 상을 심는 ‘청렴운동’으로 확대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구로구는 청렴에 대한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3월 전 직원 자정결의 대회를 열고 직원들의 청렴행정에 대한 의식을 확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보조금 수혜 대상자 선정 단계부터 최종 지급까지의 전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교차확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정 이상의 금액이 지급되거나 동일계좌에 반복적으로 지급되는 일이 발생하면 자동경보가 발동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공기업 선진화에 대한 정부의 노력도 만만치 않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2008년 10월 30일 전 정부 부처에 ‘공직기강 확립 업무추진 지침’을 보내 공기업 감사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지시했다. 지침에서는 “하반기 역점 국정과제인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차질 없는 추진을 감사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수립·시행하라”며 부처는 산하단체·공기업의 선진화 추진 사항을 모니터링해 주 1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공기업 선진화가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 감사실에서 기관장들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그리고 그해 12월 민영화·통합 대상에 오른 69개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효율화 방안을 발표했다. 경영효율화 방안은 15만 명의 해당 공공기관 근무자 중 1만9000명을 3~4년에 걸쳐 줄이고 8조5000억 원의 자산을 매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 기관 내 감사·상급자 감시 허술, 예산 분배구조 복잡 하지만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사무소나 구청의 복지담당 직원들은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복지보조금 지급대상자의 개인정보를 행정안전부가 개발한 ‘새올행정시스템’에 입력하게 돼 있지만, 이런 전산체계는 일선 동사무소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새올행정시스템도 담당 공무원이 시스템 내부에서 숫자를 고치는 등 조작이 가능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는 복지업무 전산체계에 대한 접근권한이 없어 행정안전부에 권한 부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빈곤층·장애인 복지금 횡령의 경우 뇌물이나 허위수당 등과는 다른 새로운 분야여서 감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구청 자체 감사도 드문데다 서울시 감사 역시 건축이나 위생 등 취약분야를 중심으로 이따금씩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5년 간 서울시가 구를 대상으로 복지분야에 대한 감사를 벌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공금 출입이 복잡하다는 점도 공무원의 횡령 유혹을 부추긴다. 올 한 해 서울시가 25개 구청에 보내는 복지 관련 예산은 1조1880억 원이다. 세부 항목은 100여 가지에 이른다. 서울시에서 이 예산을 다루는 부서는 6개로, 부서 간 정보교류가 없다 보니 통합관리는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구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개 과에서 담당하는 보조금이 10가지를 넘는 경우도 있다. 담당 직원도 나눠져 있어 바로 옆자리에서 돈을 빼돌려도 눈치채기 힘든 구조다. 담당 과장이나 팀장도 보조금 수령과 지급의 세세한 항목을 알고 관리하기 쉽지 않다. 예산을 신청하고 수령해 지급하는 과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현재 각종 보조금과 수당은 동사무소에서 전산으로 자료를 입력하면 25개 구청이 취합해 서울시에 신청한다. 양천구청에서 문제가 된 장애수당의 경우는 장애인 수는 물론 장애급수별로 금액이 큰 차이가 생긴다. 지급과정에서 구청 직원 한 명이 많은 돈을 만지는 것도 문제다. 양천구청의 안 씨는 한 해 24억 원이 넘는 돈을 다뤘다. 그것도 자신만 쓸 수 있는 개인공인인증서를 통해 인터넷 뱅킹으로 장애수당을 지급했다. 팀장이나 과장은 비밀번호나 공인인증서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곳간 열쇠를 다 넘겨준 채 직원을 관리·감독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무기’도 갖지 못한 것이다. 구멍 뚫린 감사체계도 한몫했다. 자체 감사는 3~5년에 한 번 형식적으로 이뤄질 뿐이다. 양천구청에서 3년 4개월 동안 장기간 거액의 돈을 빼돌리고도 적발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감사에서 적발되더라도 밖으로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단체장·간부들의 인식도 문제다. ■ 공기업 임원 연봉, 여전히 억대 정부가 지난해부터 인력 감축 등의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 선진화방안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 20곳 가운데 7곳은 오히려 기관장 연봉이 전년도보다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천항만공사 사장의 경우 연봉이 전년도보다 61%나 올랐으며, 최장현 현 국토부 제2차관이 있었던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과 부산항만공사의 기관장 성과급은 1년 전보다 두 배 넘게 뛰어올랐다. ‘2008년도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산하 20개 공기업 연봉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토부 산하 20개 공기업별 임원진(기관장·감사·상임이사)의 평균 연봉(1년 만근 기준, 성과급 포함)은 7616만∼2억1580만 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임원진 평균 연봉이 가장 많은 곳은 대한주택보증으로 2억1580만 원 수준이었으며, 사장 연봉 역시 4억70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원진 평균 연봉이 많은 곳은 ▲한국철도공사(2억543만 원) ▲한국수자원공사(1억8721만 원) ▲한국토지공사(1억8063만 원) ▲대한주택공사(1억7539만 원) 등의 순이었다. 기관장 연봉이 많은 곳은 ▲인천항만공사(3억3800만 원) ▲부산항만공사(2억5200만 원) ▲한국수자원공사(2억3900만 원) ▲인천국제공항공사(2억2700만 원) 등이었다. 더욱이 기관장 연봉이 1년 전에 비해 상승한 곳은 7곳이나 됐다. 인천항만공사의 경우 사장 연봉이 전년도 2억1000만 원에서 지난해 3억3800만 원으로 61% 가량 증가했으며, 부산항만공사는 7800만 원, 철도공사는 3000만 원, 토지공사는 1600만 원, 주택공사와 대한주택보증은 700만 원, 수자원공사는 500만 원씩 올랐다. 이 가운데 최장현 국토부 제2차관이 지난해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의 경우 이사장 성과급이 8700만 원으로 전년도의 3300만 원보다 크게 올랐다. 부산항만공사는 5900만 원에서 1억4400만 원, 인천항만공사는 9400만 원에서 1억3800만 원으로 성과급이 늘었다. 이 밖에 주택공사 및 철도공사·수자원공사·도로공사는 감사의 연봉 수준이 기관장의 연봉 수준보다 오히려 높았다. 주택공사는 감사 연봉이 사장보다 7400만 원 많은 2억6200만 원을 기록했으며, 철도공사·수자원공사·도로공사도 기관장보다 많은 2억 원 이상을 감사 연봉으로 지급했다. 자유선진당 이재선 의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안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며 “기관장을 비롯한 2급 이상 고위직의 연봉은 삭감하지 않은 채 사회 초년생에 해당하는 취업계층에게만 고통을 떠넘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또 “결과적으로 정부의 개혁안은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에 역효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소득분배 구조 개선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위기의 여파로 민영화 대상 기업들의 매각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 통합 대상인 공기업 선진화도 법 개정 연기 등으로 진행이 늦어지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김상곤 한신대 교수는 현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과 관련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기업 매각을 통한 정부 재정 수입 확보, 부실 공기업 예산 축소 등 대대적으로 민영화가 추진됐다”며 “이는 국내외 민간 독과점에 따른 경제력 집중, 국부 유출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