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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리스트 “다음은 누구?”

여의도 정가 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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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1호 심원섭⁄ 2009.03.31 14:58:59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로비 대상 의혹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3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주당 이광재 의원 구속에 이어, 26일 3선의 한나라당 박진 의원을 소환 조사하여, 여의도 정치권은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면서 일종의 ‘패닉’ 상태에까지 빠져들고 있다. 특히 이 의원의 구속에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의 정치자금까지 포함돼있는 것으로 나타나, 정 전 회장의 정치권 로비 자금 내역이 담긴 ‘정대근 리스트’ 존재설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당분간 정치권이 사정한파에 숨을 죽여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4월 임시국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박 회장의 로비 대상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을 가급적 많이 부를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번 주말을 계기로 여야 정치인들의 줄소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과연 다음은 누구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을 떨게 한 ‘박연차 리스트’는 지난해 말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그 대상으로는 주로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나 박 회장의 주요 활동무대인 부산·경남 지역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의 이름이 언론보도를 통해 나왔다. 더구나 3월 23일 구속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자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했던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의 경우에도 드러났듯이,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까지 로비의 손을 뻗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리스트에 거론된 의원들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최철국 의원은 지난해 말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 회장 측근인 정모 씨에게서 7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나, 최 의원이 “2005년 박 회장 측으로부터 전세보증금 공탁을 위해 7000만 원을 수표로 빌린 뒤 2007년에 이자를 더해 갚았다. 불법 정치자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해명함에 따라 혐의를 벗어났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박 회장과 골프 회동을 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나, 서 의원은 “2006년에 합법적으로 받은 500만 원 이외에 다른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4월 임시국회 의사일정 협의를 위해 소환을 늦춰줄 것을 요구하면서 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언론에 보도된 PK 의원들 극구 부인 그리고 여당 의원들의 실명도 신빙성 있게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은 자신의 이름이 ‘박연차 리스트’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10년 가까이 (박 회장을) 만난 일이 없고 후원금도 받은 적이 없다”는 보도자료를 냈으며, 같은 당 권경석 의원도 해명자료에서 “박 회장으로부터 후원금을 포함한 어떤 명목으로도 단 한 푼의 돈을 받은 바 없다”고 해명했다. 뿐만 아니라, 김태호 경남지사와 권철현 주일대사 역시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하여 해당 언론사를 고발하겠다며 이구동성으로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찰은 우선 현역 의원 3∼4명을 이번 주 중 조사하기 위해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있으나, 의원들이 출석하지 않더라도 현직 의원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기 위해 곧바로 체포영장을 청구하지는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강도 높은 정치권 수사를 위해 물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은 “회장이 개인 돈 3억~5억원 씩을 현금으로 보관한다”는 태광실업 관계자 진술의 신빙성 확인차 박 회장 집무실 금고에 현금 3억 원이 들어가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은행에서 현금 3억 원을 빌려 경남 김해시 태광실업 회장 집무실의 금고에 직접 넣어보기도 했다. 과거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박 회장은 여야를 넘나들며 정치권과 깊숙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정계를 은퇴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개인연구소 설립 비용도 대줬으며, 2006년에는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의 부탁으로 이광재·서갑원·이화영 등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20여 명에게 300만~500만 원씩을 후원한 적도 있고, 후원금을 더 줄 의사가 있으면 한 해 정치인 한 명에게 최고 500만 원까지 정치자금을 낼 수 있도록 한 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자기 이름 대신 아내와 태광실업 임원 명의를 사용하기도 했다. 원칙을 벗어난 박 회장의 이러한 지원을 정치인들이 말없이 받아들인 이유는 ‘자물통’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굳게 다물었던 ‘입’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박연차 로비 의혹’ 수사에서는 혐의 사실을 순순히 털어놔 ‘자물통’이라는 별명을 무색케 하였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박 회장을 ‘저승사자’ 역할을 하게끔 만들었을까? 검찰이 박 회장의 입을 열게 한 가장 주요한 ‘압박 카드’는 그의 세 딸과 외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 세 딸과 외아들 이용해 ‘자물통’ 열어 박 회장은 작년 12월 대검 중앙수사부에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나 하나 구속되면 됐지, 다른 사람까지 물고 들어가지는 않겠다”는 심산이었지만, 넉 달 가까운 수사 끝에 줄줄이 입을 열고 말았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쥐락펴락하는 첫 번째 핵심 인물은 당연히 박 회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수사 초기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그의 입이 ‘자물통’이라는 점 때문에 검찰 수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많았다. 더구나 박 회장은 로비 수단으로 항상 현금을 사용했기 때문에 본인의 진술이 없으면 수사가 난항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세종증권·휴켐스 비리 사건이 불거지며 구속 기소됐을 때 박 회장은 탈세 사실에 대해서만 시인할 뿐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부인하는 바람에 대단히 애를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세 딸을 출국금지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맏딸을 소환 조사하며 공익근무를 하는 외아들까지 수사 선상에 올려놓자, 박 회장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박 회장이 아들 명의로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해외 법인을 통해 편법증여하려 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박 회장이 구속되면서 회사 경영권을 맡은 첫째딸을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둘째딸의 시아버지인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은 박 회장 구명을 위한 대책팀을 총괄 지휘하면서 다방면으로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셋째딸은 이광재 민주당 의원 사무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따라서 박 회장은 자신이 보호해야 할 정관계 인사들과 ‘의리’보다는 자식들의 앞날을 선택하는 바람에 이들의 저승사자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박 회장은 로비 사실을 먼저 털어놓지는 않지만, 현금 뭉치가 빠져나간 흔적 등 증거 자료를 들이밀면 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기억하며 사실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회장과 가족, 측근들의 계좌를 샅샅이 훑고 회사 전표를 일일이 확인해 뭉칫돈이 빠져나간 시점을 특정하고, 여비서의 다이어리와 박 회장의 통화내역 자료를 토대로 누구에게 돈을 건넸는지를 추론해 박 회장에게 들이밀어 자백을 받아내는 형식으로 진술을 하나하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회장은 집무실 금고에 현금 3억∼5억 원을 쌓아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기 때문에, 만약 입을 다물기로 작심하면 정관계 인사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사실을 입증할 정황적 증거는 있어도 결정적 증거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세 딸과 외아들의 전략을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회장은 부인하는 말로 일관하다가도, 고심 끝에 ‘돈을 줬다’고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대질신문에서조차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진술하면서 돈을 받은 상대방마저도 스스로 혐의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들어가며 제압하는 등 ‘검사 몫’까지 척척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리스트에 없던 박진 소환되자 당혹 박 회장의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검찰 측에서는 ‘지금 자신이 잘못하면 자식들이 다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3월 21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이인규)에 따르면, 구속된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이 처음에는 돈을 받은 사실을 극구 부인했으나, 박 회장과의 대질 과정에서 조목조목 따지자 곧바로 혐의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애초에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몰라도, 박 회장의 진술은 굉장히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다”며 “대질 과정에서 돈을 받은 사람을 제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3월 14일 정관계 로비 의혹에 초점을 맞춰 박 회장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재개한 이래, 28일 현재 이정욱 전 한국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 민주당 이광재 의원,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 등 6명의 정치인을 사법처리했다. 한편, 정치권은 검찰의 칼날이 본격적으로 여의도를 겨냥하자 ‘사정태풍’이 본격적으로 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데다 그 동안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 진 의원이 소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박 의원이 그 동안 정치권에 떠돌던 ‘박연차 리스트’에도 없었으며, 서울이 지역구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박 회장의 ‘전방위 자금살포’가 근거지인 부산·경남 지역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희태 대표가 최근 당 소속 의원들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자 ‘당에 언질도 주지 않았다’며 검찰 측에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 역시 이번 검찰 수사가 ‘표적사정’을 넘어 야당탄압을 위한 정권 차원의 ‘신(新)공안정국’ 조성 시도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나,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히 이광재 의원이 구속 수감된데 이어 서갑원 원내 수석부대표가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당 차원에서 강력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민주당은 현재 진행되는 이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 음모를 제1야당이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중대한 국면이라고 판단한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견제와 균형의 기본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총동원하고 모든 가능한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번 주말을 계기로 여야 정치인들의 줄소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면서 “다음은 누구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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